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작곡가 이상근 아카이브…공연·교육 활용법 고민을”

이진규 기자 2023. 12.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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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하> 사업 세미나 지상중계

- 지역 최초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
- 한국적 恨 담는데 혼신을 기울여
- 아카이빙 사업 통해 작곡집 출판

- 지역 예술인 기록은 콘텐츠 원천
- 제도화·부가가치 창출 등 전담할
- 부산예술기록원 설립 추진돼야

부산 지역 문화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이브 사업의 한 예로 작곡가 이상근 아카이브 사업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으로 지역 최초의 오페라인 ‘부산성 사람들’ 작곡집이 최근 출판됐다. 부산문화재단과 국제신문이 공동기획하고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주관으로 지난달 30일 열린 ‘2023년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 세미나-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과 2차 콘텐츠화’에서 이상근 아카이빙의 성과와 이를 토대로 한 부산예술인 아카이브의 활용 방안을 모색했다.

부산을 기반으로 마산 대구 등지에서 작곡가 양성과 후진 양성에 크게 이바지한 작곡가 이상근은 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유일한 오페라 작품이 임진왜란 때 부산성 전투를 배경으로 한 ‘부산성 사람들’이다. 사진은 이상근의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 공연 모습. 국제신문DB


▮‘이상근 <부산성 사람들>(1985)의 의미’

-하순봉 작곡가

하순봉 작곡가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성 싸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대본은 박두석이, 곡은 이상근이 쓴 이 작품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제7회 부산시민의 날 경축 행사의 하나로 그해 10월 5~7일 부산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초연됐다. 1992년에는 부산포 승전 400주년 기념공연 작품으로 개작돼 10월 5~8일 같은 무대에 올랐다. 이 오페라를 두고 작곡가 이상근은 “이 작품은 1983~1986년에 걸친 나의 음악사고의 결집”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86년 초연 후에는 몇 개의 아리아를 전면 개작하는 등 일부를 수정했다.

이상근은 이 오페라에서 오직 한국적인 ‘한’을 주제로 듣기 쉽고 연주하기 쉽게 작곡해 부산의 음악적인 총력을 집결해 보자고 의도했다. 그는 1992년 재연 때의 프로그램에서 “임진왜란 발발 400주년에 시민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이 재연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고 우리 고장 이외에는 이러한 작품이 없다는 데에도 큰 긍지를 갖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근은 오페라로는 이 ‘부산성 사람들’ 한 작품만 남겼다. 당시 이 작품은 1986년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명분이 있어 부산 최고 작곡가였던 이상근에게 작곡을 위촉했다. 또 당시 부산시향 등 부산 음악인의 역량이 총동원돼 초연된 것은 작곡가 개인이나 부산 음악계에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상근의 작품 전집은 2009년 진주의 이상근기념사업회가 출판했다. 이 가운데는 ‘진주성 사람들’의 1992년 개정판이 포함됐다. 올해 부산문화재단의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의 하나로 제작한 ‘이상근 오페라 작곡집 부산성 사람들(1985)’은 1986년 공연의 초고판이다. 잠시 중단됐던 진주의 이상근음악제도 다시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상근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일은 많지 않다. 작곡가가 역사에 잊히지 않는 길은 결국 무대에서 연주되는 일이다. 이상근의 오페라 작곡집을 출판한 이번 아카이빙 사업도 이의 연장선상이지만 이런 악보의 출판과 보급에 이어 그 구체적인 결과가 무대에서 연주로 나타나야 한다. 앞으로 연주단체와 학술단체 등이 모여 이런 작품의 활성화나 연주에 관해 구체적인 대안을 깊이 있게 논의했으면 한다.

‘부산성 사람들’은 부산을 소재로 한 최초의 오페라이자 부산 음악계가 총결집한 시민오페라단이라는 이름으로 제작한 첫 오페라라는 의의가 있다. 내용도 임진왜란 때 정발 장군과 그의 애첩 애향, 부산성을 지켜내기 위한 백성의 이야기로, 부산만이 내세울 수 있는 이야기이자 후손이 기억해야 할 역사이기도 하다. 작품성으로도 작곡가 전성기의 작품으로 한국적 어법이 잘 표현돼 외국에 내세울 수 있는 한국적 정체성이 확실한 작품이다.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둔 현시기에 서구 메이저 레퍼토리만을 무대에 올릴 수는 없다는 여론과 함께 우리 창작 오페라의 당위성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으로 가려는 우리 작곡가들의 분발이 필요하고 또한 그런 오페라를 만들겠다는 모든 분야의 문화적 여건이 성숙해야 한다. 이상근 오페라는 그런 면에서 앞으로 이어질 부산 창작 오페라의 좋은 선례로 계속 재연되고 살아남아야 한다.

