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기우제

경기일보 2023. 12.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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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전 남양주부시장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기우제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디언 추장이 있었다. 그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리니 다른 부족에서도 기우제 제관으로 초청을 받게 됐다. 주변 사람들이 효험 있는 기우제를 지내는 비법을 추장에게 물었다. 추장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비가 내릴 때까지 꾸준히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는 아마 1년 내내 기우제를 지냈거나 때로는 1년 이상 비가 내리기를 소원하는 기도만 했을 수도 있겠다.

추장이 사는 동네의 건넌마을 유행어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로 말하면 복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일반행정은 문서 한 장을 기안한 후 여러 부 복사해 뿌리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복지는 문서 한 장에 한 사람씩 붙어 복지사무,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복지행정은 그냥 서류를 배포하면 실현되는 일이 아니라 각기 다른 복지요구에 맞게 음식과 옷을 먹이고 입히고, 편안한 잠자리에 재워야 한다.

우리나라 1970년대로 가보면 ‘마을 입구 논농사’는 온 동네 사람이 함께 짓는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과거 행정력이 농촌 농사에 집중하던 ‘농정 최선의 시대’에 생겨난 요즘 청년들의 유행어와도 같은 것이다. 당시에 논과 밭의 주인은 인적이 뜸한 다른 논밭 농사는 혼자서도 열심히 지었지만 동네 입구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논에 대해서는 모내기조차 서두르지 않았다. 때가 되면 면장과 면 직원들이 모판의 모를 들고 와 모를 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고 심오하다. 면사무소 산업계장이 군수님 시찰 코스에 들어있는 이 농부의 마을 입구의 논은 별도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시찰 코스에서 잘 보이는 논에는 반드시 통일벼를 심었고 적기에 모내기했으며 피살이는 물론 제때 농약을 뿌리고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벼 베기를 마쳤다. 공무원과 학생봉사대가 적극 참여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소속입건’하고 ‘생고시용’했다. 이 필지는 청와대, 농림수산부, 도청의 간부들이 수시로 방문하는 '시찰 코스'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이후에 행정기관에는 이른바 ‘어공’이라는 이름으로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민선 초기에는 기관장의 측근이 이른바 ‘보좌관’이라는 명함으로 들어오더니 지방자치가 깊어지면서 부서별로 전문가를 넣기 시작했다. 교통, 건설, 환경, 복지, 전산 등 여러 부서 중심부에 이른바 ‘어공’이 자리 잡았다. 어공의 장점이 있을 것인데 단점이 이를 가린다. 물론 공조직이 직업공무원의 전유물이 되는 것에 일방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동시에 행정이 단체장 측근의 ‘어공터’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사에서 보니 고수(高手)는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어공에게 말한다. 갑 속의 칼이라야 권위를 지킨다. 칼을 뽑는 순간 권위의 칼은 ‘벌침’이 된다. 벌침으로 공격에 나선 벌은 그 순간에 죽음을 마주한다.

지방행정에 기대한다. 우리의 지방행정에서 더는 ‘깨지지 않는 유리 제조기술’이 사장되거나, 기관장이 시찰 오는 논에만 농사를 지으라 하거나, 애써 완성한 정책을 사장하거나, 공직에 당선하고 취임한 후 4년 내내 기우제만 올리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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