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영풍제지 사태에 화들짝…상장사 절반이 신용융자 불가

김소연 기자 2023. 12.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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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기업오너, 지분 담보대출 거절사태 ②
[편집자주] 한 때 유치경쟁이 치열했던 코스닥 상장사 최대주주 지분 담보대출이 이제는 찬밥신세다. 지분담보 대출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이 없는 안전상품이자 추가 마케팅 수단으로도 활용됐으나 최근 2년간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시세조종에 휘말린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담보가치가 확 줄었다. 담보대출을 시행한 증권사들은 만기연장 대신 상환을 재촉하는데 급기야 반대매매로 지분이 날아간 오너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주가 차트가 계단식 상승구조를 그리면서 '천국의 계단'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영풍제지는 지난 10월18일 돌연 하한가를 기록했다. 주가조작세력이 잡히고 거래가 재개된 이후에도 6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으며 한때 5만4200원(수정주가 기준)이었던 주가는 순식간에 4000원대로 고꾸라졌다.

영풍제지의 급락은 투자자 뿐만 아니라 증권사에도 충격을 안겼다. 영풍제지가 이상한 급등세를 이어가는 중에도 증거금률 40%를 유지했던 키움증권이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해 수천억대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투자를 원하는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던 쏠쏠한 미수·신용거래가 위험상품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라덕연 사태에 이어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까지 발생하자 증권사들이 잇달아 신용·미수거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중이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5곳(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키움증권)은 올해 신용융자 불가 종목을 대폭 늘렸다. 5개 증권사의 신용거래 불가 종목 수는 지난 1일 기준 평균 1885.2개로 지난해 말 1361.4개에서 3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900여개에서 올해 약 1900개로 최대 2배 이상 늘린 곳도 있었고, 가장 적게 늘린 곳은 1400여개에서 1700여개로 19% 증가했다. 지난 1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 상장사를 합해 전체 상장 종목수가 3834개(ETF, ETN 포함)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가량이 신용 불가 종목에 지정된 것이다.

신용융자는 증권사가 예탁된 주식, 채권, 수익증권이나 현금 등을 담보로 고객에게 주식매수자금을 90일 빌려주는 것으로 일정 횟수 안에서 대출연장이 가능하다. 다만 빌린 돈에 대한 담보(주식) 평가 금액의 비율이 140%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강제 청산, 즉 반대매매에 나선다. 미수는 일정 증거금을 내고 외상으로 사는 초단기 외상 주식거래다. 2일 뒤인 결제일까지 갚지 못하면 하한가에 반대매매된다.

증권사들은 금융투자협회의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을 가이드라인 삼아 자체적으로 신용거래 불가 종목을 선정한다. 종목별 재무 현황, 가격 변동성, 유동성, 신용융자 비중, 기타 시장정보 등을 살펴 신용거래 여부 및 신용거래 기준(신용융자한도, 기간, 이자율, 신용거래보증금률, 담보유지비율 등)을 정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별 차이는 있지만 신용융자 금리는 대개 5~8%(1~7일 기준)에 형성돼 있다.

영풍제지 사태로 키움증권이 수천억대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증권사들의 경각심이 커지면서 신용불가종목을 대폭 늘린 것이다. 많은 증권사들이 영풍제지를 신용융자 불가종목으로 지정했는데, 키움증권은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하다가 주가조작 사범들의 레버리지 창구로 사용돼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했다. 키움증권은 결국 영풍제지 미수금 총 4943억원 중 610억원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사진=임종철


이에 최근에는 변동성이 조금만 커지면 바로 증거금률을 올리거나 신용거래 금지 대상에 올린다. 최근 상장한 에코프로머티리얼즈도 신용불가 종목이다. 에코프로머티는 지난달 17일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후 급등해 상장 당시 3조원 수준이었던 시가총액이 현재 10조원 수준으로 불었고 코스피 200 종목에도 편입됐다. 상장한지 한달도 안돼 공모가(3만6200원) 대비 주가가 약 4배 급등하자 대형 증권사들은 일제히 에코프로머티 증거금률을 100%로 높였다. 증거금률 100%는 사실상 미수, 신용거래를 막는다는 뜻이다.

증권사들이 리스크 강화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일시에 신용거래가 옥죄여지면 수급에 큰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 주가는 출렁일 수 있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증권사 신용융자 불가종목으로 지정되면, 신용대출 연장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만기 전 빌린 돈을 모두 갚아야 한다. 그러나 신용거래를 하는 투자자는 보유 현금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 레버리지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아 주식 처분 없이는 대출을 갚기가 어렵다.

이에 신용거래가 끊긴다는 소문이 돌면 주가 하락 가능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선(先)매도에 나서면서 해당 종목 주가가 급락하고, 증권사의 반대매매도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대주주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기업이라면 낮아진 담보 가치로 대주주 물량까지 시장에 출회, 주가가 추락하는 악순환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금융 시스템이나 증시 건전성을 위해 리스크 관리 강화에 힘쓰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부장은 "신용융자 불가종목에 지정된다고 주가가 다 빠지진 않고, 하락하는 종목은 이유가 있다"며 "오히려 그런 종목들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용비율을 줄여야 더 큰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시장 전체적으로도 변동성을 축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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