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불확실성의 시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교수는 1977년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을 펴냈다. 당시 오일쇼크로 침체의 늪에 빠진 세계 경제상황을 분석한 저서였다. 미래 경제에 대한 희망이나 확신을 가진 경제학자도, 과감한 투자에 나선 자본가도, 침체탈출의 해법을 제시하는 경제이론도 부재한 상황을 갤브레이스 교수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했다.
반세기 흐른 지금,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024년 세계 경제를 ‘전례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여전히 우리는 미래 경제가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어느 분야보다 경제는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 예측을 넘어서는 불확실성의 변수가 너무 많아서다. 때문에 기업은 끊임없이 미래 먹거리를 찾아 투자를 하고, 가계는 한푼 두푼 저축을 한다.
현실 경제를 짓누르는 가장 큰 불확실성은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원인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무차별로 찍어낸 통화량이다.
미국 달러는 2년 사이에 10% 이상 통화량이 증가했다. 당연히 물가도 화폐 증가량만큼 치솟을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물가 상승률이 다소 진정되곤 있지만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지 않았으며 언제든 되살아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금리도 불확실성의 요인이다. 미국 시장금리는 여전히 5%를 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기준 금리가 5%를 넘는 초고금리 기간은 두서너 차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단시간 안에 금리를 내리긴 어려워 보인다. 고금리는 기업 실적은 물론 가계 소득까지 약탈한다. 아직 소비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폭증한 통화량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곳간이 바닥날 시간도 머지않다. 고금리의 후유증은 최소 3년 이상 경제적 고통을 수반한다.
경기침체 가능성은 불확실성의 끝판이다. 표면상 기업 실적이나 가계 소득은 뚜렷한 변화가 없어 보인다. 판매량 감소에도 제품가격이 상승한 덕분에 기업 실적은 변화가 없고, 높은 고용률이 유지되면서 가계 소득도 변동이 없다. 하지만 내년 중반 이후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충격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는 시점이 경기침체의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의 정치적 리스크도 세계 경제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반세기 만에 등장한 이데올로기 전쟁은 불안한 에너지 가격과 자원의 수요와 공급망 붕괴를 초래하면서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적 불확실성은 어김없이 국지적이든 다국적적이든 전쟁이라는 극단적 사태를 몰고 왔다. 경제적 위기를 정치적 돌파구로 위기를 탈출하려는 원시적 선택을 강요받는 셈이다.
내년도 우리 경제는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 조선과 같은 중후장대형 제조업의 부진이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정학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중국 시장이 침체국면에 빠져 있는 것도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변수다. 우리 기업에게 신천지 시장으로 부상했던 유럽과 러시아, 남미 시장도 보호무역주의와 경기침체로 탈출구를 막고 있다. 상당 기간 우리 기업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환경이다.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는 해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기업과 가계의 체질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성장성이 높은 첨단산업에 대한 선택적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고금리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부채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도를 벗어난 부채는 뇌관이 없는 폭탄이다.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미래 경제에 대한 담보물이다. 국가 차원에서 AI 로봇 이차전지와 같은 첨단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2024년은 경제적 불확실성의 해가 아닌 희망의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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