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250조원짜리 우주정거장을 남태평양에 水葬하는 방법

박건형 기자 2023. 12.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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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함께 만든 국제우주정거장, 2030년 운영 중단 결정
NASA, 우주선 도킹한 뒤 지구로 데려와 폐기하는 계획 추진
우주 향한 인류의 꿈 성과 있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그래픽=양진경

25년간 273명만 이용한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을 짓고 유지하는 데 1850억달러(약 244조원)가 들었는데 롯데월드타워 67동을 세울 수 있는 돈이다. 한 사람의 하루 숙박비를 따져보면 750만달러에 이른다.

돈이 많다고 아무나 갈 수 있지도 않다.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이 필요하다. 지구 상공 400km 우주를 초속 7.5km로 나는 이곳을 오가는 일은 물론, 머무는 동안 먹고 마시고 자는 일도 극한 체험이다. 견뎌내면 창밖으로 푸른 지구를 조물주처럼 내려다볼 수 있고, 하루 16번씩 일출과 일몰을 즐길 특권을 준다. 하늘에서 태양, 달, 금성 다음 밝은 이 호텔이 국제우주정거장(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이다. ISS는 우리가 아는 한 우주에 떠 있는 가장 큰 구조물이다. 길이는 108.5m, 폭 72.8m로 축구장보다 크고 무게는 420t이 넘는다.

지금까지 실험을 3000건 이상 ISS에서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쌍둥이 실험이다. 일란성쌍둥이 우주인 스콧 켈리를 ISS에서 340일간 지내게 한 뒤 지구에 머무른 형 마크와 비교했다. 2019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스콧은 세포 내 유전자가 손상됐고, 염색체 텔로미어가 길어지는 등 신체 변화를 겪었지만 지구로 돌아오자 6개월 뒤 대부분 원상태가 됐다. “우리가 우주에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긍정적 답이었다. 고추·양배추·겨자 등 10종류가 넘는 채소를 ISS에서 수확했고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는 세포 배양육도 키웠다. 우주 자급자족 가능성을 연 것이다.

ISS 수명은 15년이었지만, 수리와 보완을 통해 조금씩 연장됐다. 하지만 노후화와 차세대 우주정거장 개발 계획 등으로 2030년 말 운영이 종료된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ISS 장례 준비에 본격 착수했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검토됐다. 먼저 ISS를 지구에서 멀리 밀어내는 방안이다. ISS는 완전한 우주 공간이 아니라 지구 중력과 대기 영향을 받는 저궤도에 있기 때문에 계속 속도가 떨어지고 궤도도 낮아진다. 자체 동력이 없어 러시아 프로그레스 화물선이 도킹할 때마다 밀어서 속도를 높이는 식으로 유지했다. 만약 ISS를 지금보다 훨씬 높은 궤도로 밀어 올리면 지구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원히 우주를 떠돌게 할 수 있다. 다만 낡은 ISS가 부서지고 조각 나면 다른 위성과 우주선을 위협할 만큼 양이 엄청난 잔해가 생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ISS를 지구로 가져와 폐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NASA 계획은 이렇다. 2031년 초 ISS에 더 이상 추진력을 공급하지 않고 몇 달에 걸쳐 궤도를 서서히 낮춘 뒤 특수 제작한 무인 우주선 3대를 연결한다. 이후 우주선 로켓 분사를 정밀하게 조정해 원형인 ISS 궤도를 타원형으로 바꾼다. ISS가 대기와 마찰하는 시간이 길수록 태양광 패널이나 모듈 손상으로 잔해가 지상에 추락할 확률이 높아진다. 타원 궤도는 이런 가능성을 최소화하며 고도를 낮출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주선 엔진 추력을 최대치로 높여 남태평양으로 ISS를 던지듯 밀어내면 장례가 마무리된다. NASA는 ISS를 지구로 데려올 우주선 개발에만 10억달러 이상을 투입한다.

ISS 묘지도 정해졌다. 뉴질랜드 동쪽 4800km, 남극 북쪽 3200km 떨어진 ‘포인트 네모(Nemo)’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네모 선장 이름을 땄다. ISS는 미국·러시아·일본·캐나다·유럽 등 16국이 함께 만들고 운영했다. 미·러 갈등이 고조될 때도 러시아 우주선이 미국 우주인을 실어 날랐고 ISS에서 나온 성과는 전 세계가 공유했다. ISS 자체가 언젠가 지구를 떠나 다행성 종족이 되려는 인류의 꿈에 대한 도전이었고,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루이 파스퇴르의 명언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제 함께 가는 대신 먼저 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러시아는 ISS에서 손을 떼기로 했고, 중국은 독자 우주정거장 톈궁을 쏘아 올렸다. 미국은 다음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새 파트너를 모으고 있다. 블루 오리진, 엑시옴 스페이스 등 민간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244조원을 쏟아부은 우주정거장도, 나라 간의 아름다운 협력도 결국 영원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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