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내 가족이 ‘강제 북송’ 피해자라면
지난달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강제 북송 피해자 가족 등과 함께 미국 뉴욕 유엔 대표부에서 간담회를 한다고 알렸을 때 솔직히 참석 여부를 고민했다. 성과가 없을 줄 알면서도 굳이 시민 단체와 함께 이른바 ‘외유성 방문’을 한 것이라면 들러리를 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담회장에서 피해자 가족들을 보는 순간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모두 무거웠고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10월 초 중국 당국은 수감 중이던 탈북민 500~600여 명을 강제 북송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유엔에서 12월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논의 중인 북한인권결의안에 ‘탈북자 북송은 중국 책임’이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수년간 채택한 결의안에서는 ‘강제 송환 금지(non-refoulement)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이 북송하고 있다는 점은 적시하지 않았다. 주어가 빠진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중국이라고 적시해야 중국도 국제적 압력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했다. 작은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한 맺힐 일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외교가 등에 따르면, 유엔은 결의안을 만들 때 웬만해서는 특정 국가를 지목해 비난하지 않는다고 한다. 외교 관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대신 결의안 문맥상으로 해당 국가가 어디인지 알게 하도록 표현한다는 것이다. ‘외교 관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는 끄덕였지만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국가 대 국가로 대화할 때는 사적 대화처럼 모든 것을 전부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당장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 문재인 정부 때 탈북 어민들을 강제 북송한 사건이 비판받는 것도, 그들은 우리 정부가 지켜주고 마음을 보듬어줘야 할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강제 북송된 사람들이 내 가족이라고 해도 ‘관례’라는 말이 나올까.
태 의원 일행이 다녀간 직후 채택된 결의안 ‘초안’엔 결국 중국을 암시하는 대목만 들어갔을 뿐, 여전히 중국이라고 명시하지는 못했다. 이달 중 본회의에서 이 안(案)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태 의원은 “국제사회가 중국의 책임 문제에 모두 침묵한다면 중국은 계속 오만하게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수많은 북한 주민이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불행히도 강제 북송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관례적으로 공허한 결의안을 만드는 데 만족해야 하나. ‘관례’라는 것은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손쉬운 답변이 될 수는 있지만 정답은 될 수 없다. 국민이 자유와 원칙, 헌법 정신을 강조하는 정부에 바라는 모습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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