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최대 15조 손실 예상… 내년부턴 부실 정리해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PF 연체율은 계속 오름세다. PF 사업에 엮인 금융회사나 건설사의 신용도도 하락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최근 한 달(지난 8일 기준) 사이 PF 위험 확대를 이유로 5개 기업의 신용도를 낮췄다. 이 기간 전체 하향 조정 기업 12곳의 절반에 가깝다.
20년 넘게 금융권 리스크를 분석해온 나이스신용평가 이혁준 금융평가본부장은 최근 업계에서 ‘부동산 PF 15조 손실 가능성’을 지적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본부장은 8일 본지 인터뷰에서 “브리지론 30조원 중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내년부터는 풍선에서 서서히 바람을 빼듯 회생 가능성 낮은 PF 사업장부터 정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PF는 크게 브리지론(초기 사업 대출금)과 본PF로 나뉜다. 브리지론은 금융회사들이 착공 전 시행사에 빌려주는 토지 매입 용도 등의 자금을 가리키고, 인허가 후 사업이 본격 시작되면 은행 등에서 본PF를 받아 이 돈으로 브리지론을 상환한다.
- 브리지론 30~50% 손실 전망 이유는?
“현재 브리지론 단계 토지가 경매나 공매로 나오는데, 30~40% 할인된 가격에 낙찰이 된다. 이마저도 어려우면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절반 정도 가격에 매입한다. 지난 1년여간 브리지론에서 착공 단계인 본PF로 진입한 사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전체 브리지론에서 경·공매 할인가와 캠코 매입 비율인 30~50%를 감안한 9조~15조원을 잠정 손실로 봐야 한다.”
- 그정도 손실이면 충격이 클 것 같다.
“9조~15조원이 한 번에 터지면 경제 시스템은 큰 충격을 받는다. 풍선에서 서서히 바람을 빼듯 사업성 낮은 브리지론을 수년에 걸쳐 정리해야 한다. 브리지론에서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는 저축은행, 캐피털, 증권사들은 꾸준히 증자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금융 당국과 대주단은 대출 만기 연장 등으로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금융 당국은 외환위기, 카드사태, 저축은행 사태 등을 거치며 축적한 많은 정책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 브리지론 중 특히 위험한 곳은?
“PF는 크게 아파트 등 주거용과 상가, 물류 센터 등 비주거용으로 나뉜다. 분양률이나 연체율 등을 따졌을 때 비주거용이 더 위험하고, 그중에서도 물류 센터가 심각하다. 지역을 보면 서울·수도권보다는 지방이 위험하다.”
- 금융회사들은 브리지론에 왜 뛰어들었나?
“2013~2014년 부동산 경기가 바닥일 때 A증권사가 PF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다른 증권사들은 ‘저러다 큰일난다’며 비난했다. 그런데 A사 이익이 급증하니 2018~2019년엔 모든 증권사가 PF를 취급하고 있더라. 증권사들이 PF에 뛰어들기 전엔 연간 이익이 4조원 정도였는데 그 이후엔 8조원이 됐다. 2011년 PF 투자로 호되게 당한 저축은행은 2018년부터 다시 들어갔다. 다들 욕심부리다 급격한 금리 인상 등 예상치 못한 변수에 우려가 커진 것이다.”
- 정부가 총선 등을 고려해 정리를 늦춘다는 시각이 있다.
“금융 당국은 대주단 협약을 만들고, 이를 통해 만기 연장을 유도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금융회사들은 증자를 하거나 충당금을 쌓으면서 위기에 대비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도 정부는 같은 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총선을 의식해 늦추는 것이 아니라 연착륙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본다. 내년 4월 총선 전이라도 조금씩 정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그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 PF 위기는 왜 반복되나?
“우리나라 특유의 부동산 개발 방식에서 오는 리스크다. 우리나라는 시행사가 토지매입자금의 10%만 자기자본으로 시작하고 나머지 90%는 대출로 조달한다. 선진국에선 시행사가 대부분 자기자본에 기반해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브리지론’이란 단계가 없다. 우리나라도 영세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시행사들은 정리돼야 한다. 위험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자금력 있는 시행사들이 PF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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