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전통예인 인터뷰 한 젊은 작가, 원로가 돼 책으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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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출판사에서 나온 작가 유익서의 새 책 '소리와 춤을 살았더라'를 펼치니,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1980년대 '월간 음악동아'에 유익서 작가가 연재한 '명인명창을 찾아서' 시리즈가 이 책의 뼈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 전통 예술문화의 현장에서 기량과 패기가 팽창 일로에 있던 젊은 작가가 생생하게 길어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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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가 잃은 것과 지킨 것
- 1980년대 통해 비춰보는 책
열화당출판사에서 나온 작가 유익서의 새 책 ‘소리와 춤을 살았더라’를 펼치니,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책의 어디든 그냥 턱 펴 놓아도, 책이 도로 접혀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드사철제본’이라는 방식으로 만든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전통의 향기와 쓸모를 함께 느꼈다. 옛 선비들이 책을 펼쳐놓고 편한 자세로 오래 읽을 때, 누드사철제본에도 활용되는 전통 방식으로 만든 ‘펼침성이 좋은’ 책은 내용 속으로 빠져드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작가 유익서는 부산 출신 소설가로서 한국 문단에 선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고향 부산의 동아대와 동의대에서 소설을 가르쳤고, 오랜 세월 한산도와 통영시에서 살고 있다. 그는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입선,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소설가로서 등단 50년을 바라보는 그는 문학과 예술 현장에서 여전히 진지하고 성실한 원로 문학인으로 꼽힌다.
이번에 그가 펴낸 ‘소리와 춤을 살았더라’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 ‘오래된 새 책’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것 같다. 1980년대 ‘월간 음악동아’에 유익서 작가가 연재한 ‘명인명창을 찾아서’ 시리즈가 이 책의 뼈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 전통 예술문화의 현장에서 기량과 패기가 팽창 일로에 있던 젊은 작가가 생생하게 길어 올린 글이다. 목차를 살펴보자. 아마 익숙한 이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분들은 저자가 오래전인 1980대 현장에서 만난 최고봉의 예인들이기 때문이다.
가야금산조 김난초, 대금정악 김성진, 승무 한영숙, 판소리 김소희, 가곡 홍원기, 가사 정경태, 서도소리 오복녀, 선소리산타령 정득만, 범패 박송암, 강령탈춤 박동신,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창희, 통영오광대 이기숙, 고성농요 유영례, 임실필봉농악 양순용,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안사인, 이렇게 15인이다. 이 책에는 이들 예술인 15인 말고 주인공이 또 있다. 바로 저자 유익서 작가이다. ‘젊은 작가 유익서’가 예인들을 만나 이야기 듣고 써 내려가는 문장은 힘 있고 아름다우며 품격이 있다.
2023년 시점에 1980년대 이뤄진 전통 예술인 인터뷰를 읽는 느낌은 강렬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간신히 보존했으며, 무엇을 잃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통 예술과 한민족의 미학은 여차하면 잃기 쉬우니, 지금부터라도 더 잘 간직해야 한다는 교훈도 뜨겁다.
이 책에 실린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창희’ 편 한 대목을 보자. “하회탈이 국보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흥미로웠다. 류 원장 소싯적, 부친과 친교가 있던 민속학자 송석하 선생이 하회마을에 내려와 한동안 집에 묵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송 선생은 하회별신굿탈놀이에 관한 조사와 채록에 매달렸다.” 막상 이 동네 사람들은 ‘별스러운 조사를 다 한다’고 여기던 중이었다. “1954년경 주한미국대사관의 아서 조셉 맥타카트 문화담당관이 하회마을에 내려왔다. 그는 하회탈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맥타카트는 류 원장에게 하회별신굿탈놀이에 관해 집요하게 물었다. 그 얼마 뒤 미국의 저명한 민속학 전문 월간지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특집으로 다뤘고 세계적인 연극학회지 표지에 하회 양반탈이 등장했다. 이어 1964년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국보로 지정된다. 이런 역사 또한 우리가 간직하고 기억해야 할 현대사의 사연이다. 가야금산조 김난초의 주인공인 김죽파 선생 인터뷰는 우리 전통 음악 연주의 세계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전한다. 범패 박송암 스님은 ‘박영효의 손자’로 소개된다. 고성농요 유영례, 통영오광대 이기숙 편 또한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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