[해외 칼럼]‘인플레 때문에 트럼프 지지’는 잘못

여론독자부 2023. 12.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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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람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팬데믹이후 천문학적 재난지원금
바이든 정부 인플레 악화시켰지만
연준 독립성 위협한 트럼프 집권땐
더욱 심각한 물가 상황에 부딪칠것
사진 설명
[서울경제]

내년 대선에서 전·현직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지지율 추세가 이어진다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돼 현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리턴 매치는 짜증을 돋운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전·현직 대통령 사이의 대결은 다소 유용한 면도 있다. 선거철마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공약이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내년 대선은 투표에 앞서 이들이 재임 중에 거둔 성과를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희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인플레이션에 대해 두 후보가 각기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검토해보자.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었다는 공화당의 주장은 허구다. 예를 들어보자. 그는 미국의 에너지 업계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지난 두 달 연속 신기록을 작성했고 공유지에서의 원유 시추 허가 건수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물가 상승과 관련한 다른 부분의 기록은 그다지 좋지 않다. 2021년 초 의회를 통과한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 패키지부터 살펴보자. 이 법은 거의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급망이 교란된 상황에서 시중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이 풀리자 소비자 수요가 대폭 확대되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한 현상이었고 미국 경제 역시 이를 피해 갈 수 없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재난지원금이 제한적으로나마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외에도 그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관세를 거의 모두 연장했다. 관세는 상품 가격 인상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이 정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실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역시 퇴임 직전인 2020년 겨울 자체적인 재난구제법안을 마련해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패키지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거의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은 똑같았다.

게다가 그는 관세를 정책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 상품에 10%의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려 했다. 이 같은 계획이 실행됐다면 우방국의 지지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국내 소비자들에게 거대한 물가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그는 팬데믹 전부터 한시적 노동 허가를 받은 이민자들의 입국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경제가 팬데믹의 사슬에서 벗어나면서 일손 부족 현상이 두드러졌지만 그의 반이민 정책으로 외국인 단기 노동자들의 입국 심사가 지연됐고 노동력 부족이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물가를 띄우는 데 기여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한 최악의 정책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장악 시도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임무를 맡은 기관이다. 연준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만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 때 금리 인상과 같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통화 공급을 조절한다는 인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부의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대응력을 약화시킨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 인플레이션의 대명사가 된 국가의 경우를 살펴보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자 연준 의장을 파면하고 연준 이사회 멤버를 자신의 심복들로 교체하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실제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면 미국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고강도 처방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린다면 일반 대중은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예상할 것이고 결국 이 같은 ‘자기 예언’을 스스로 성취하게 될 것이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을 재접수할 경우 연준을 압박해 금리 인하를 끌어낸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오랜 전통을 되살렸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것이야말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취한 가장 중요한 대응책이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의 물가 동향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본성과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감안하면 그가 재집권한 이후의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할 것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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