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낙원 '타이동'

곽서희 기자 2023. 12.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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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남동쪽, 태평양과 중앙산맥 사이. 그곳에 타이동이 있다. 3,000m급 고산부터 평야까지 지형이 매우 다채롭지만, 인구는 겨우 24만명 정도. 어디든 붐비지 않고, 뭘 하든 급할 것이 없다. 진정한 '슬로우 시티'다. 그런데 타이동의 반전은 여기에 있다. 느리고 고요한데, 결코 심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예술 센터, 원주민 문화, 국제 열기구 축제와 아웃도어 스포츠…. 한적함과 다이내믹함이 이토록 한 도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 거기엔 감히 '낙원'이란 수식어를 붙여 봐도 한 점 거리낌이 없다.

▶타이동 어떻게 가요?

현재 한국에서 타이동까지의 직항편은 없다. 가오슝 공항에서 국내선 환승 후 타이동 공항까지 가거나, 가오슝에서 기차로 이동하는 게 가장 보편적인 방법. 가오슝역에서 기차로 약 2시간이면 타이동역에 도착한다.

NATURE

●천연 화장수로 풍덩
즈번 온천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있는 지리석 특성 탓에 대만에는 130여 개가 넘는 온천이 분포해 있다. 일반 온천뿐 아니라 열천, 유황천, 해저 온천 등 종류도 다양한데, 그중 타이동 즈번 온천은 강에서 솟구쳐 나오는 탄산나트륨천을 사용한다.

무색무취, 7~8의 중성 pH에 평균 온도는 39~45도.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고품질 온천수다. 피부를 매끈하게 해 주는 효과가 탁월해 '미인탕'이라고도 불린다고. 과장이 아니라, 정말 천연 화장수로 온천욕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온몸이 보드라워진다.

즈번강을 따라 크고 작은 온천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는데, 여행객이 가볍게 즐기기엔 토유기 온천(Toyugi Hot Spring Resort & Spa)을 추천. 앞은 강이요, 뒤는 온통 산이라 마치 숲속 한가운데서 온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입장료만 지불하면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즈번 온천 이용 TIP
1. 대부분 혼성 온천장으로 수영복과 수영모 착용이 필수다.
2. 토유기 온천에는 펄펄 끓는 온천물에 계란을 직접 삶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이다 한 병을 곁들이면 최고의 간식.
3. 좀 더 노련한 방문객들은 개인 수건과 텀블러(온천장 내에 정수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온천물에 삶아 먹을 고구마까지 알뜰히 챙겨 온다.
4. 온천탕 외에도 족욕탕, 사우나, 일반 수영장 등 여러 시설이 있으니 최대한 다 즐겨 볼 것.

●거울이 깔린 호수
타이동 삼림공원

타이동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공원. 해풍을 막아 주는 거대한 소나무가 많아 공원 내 숲속은 유난히 아늑하다. 왜가리 호수(Egret Lake)를 비롯해 여러 호수들이 있는데, 최고의 명소는 역시 비파 호수(Pipa Lake)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마치 얇은 거울이 한 겹 깔린 듯한 착각이 든다. 햇빛 좋은 날엔 완벽한 데칼코마니의 호수 반영을 볼 수 있다. 공원의 총면적은 무려 280만m2.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공원 근처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는 이유다.

중간중간 여러 갈래로 빠지는 길들이 나타나는데 사실 길 따위, 조금은 잃어 봐도 좋다. 잔잔한 호수와 녹진한 숲 내음. 어느 곳을 달려도 피로감 대신 해방감만이 든다. 맞붙어 있는 해빈공원까지 함께 돌아보면 좋다.

●바다의 낭만
해빈공원

타이동에서 가장 낭만적인 바다는 해빈공원에 있다. 이름 그대로 바닷가에 위치한 해양 공원으로, 타이동 시내 옆 동해안을 따라 뻗어 있다. 한낮에는 바닷길을 따라 자전거 바퀴들이 바삐 구르고, 해질녘이 되면 해변가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공원의 랜드마크는 2012년에 세워진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땅과 사람들을 나무뿌리처럼 생긴 두 팔로 껴안는 모양새다. 또 다른 예술작품으로는 타이동 백악관(White House)이 SNS에서 유명하다. 은퇴한 군인이 폐목재, 벽돌, 유리 등 버려진 자재들을 사용해 만든 구조물인데,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CULTURE

●타이동의 판타지
판타지 톄화 단지
Fantasy Tiehua

'타이동에서는 어디서나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는 농담이 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판타지 톄화 단지를 방문한 뒤의 일이다. '단지'라는 이름에 맞게 철도 예술촌, 톄화 음악 마을, TTstyle 원주민 문화 창의관, 타이동 스토리 박물관 등 문화 예술 공간들이 모두 몇 걸음만 가면 닿을 정도로 총집결해 있다. 낮에는 낡은 기차 선로를, 밤에는 풍등이 수놓인 거리를 음악과 함께 천천히 걸어 보는 것. 판타지 톄화 단지는 존재 자체가 '판타지'다.

