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의료계는 성역인가
의협, 국민건강 볼모로 총파업 위협
선진국 추세 외면한 직역이기주의
정부는 국민을 믿고 증원 단행해야
의사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특권계층이다. 수억원의 연봉을 받으며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고 있다. 서울대보다 의대가 위에 있을 만큼 의대에 최고의 인재들이 몰리는 이유다. 가히 ‘의대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책임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의사들이 의대 정원·비대면 진료 확대에 극력 반발하며 국민을 실망시켜서다. “부와 명예를 가진 의사들이 왜 이토록 기득권에 집착하나…” 눈살을 찌푸리는 국민이 많다.
의협은 문재인정부의 4000명 증원 방침을 주저앉혔던 2020년 총파업 기억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당시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이라 불안감이 컸던 국민이 의료진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 보건의료노조 조사에선 찬성이 83%나 나왔다. 의사 부족에 따른 불편함을 피부로 느끼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의대 정원(3058명)을 늘려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의사가 없어서 응급실을 못 여는 병원이 수두룩하다. 지방의료원들은 연봉 3억∼4억원을 제시해도 의사를 못 구해 애를 먹고 있다. 지난 7일 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등 ‘빅5 병원'을 대상으로 내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필수의료 분야는 미달 사태가 재연됐다. 세브란스병원의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는 아예 지원자가 없었다. 지금도 의사 얼굴 보기 힘든데 앞날이 캄캄하다.
선진국을 보자. 독일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4.5명으로 한국(2.6명)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도 독일의사협의회는 의대 정원(1만1600명)을 매년 5000명씩 늘려달라고 정부에 요청해 관철시켰다. 영국은 의대 정원(8639명)을 2031년까지 1만5000명으로 두 배 늘리기로 결정했다. 일본도 2007년 7625명이던 의대 정원을 올해까지 9384명으로 23% 늘렸다.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왜 우리만 시장 원리 작동을 막고 있나.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고 본다. 간호사, 환자, 소비자단체 등에서도 별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의협은 결사 반대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에 대한 위협이다. 국민의 불편을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의협이 의대 증원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필수의료를 살릴 대책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나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총파업을 강행한다면 무서운 민심에 맞닥뜨리게 될 게다.
윤석열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정책 기조로 내세웠다. 국민의 뜻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직역이기주의는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 의사면허는 국가자격증이다. 의대 정원은 중장기 의료 수요를 점검해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의협의 주장은 들어볼 필요가 있지만 지나치게 끌려다녀선 곤란하다. 의료계가 국민건강을 볼모로 삼아 성역으로 군림하는 걸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는 국민을 믿고 의대 증원을 단행해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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