▮‘작곡가 이상근과 부산예술인 아카이브 활용 방안’

-남영희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영상매체협동화과정 강사

남영희 강사


아카이브는 기록물 그 자체이자 기록물 보존 공간과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행위와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아카이브는 기록을 수집 평가 선별 분류 정리 기술 보존 서비스하는 모든 과정인 아카이빙의 결과이면서 콘텐츠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예술인 아카이빙은 아카이브의 대상이 예술인이며, 일기 사진 편지 등 예술가의 사적 기록물이나 예술가가 생산한 예술작품·문헌자료, 예술가가 수집·보존한 자료와 기록물을 수집 분류 보존해 유용한 정보로 활용하는 행위를 망라한다. 지역 예술인 아카이브는 지역 정체성의 발견과 지역 문화예술 경쟁력의 원천이자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지역 예술인과 예술 활동의 자부심을 높이며 지역 문화예술사와 지역사를 서술하는 토대가 된다.

지역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이빙은 대상 선정 기준의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 대상을 지역 문화사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지역 문화예술의 고유성과 문화적 가치를 지닌 예술인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또 선정 과정에서 파벌과 정실주의를 경계하고 예술인의 무조건적인 현양은 지양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추고 일관성 있는 지침을 마련하고 아카데믹하게 접근해 자료 수집과 보존 체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또 작고한 예술인의 유족 등으로 수집 채널을 다각화하고 수집한 자료는 접근성을 확대하고 안정적으로 서비스하는 방안을 마련해 활용성을 높여야 한다.

부산 예술인 아카이브는 근래 제갈삼, 허만하, 황무봉 같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부산소설가협회 40년’ ‘부산작가회의 발자취’처럼 예술단체의 아카이브 작업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올해 아카이빙을 진행한 작곡가 이상근의 경우 그동안 ‘한국의 차이코프스키’나 ‘영남악파의 대부’ 같은 추상적이고 기계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실증을 통해 정확한 작가 연보와 작품 목록을 구축하고 그에 대한 종합적 이해의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출생지인 진주와 주요 활동 지역인 부산과 옛 마산의 문화환경이 작곡가의 성장과 창작 활동에 미친 영향도 규명했다. 이를 통해 전시음악가협회와 실험악회 등에서의 활동을 확인해 작곡가 이상근의 음악사적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과를 거둔 이상근 아카이브 작업을 비롯해 지금까지 구축해 왔고 앞으로 계속 구축해 나갈 부산 예술인 아카이브의 활용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먼저 ‘OSMU(One Source Multi Use)’의 방식으로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장르로 변용해 부가가치를 얻는 전략을 지역 예술인 아카이브에도 적용해 공연·전시, 출판, 교육 연구에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예술 사료의 유실과 망실을 막고 부산예술인 아카이빙의 제도화를 이끌 예술 아카이브 기관인 부산예술기록원 설립이 필요하다. 이미 국내에 아르코 예술기록원, 한국영상자료원, 해외에는 미국 국립예술기록보관소와 공연예술도서관과 같은 예술 아카이브 기관이 운영 중이다. 부산예술기록원을 설립한다면 앞으로 이런 국내외 기관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지역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살찌울 수 있다.

# 한국戰 후 부산 정착, 지역 작곡가 키우고 100여 편 작품 남겨

▮ 작곡가 이상근은 누구

작곡가 이상근. 국제신문 DB


작곡가 이상근(1922~2000)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가곡 합창곡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현대음악 양식에 우리 민족의 전통과 고유한 정서를 담아내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 높이 평가받는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이상근은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 정착해 창작과 교육, 문필활동, 실내악 운동을 폭넓게 전개했다. 특히 부산을 기반으로 마산 대구 등지에서 작곡가 양성과 후속 세대 성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일제강점기에 동경음악학교, 한국전쟁 후에 미국 조지 피바디 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초등학교 교사와 마산여중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국립부산사범대학, 효성여대, 부산교대에 이어 부산대 교수로 자리 잡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7세 때 첫 습작으로 가곡 ‘나의 사랑은’을 지었던 그는 1979년 부산항 개항 100주년 기념 작품으로 칸타타 ‘분노의 물결’, 1986년 아시안게임에 맞춰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을 무대에 올렸다. 이를 비롯해 양악기와 국악기를 직접적으로 창작곡 ‘조우(encounter)’ 시리즈까지 그의 작품은 ‘한국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착이 가득 묻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공동기획 : 부산문화재단·국제신문

※주관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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