예술은 선로를 타고
철도 예술촌
Taitung Railway Art Village

대만 남부선 개통 이후, 승객과 화물 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옛 타이동역과 연결되는 노선은 2001년 폐쇄되고 신규 역이 세워졌다. 기차가 끊긴 자리엔 예술이 들어섰다. 80년 역사의 타이동역과 기존 6km의 철로, 오래된 기차, 갖가지 예술 조형물들은 철도 예술촌을 거대한 야외 갤러리로 만들어 주는 장본인들이다. 2023년 12월 기준, 인증숏 명소였던 타이동역 간판은 태풍으로 인해 사라진 상태다.

음악 더하기 마켓
톄화 음악 마을
Tiehua Music Village

타이동의 신진 예술가와 음악가들의 창의적인 안식처. 뮤지션들이 선보이는 라이브 공연을 비롯, 타이동 전역의 수공예 전문가와 농부들이 참여하는 '슬로우 마켓'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슬로우 마켓은 20개 이상의 부스에서 독특한 수공예품, 유기농 농산물 등을 판매해 지갑이 술술 열린다. 달 맑은 밤이면 마켓을 둘러싸고 끝없이 늘어진 풍등이 한층 더 밝게 빛난다.

파도치는 컨테이너
TTstyle 원주민 문화 창의관
TTstyle

타이동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원주민 문화 산업을 육성하는 중요한 플랫폼. 타이동의 산과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곡선형 외관으로 '웨이브 하우스'란 별명이 붙었다. 50개의 컨테이너로 조성됐으며, 원주민 상점과 개성 넘치는 식당 및 카페들이 입점해 있다. 건대의 커먼그라운드 같은 느낌이랄까. 낮보단 조명이 들어오는 밤에 더욱 화려해진다.

이야기가 흐르는 곳
타이동 스토리 박물관
Taitung Story Museum

타이동 현 사무국과 대만 최대 규모의 체인 서점인 성품서점(Eslite Bookstore)이 합작해 설립한 예술 공간. 1층은 서점이자 편집숍이고, 2층은 타이동의 음악, 스포츠, 정착민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3층에서는 다양한 강연, 토론회, 워크숍 등이 열린다.

●폐공장에서 예술 단지로
설탕 공장 문화 단지
Taitung Sugar Factory Culture Park

일본 식민지 시대, 설탕 산업은 대만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타이동은 제당업이 크게 번성했던 지역 중 하나였다. 1913년, 타이동 설탕 공장이 세워진 배경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설탕 산업이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자 공장도 가동을 멈췄다. 그리고 2004년, 잠잠했던 공장 단지가 예술 산업 단지로 재탄생하면서 공간의 쓸모는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현재는 30여 명의 현지 예술가와 요식업자들이 목공예 스튜디오, 갤러리,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며 활동 중이다. 얼핏 보면 버려진 공장 단지지만,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구석구석을 뒤져 봐야 비로소 진가가 나타난다. 어두운 창고를 들어서면 힙한 옷가게가 나타나고, 뒷골목을 걷다 보면 폐자재로 만든 예술품이 등장하는 식. 그러니 오감을 한껏 예민하게 곤두세워 볼 것. 무심히 지나치다간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천연 염색 옷가게
콰이(Kuai Indigo Dyeing)

두 모녀가 3년째 운영하고 있는 핸드메이드 천연 염색 옷가게, 콰이(Kuai Indigo Dyeing). 머리띠부터 원피스까지, 깜찍한 청청 패션을 시도하고 싶게 만든다.
하이 버디(Hiii birdie)설탕 공장 문화 단지에서 가장 핫한 브런치 가게, 하이 버디(Hiii birdie).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슴슴한 맛의 브런치 메뉴들이 돋보인다. 아보카도 사과 밀크부터 자두 파운드 케이크까지, 디저트류도 짱짱하다.

시간이 멈춘 역
마란 기차역
Malan Station

일제 강점기 당시 설탕을 운반하기 위해 지어졌던 작은 기차역. 설탕 공장의 폐업과 고속도로의 발달로 열차가 끊기자 2001년, 기차역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주민들만이 간간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며 낡은 역을 지나칠 뿐이다. 설탕 공장 문화 단지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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