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새 대통령 밀레이 “나라에 돈이 없다” 고강도 개혁 예고

노정연 기자 2023. 12. 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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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플레 잡기 총력”…달러화 도입 공약 일단 속도조절
‘친족 공직임명 금지’ 폐기하고 여동생 ‘비서실장’ 앉혀
장관들 비공개 임명에 현지 매체 “전례 없다” 강력 비판
‘실세’ 여동생 태우고 퍼레이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마친 뒤 여동생 카리나와 함께 차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부청사 앞에 도착하고 있다. 밀레이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카리나는 예상대로 이날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다. AP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취임하며 4년 임기를 시작했다. 극심한 국가 경제위기 속에 대통령직을 맡은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부터 “충격 조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경고하며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연방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한 후 연설 없이 퇴장했다. 연방의회에서 취임 선서 후 별도의 메시지를 내지 않은 대통령은 1983년 민주화 이후 밀레이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그는 의회 광장으로 나와 청중에게 취임사를 했다. 연설 내용은 경제부문과 공공개혁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보다 더 나쁜 유산을 받아 든 정부는 없었다”면서 “인플레이션이 연 1만5000%에 달할 수 있다. 초인플레이션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에 돈이 없다”며 개혁 과정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 공공부문 재정을 삭감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취임하자마자 기존 18개 부처를 9개로 줄이는 법안에 서명했다. 사회개발부, 노동사회보장부, 공공사업부, 환경부, 여성인권부 등 진보 정권 주요 부처들이 줄줄이 폐쇄됐고, 각 기능은 대통령비서실로 이관되거나 다른 부처로 흡수됐다. 로이터통신은 정부 지출을 삭감하겠다는 밀레이의 공약은 지지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이미 절반에 가까운 국민이 빈곤층인 상황에서 이러한 충격 요법은 더 많은 이들을 어려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밀레이 대통령은 경제난에서 비롯된 사회문제를 언급하면서 “아르헨티나는 피바다가 됐다”며 “더는 범죄자와 마약 밀매업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밀레이가 선거 유세 기간 내세운 ‘파격’ 공약들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주시하고 있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아르헨티나의 극심한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화 도입과 중앙은행 폐지 등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약속하며 지지를 얻었다. 임신중지권에 반대하고 기후변화를 “사회주의의 거짓말”로 간주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다만 당선 이후 현재까지의 행보는 비교적 온건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밀레이는 선거 기간 동안 폐소화를 “쓰레기”라고 부르면서, 통화 정책에 실패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폐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당선된 후에는 자신의 주요 공약인 ‘달러화 도입’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 온 루이스 카푸토 전 중앙은행 총재를 경제장관으로 임명했다. 달러화 도입도 일단 보류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밀레이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주요 공약 이행에서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노골적인 친미 성향을 보인 그가 향후 자국의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입지를 키워갈지도 관심사다. 외신들은 선거운동 과정에 남미공동시장 등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그의 외교 노선을 두고 “매우 친미적이며 주요 무역 파트너인 브라질과 중국에 대해서는 냉담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날 취임식에는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라카예 포우 우루과이 대통령 등 주변국 정상과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도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특사로 참석했다.

한편 밀레이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여동생 카리나가 예상대로 정권 출범 첫날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밀레이 대통령은 친족을 공직에 임명할 수 없는 규정을 폐기하고, 타로 역술가로 알려진 여동생을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앉혔다. 카리나는 이날 축하 카퍼레이드 행사에서도 밀레이 대통령 옆에 나란히 서서 그를 보좌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취임식 직후 정부 부처 장관을 비공개로 임명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현지 매체들은 “일정 공지 없이, 언론에 공개하지도 않은 채 장관 임명식을 진행한 건 전례가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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