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대상] 뿌리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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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한국말이지만 또렷이 들렸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앞을 지나가던 하버드 대학생이 건넨 인사말이었다.
하버드 대학캠퍼스에서 그것도 외국인의 입에서 나온 우리말이 사뭇 반가웠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한다는 영어권의 나라에서 들린 우리말 한마디는 반가움을 넘어 묘한 자긍심마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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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한국말이지만 또렷이 들렸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앞을 지나가던 하버드 대학생이 건넨 인사말이었다. 얼마 전 미국 동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명문대 몇 곳을 견학했다. 하버드 대학캠퍼스에서 그것도 외국인의 입에서 나온 우리말이 사뭇 반가웠다. 언어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나라와 민족마다 서로 다르기에 몇 개의 대표 공용어가 존재한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한다는 영어권의 나라에서 들린 우리말 한마디는 반가움을 넘어 묘한 자긍심마저 생겼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하버드생들이 서로 사진을 찍자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는 희한한 풍경은 덤이었다.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하루 종일 우리를 위해 운전 해주시는 버스 기사분이 나를 보며 -“You look like Ros? from BLACKPINK!”- 블랙핑크의 로제를 닮았다고 했다. 순간 당황한 친구들은 나를 향해 빨리 마스크를 벗으라고 재촉했으나 단호하지만 인정 많은 목소리로 말했다. -You‘re good at reading people.-(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시네요~!) 문화의 힘을 경험했다. 그 힘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모으는 능력이 있었다. 한류라는 Made in Korea는 불과 몇십 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공식적인 선진국까지 수직 상승한 대한민국의 결과물이다.
사실 난 문화에 관심 없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명제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민족적 감성에 호소하는 구호로만 느껴졌다. BTS나 블랙핑크도 문화의 한 부분인데 말이다. 우연히 읽었던 책 한 권이 그런 나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트려주었다.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 덕분이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이다. 라고 외치시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던 ‘백범 김구’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또 하나의 간절함이 바로 ‘문화’였다.
‘경제력과 국방력이 약한 나라가 문화 수준이 높았던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라는 말씀은 경제력과 국방력이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국력이라고 이해했다. 우리의 문화가 가지는 힘과 가치를 일찍이 알고 계셨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우리나라는 경제력 세계 10위 국방력 세계 6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그의 식견이 놀라울 따름이다.
문화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많이 바뀔 즈음 경험한 해외 체험학습은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물건을 사면서 불편했던 카드체크기는 첨단으로 무장한 한국의 IT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고, 터지지 않는 와이파이는 우리의 속을 터지게 했다. 내 입맛에 안 맞는 심하게 짜고 단 음식들은 식욕부진을 불렀고 그 덕에 다이어트가 저절로 됐다. 소리부터 맛있는 보글거리는 김치찌개가 그리웠고 엄마가 끓여주는 호박과 두부 잔뜩 들어간 된장국이 먹고 싶었다. 상추에 삼겹살 한 점 올려 쌈장과 함께 우걱우걱 씹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음식도 문화였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언어와 문화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촉매 역할을 한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우리 문화에 자부심이 생겼다.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부자가 된 흥부를 샘낸 놀부처럼, 유튜브나 SNS에 자본주의의 꼭두각시가 되어 우리 문화를 잘못 표기한 사람에게 오지랖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문화가 소중하고 중요한 만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침해하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다. 더불어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떡’이 해외로 가면 ‘rice cake’이 된다거나 ‘막걸리’가 ‘rice wine’이 되는 경우다. 기업의 이윤과 현지인을 위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한국의 전통을 다른 언어로 표기하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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