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 ‘타타타’ ‘열정’… 300곡 가사에 인생 철학 녹였어요

김민정 기자 2023. 12. 1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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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32] 작사가 양인자
지난 8일 경기도 용인에서 만난 작사가 양인자.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립스틱 짙게 바르고’ ‘열정’ 등 수많은 히트곡 가사로 많은 이의 마음을 울렸다.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누구보다 대중적 인기를 크게 얻은 문인이었던 셈이다. /고운호 기자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가수 조용필의 긴 읊조림으로 시작되는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많은 이의 뇌리에 박힌 이 가사는 작사가 양인자(78)가 썼다. 서정적인 노랫말로 1980~1990년대 히트곡들에 오랜 생명력과 깊이를 입혔다. 지금까지 작사한 곡이 300여 곡. ‘그 겨울의 찻집’ ‘Q’ ‘서울 서울 서울’ ‘타타타’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열정’ ‘알고 싶어요’ 등 히트곡은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난 8일 남편 김희갑 작곡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경기도 용인에서 그를 만났다. 소녀같이 맑은 얼굴을 하고 표범과 청춘, 삶의 열정을 이야기했다. “노래하고 살았던 나날”이라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미리 쓴 신춘문예 당선 소감

작사가 양인자의 출발점은 문학이었다. 첫 직업은 소설가였다. 부산여중 3학년 재학 시절 방학 숙제로 써낸 장편소설 ‘돌아온 미소’가 이듬해 출간되며, 부산의 ‘천재 문학 소녀’로 주목받았다. 원하는 대로 풀리진 않았다. 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1965년부터 10년간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는 “은사이신 소설가 김동리 선생님이 ‘얘는 왜 이렇게 문턱에 잘 걸리나 몰라’라고 말하곤 하셨다”고 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당시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걸 꿈꾸며 미리 끄적였던 당선 소감을 가사로 만든 것이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정월 초하루 떨어진 걸 확인한 뒤, 또 1년을 어깨에 걸치고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며 소감을 미리 써봤던 거예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같은 가사가 “사는 게 참 지질했던 시절”에서 우러났다는 것이다. 양인자는 “원래 ‘표범이 굶어 죽기 전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소감 글이었죠”라며 깔깔 웃었다.

김동리 추천으로 1974년 등단했지만 이후 쓴 30여 권의 책에 대해선 “성형 비포(before) 사진같이 부끄러워 다시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책들을 보이는 대로 없애고, 열다섯 살 터울 오빠가 간직하던 첫 소설 ‘돌아온 미소’마저 불태워 “화형”시켰다.

◇‘Q’ 가사 속 ‘너’는 연인 아닌 ‘드라마’

두 번째 직업은 방송 드라마 작가였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 ‘여학생’에서 일하던 시절, 동료였던 드라마 작가 김수현을 따라 소설에서 드라마로 전향했다. 1974년부터 드라마를 쓰기 시작해 ‘부부만세’ ‘혼자 사는 여자’ ‘제3교실’ ‘나의 어머니’ 등으로 인기도 얻었다. 그러나 소설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차지 않았다. “아무리 목을 매고 써도 내가 원하는 불길이 안 보였다”고 했다. 그러던 중 작사가의 길이 남편과의 인연과 함께 찾아온다. 1985년 유명 작곡가 김희갑이 함께 가요를 만들자고 연락한 것. 드라마 주제가 가사를 직접 쓴 실력을 보고 제안해왔다. 하룻밤 만에 가사를 써 들고 나갔는데 그 곡이 혜은이의 ‘열정’이었다. “곡이 차트에 오르고 즉각적으로 뜨거운 피드백을 받으면서 ‘아, 내가 해야 할 일은 작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사가 양인자의 보물들. 직접 손글씨로 가사를 적은 300여 곡의 악보. /고운호 기자

한동안 작사 일과 병행하던 드라마를 완전히 접으며 쓴 가사가 조용필의 ‘Q’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중략)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 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그는 “가사 속 ‘너’는 연인이 아니라 드라마였다”며 “그래도 내게는 소설과 드라마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노래 가사에도 ‘기승전결’을 넣으려 했고, 그게 다른 가사와의 차별점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했다.

◇조용필의 욕 섞인 포효가 들어간 19분 30초 대작

이후 1993년까지 ‘양인자 작사·김희갑 작곡’ 콤비의 시절이었다. 히트곡들이 쏟아졌다. 특히 가수 조용필과의 만남은 특별했다. “가사가 많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길이가 거의 20분에 달하는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처럼 실험적인 곡을 가수가 받아들이고 불러주지 않으면 누가 들었겠어요.” 카세트 테이프 한 면 길이에 맞춰 만든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조용필이 ‘노래로 욕을 하고 싶다’고 해 만들어진 곡”이다. “유명인이기에 당하는 억울함, 변명도 못 하는 서운함을 눈에 가득 담고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이 곡은 독백과 노래, 포효로 이뤄져 있다. “이 곡에서 욕을 했다고 하면 다들 ‘어디서?’라고 의아해해요. 악을 쓰는 부분인데, 가요 중에서 욕을 제일 많이 한 노래일걸요.”(웃음)

그는 옛 물건을 대부분 처분했지만, 작사한 300여 곡의 악보만큼은 보물처럼 보관해왔다. 1990년대 남편과 뮤지컬 ‘명성황후’ 작업을 한 이후 가요 작업은 뜸해졌다. “1980~1990년대에는 가슴으로 들어가는 노래, 인생에 충격을 주는 노래들을 좋아해주셨는데, 요즘은 철학적 얘기나 주제가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트렌드를 좇지 않고 하고 싶은 노래를 계속해왔고요.”

◇기억 잃는 남편 보며 신곡 만들어… 놓을 수 없는 ‘열정’

작사가 인생에서 남편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남은 물건은 거의 없고, 남편이 보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게 작사가의 기회를 준 사람이고, 존경하는 사람이죠. 남편을 만난 이후 제 삶은 핑크빛이 됐어요. 괴로운 것도 없었고요.” 남편은 4년 전부터 인지 장애 증상으로 기억을 잃고 있다. 최근 남편이 작곡해뒀던 곡에 가사를 붙여 낸 신곡에 심경을 담았다. ‘눈을 맞춰도 소리쳐 불러도 텅 빈 들녘처럼 우두커니….’(김혜영 ‘사랑도 쓸모없네’) 그는 “누구나 결국 한 번은 겪어야 할 이별이라고 생각하고 씩씩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남편 김희갑 작곡가. /양인자 제공

그는 열정을 좇아 살았다. 가장 아끼는 노래도 ‘열정’. “지금도 내 속에 가사처럼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열정이 우러나오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쓴 가사에 소회를 덧붙인 책 ‘그 겨울의 찻집’이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고, 다음 달에 신곡도 나온다. “작사는 내가 하고 싶었고, 그래서 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작사가는 멜로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로 옮기는 번역가”라며 “제 번역을 좋아해주신 분들이 잘해왔다고 ‘쓰담쓰담’ 해주시는 상 같다”고 했다. 그는 “노래가 잊히지 않고 계속 불리는 것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최근 받은 보관문화훈장.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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