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대출 안돼" 대주주 지분매도 속출…주식시장 뇌관 되나
[편집자주] 한 때 유치경쟁이 치열했던 코스닥 상장사 최대주주 지분 담보대출이 이제는 찬밥신세다. 지분담보 대출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이 없는 안전상품이자 추가 마케팅 수단으로도 활용됐으나 최근 2년간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시세조종에 휘말린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담보가치가 확 줄었다. 담보대출을 시행한 증권사들은 만기연장 대신 상환을 재촉하는데 급기야 반대매매로 지분이 날아간 오너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6일 김 대표의 지분 104억원 어치(66만4097주)에 대한 반대매매가 이뤄지며 이날 주가는 25.94% 급락했고 지난 8일에도 104억원 상당의 김 대표 지분 200만주가 장내매도됐다. 김 대표의 지분율은 기존 16.36%에서 9.79%로 하락했고 이 기간 주가는 78.4% 급락했다.
#신약개발 업체 보로노이의 최대주주 김현태 대표 역시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주담대 250억원을 상환하라는 통보를 받으며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김 대표가 담보로 제공한 주식은 유상증자 신주로 보호예수가 걸려있어 강제 반대매매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해당 소식이 알려진 지난 4일 보로노이 주가는 장중 12%대 급락하며 변동성을 키웠다.
최대주주 주담대 상환으로 리스크가 불거진 건 비단 두 기업뿐이 아니다. 라덕연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전반적으로 대출상품 리스크 관리 강화에 나서면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최대주주들의 상환 압박이 커진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담보물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에 미리 대처하는 차원이지만 의도치 않게 최대주주 물량이 시장에 대거 나오며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근 최대주주가 주담대 물량을 일부 상환하거나 기존보다 높은 금리로 만기 재연장을 하는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KCC는 주요주주인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이 기존 주담대 일부를 중도상환하면서 지난달 총 80억원 상당의 보유주식을 장내매도했다고 지난 7일 공시했다. 정 회장은 KCC 주식 3만주를 담보로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3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지난달 보유주식 일부를 매도하면서 대출금 상환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 회장의 지분 매도 및 주담대 상환과 관련해 KCC 관계자는 "대주주 개인적인 목적에 의한 주식 매도 및 상환으로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영재 노루홀딩스 회장 역시 증권금융으로부터 받은 20억원 규모의 주담대 전부를 상환하면서 담보대출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은 37억원 규모의 주담대 중 4억원을 최근 상환했고 마케팅 업체 FSN은 최대주주 특별관계자 2인이 지난달 주담대를 갚았다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사 바이브컴퍼니의 최대주주인 김경서 의장은 주식 64만주를 담보로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받은 25억원 규모의 주담대 계약을 최근 해지했다. 이와 함께 본인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전환사채권도 지난달 30일 매도했다. 누리플렉스의 최대주주인 누리플렉스 홀딩스는 16억원 규모의 주담대 전액을 최근 상환했고 TS트릴리온의 주요주주인 에이스파트너스는 주가 하락에 따른 담보비율 하락으로 인해 보유지분 1200만주 중 780만주를 매도해야 했다.
주담대 만기는 연장했지만 금리가 더 오른 경우도 있었다. 이희준 코아시아 대표는 10억원 규모의 주담대를 3개월 연장했으나 금리는 기존 5.95%에서 6.5%로 상승했다. 리메드의 이근용 이사회 의장 역시 담보대출은 연장하는 대신 금리는 기존 5.5%에서 5.9%로 올랐다.
최근 최대주주의 주담대 상환과 지분 매도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증권사의 신용 리스크 관리 강화와 무관치 않다. 지난 4월 라덕연 일당의 CFD(차액결제거래)를 이용한 주가조작의혹 사태 이후 증권사들은 CFD 미수금으로 인해 수백억원대의 충당금을 쌓아야 했고 이후에도 이어진 동시다발적 연속 하한가 사태나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 등으로 인해 증권사들은 대출상품 리스크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증권사의 신용 리스크 관리 강화 여파는 최대주주 주담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담대는 통상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만기 연장이 이뤄지는데 상장사 최대주주의 지분은 담보물이 확실하고 신용이 높아 웬만하면 만기 연장이 거절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담보대출에 대해서도 개별건마다 심사를 깐깐하게 하면서 이오플로우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증권사가 강제 상환 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주담대 금리가 오르면서 차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초만해도 주담대 금리는 연 2~3%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연 5~6% 수준으로 2배 이상 상승했다.
한 증권사의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담당 임원은 "아무래도 올해 신용 관련 여러 이슈들이 있다보니 리테일 부서에서도 대출 심사를 보다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증권사들의 신용 리스크 관리 강화가 증시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오플로우나 보로노이처럼 유동성에 취약한 코스닥 상장사들은 최대주주 물량의 출회만으로도 큰 변동성을 나타낼 수 있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올해(1월1일~12월10일)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담보제공계약 체결 공시(만기 연장 포함)는 9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건 보다 2배 이상 늘었고 담보대출 규모는 약 1조6548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18억원) 대비 54.4% 증가했다. 주가 하락으로 담보비율이 하락하거나 주담대 연장이 불가할 경우 잠재적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물량이 1조6500억원에 달한다는 의미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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