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리더는 없고 팔로어들만”…조동철 KDI원장 본보 인터뷰

세종=송혜미 기자 2023. 12. 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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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달게 느끼는 것만 쫓아다녀
정부 경제정책, 실천 속도 느려”
조동철 KDI원장
“최근 국회에는 국민들이 달게 느끼는 것만 쫓아다니는 분들이 많아요. 그건 리더가 아니라 팔로어(follower) 아닌가요?”

이달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사진)은 5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비전이 있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끌고 가는 게 정치 지도자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지금 우리 국회에서 잘 안 보인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야가 표심에만 급급해 정책을 펴는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

조 원장은 지난 1년간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해 “정책의 큰 방향은 나쁘지 않지만 실천 속도가 느리다”고 꼬집었다. 그는 “많은 개혁 어젠다에 대한 사회적 논의 자체가 상당히 뒤로 밀리고 있다”며 “정부는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계속 설득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노력도 약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원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 임명된 국책연구기관 KDI 수장이다.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을 거친 한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조 원장은 또 “로톡(법률 서비스 플랫폼)이 결론 나는 데 8년이나 걸려야 하나. 우버(차량 공유 서비스)가 없는 나라도 한국 외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너무 많다”고 규제 문제를 지적했다. 조 원장은 “우리 인구 구조나 세계 경제 상황도 변하는데 이런 환경에 적응 못 하는 경직성이 한국 경제를 뒤처지게 만들고 있다. 그걸 고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도 했다.

조 원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과도해 이들이 또 다른 ‘기득권’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지려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게끔 해야 하는데 현재 중소기업은 장사가 잘돼도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직원) 300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외국에서는 장사가 잘되면 사업을 키우는데 우리나라는 장사가 잘돼도 사업을 안 키운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최근 정부가 개별 품목별로 물가 관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 요청 등을 하는 건 국민적 요구가 너무 많아서일 것”이라면서도 적어도 선진사회에선 정상적이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尹정부 3대개혁 방향 나쁘지않지만 실천 느려… 국민 설득 부족”

취임 1년 조동철 KDI원장 인터뷰
“우버없는 나라, 한국외 많지않아
새로운 사업 걸림돌 없애야 하고, 퇴출도 유연해야 ‘역동경제’ 살아나
中企 지원 과도로 또다른 기득권 돼
근로시간 개편 좌초, 굉장히 아쉬워… ‘백 투 베이직’으로 저성장 돌파해야”

조동철 KDI 원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 원장이 작년 12월 KDI 원장에 취임한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세종=뉴시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선 과도한 규제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걸림돌이 없어져야 한다”며 “퇴출도 유연하게 해야 새살이 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지난해 12월부터 국책 연구기관인 KDI를 이끌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KDI 원장인 그를 5일 세종 KDI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3대 개혁을 제시하는 등 정책의 큰 방향은 나쁘지 않지만 실천 속도는 느리다. 정부가 방향성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개혁은 고통이지만 나라 전체를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인데, 그것을 밀고 나가는 힘이 충분치 않다. 그게 가장 아쉽다.”

―3대 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나.

“법 개정을 전제로 하다 보니 현재 국회 상황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국민 눈치 때문에, 총선 때문에 개혁 어젠다가 빠르게 진척 안 되는 측면도 있다.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국회에는 국민들이 달게 느끼는 것만 쫓아다니는 분들이 많다. 리더가 아니라 팔로어 아닌가. 최근 국회는 특히 심한 것 같다.”

조 원장은 특히 근로시간제 개편이 좌초된 것이 “굉장히 아쉽다”고 했다. 올해 초 정부는 경직된 주 52시간 근무제를 바로잡기 위해 근로시간제 개편안을 내놨지만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근로자 죽이는 정책 아니냐’는 프레임이 씌워져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처럼 보이니까 확 접어버렸다”며 “내용이 복잡하더라도 정부가 열심히 전달하고 설득하려고 해야 하는데 ‘일단 접읍시다’가 돼 버린 후 사회적 논의가 실종됐다”고 했다. 조 원장은 “저출산 문제도 해결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재원이 들어가야 하는데 한국 사회가 그 각오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며 “그에 대한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최상목 부총리 후보자가 ‘역동 경제’를 언급했는데 그 과제는 무엇인가.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걸림돌이 없어져야 한다. 로톡이 결론 나는 데 8년이나 걸려야 하나? 우버 없는 나라도 한국 외에는 많지 않다.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게 너무 많은 나라다. 진입과 퇴출도 유연하게 해야 한다. 먹기만 하고 배설이 안 되면 순환이 안 된다. 어딘가는 퇴출돼야 새살이 나는데 너무 그것에 벌벌 떨면 안 된다.”

―저성장이 고착화됐다. 돌파구는 무엇인가.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이다. 우리가 지난 10여 년 동안 경제를 길게 보면서 해온 일이 거의 없다. 정부의 개혁이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노동시장과 교육이 유연해져야 한다. 인공지능(AI) 혁명 등 환경이 변하고 있는데 한국의 노동 시장이나 교육 환경이 이를 못 쫓아가도록 하는 제도적인 경직성이 있으면 한국 경제를 뒤처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관심을 안 가지고, 그런 상황이 10, 20년 지속된 게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고쳐야 한다. 진짜 경제의 밑바탕이 되는 노동, 교육 시장 문제를 너무 오래 소홀히 했다.”

―윤석열 정부 2기 경제팀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어떻게든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일거리를 못 찾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가 많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게끔 해야 하는데 그 지점이 문제다. 중소기업들이 ‘모르핀 놔 주세요’를 계속 하고 있다. 중소기업 지원이 과도하다. 외국에선 장사가 잘되면 사업을 키우는데 우리는 장사가 잘돼도 사업을 안 키운다. 기업도 우리나라만큼 자동화를 많이 하는 곳이 없다. 고용이 경직돼 있어 노동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이 내년 3분기(7∼9월)에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희망 사항)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인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긴축을 덜한 편이다. 국내 물가도 다른 국가에 비해선 덜 올랐다. 지금 기조로 조금 더 가야 될 것이다. 내년 총선 전에 ‘화끈하게 풀자’는 이야기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 게다가 금리가 낮아지려면 물가도 낮아져야 한다. 물가 상승률은 내년 말 정도나 돼야 2% 내외에 도달할 것이다. 이후에 금리를 낮추게 되더라도 과거처럼 굉장히 낮은 금리로 단기간 안에 돌아갈 확률은 거의 없다.” 조 원장은 2016년 4월부터 2020년 4월까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정부는 내년에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낙관적인 기대를 내놓고 있다.

“KDI가 지난달 내놓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2%다. 올해는 1.4%니까 올해보다는 나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딱 그 정도다. ‘회복’이라고 해서 경기가 좋아진다고 말하긴 어렵다. 잃어버린 게 되돌아오는 정도다. 앞으로 장사만 시작하면 돈이 착착 벌리는 경제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지점이 우리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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