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17] 지옥의 옹호자들
토머스 케닐리의 실화 소설 ‘쉰들러의 방주’가 원작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를 생각한다. 1939년,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폴란드에서 나치에게 뇌물 등을 제공하고 유대인 공장을 인수, 무임금으로 유대인들을 고용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그러나 그는 탄압, 학살당하는 유대인들의 실상을 마주하고는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는 자신의 유대인 노동자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도록 위험을 감수하고 재산을 탕진하면서 최선을 다한다. 그가 구해낸 유대인들 이름이 바로 ‘쉰들러 리스트’다.
명단에는 1098명이 기록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더 구해내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쉰들러의 묘비에는 모두 1200명이라고 새겨져 있다. 독일이 패전하자, 그 유대인들은 쉰들러에게 자기들 금니를 녹여서 만든 반지를 선물한다. 반지에는 ‘탈무드’의 글귀가 적혀 있다. “한 사람을 구함은 세상을 구함이다.” 쉰들러는 반지를 보며, 돈을 더 벌었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낼 수 있었을 거라고 오열한다. 영화 엔딩에는 오늘날 폴란드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은 4000명이 안 되는데, 쉰들러가 살린 유대인과 그 후손은 6000명 이상이라고 적혀 있다.
포수(砲手) 집안에 아픈 사람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인연(因緣)을 중시하고 살생(殺生)을 악업(惡業)으로 여기는 불교적 시각일 것이다. 지난 11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국의 북한 이탈 주민 강제 북송 중단 결의안’이 상정돼 재석 의원 260명 중 253명이 찬성표를, 7명이 기권표를 던졌다. 기권한 국회의원 7인은 평소 정의(正義), ‘사람이 먼저다’, 민족, 민중 등 아름다운 말들을 입에 달고 사는 인간들이다. 비난이 있자, 그들 중 하나는 전자 투표기 오류였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전자 투표기를 잘못 눌렀다며 변명했다. 제 개, 고양이를 누가 끌고 간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자들이 본회의 해산 전에 정정하지 않은 것을 보면 더 가증스럽다. 설마 북한 강제수용소가 유대인 강제수용소보다 안락하다고 여긴다면 통일부 ‘북한 인권 보고서’를 읽어보면 된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소년 홀든 콜필드는 위선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환멸한다. 그러고 이런 소망을 가진다. 절벽이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기 위해서.
누군가의 인생을 알고 싶으면 그가 무엇을 지켰는지 보면 된다. 고통받는 이들의 언어가 돼주는 게 작가의 소임일진대,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동포들이 저 국회의원 7인에게 하는 말을 대신 전한다. “한 사람을 구함이 세상을 구함인데, 너희는 너무 많은 세상을 저버렸다. 누구는 살린 이들의 명단을 가지지만, 누구는 죽인 이들의 명단을 가진다. 악업(惡業)이 무섭지 않은가? 너희는 우리를 감금한 이 지옥의 옹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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