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후보만 출마... 홍콩 투표율 27% 역대 최저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3. 12. 1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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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원 선거서 유권자 투표 포기
홍콩 행정 수반인 리자차오 행정 장관이 10일 제7회 홍콩 구의원 선거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뉴스1

“‘새장 선거(鳥籠選擧·새장에 가둔 새처럼 유권자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한다는 의미)’가 치러졌다.”

중국에 충성하는 ‘애국자’만 출마한 제7회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투표 거부’ 행렬에 동참해 투표율이 사상 최저인 27.5%를 기록했다. 홍콩에서 치러진 역대 모든 선거를 통틀어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홍콩 당국이 이례적으로 투표 참여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전산 고장을 이유로 투표 마감 시각을 1시간 30분 연장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중국이 2021년 홍콩 선거 제도를 바꾼 이후 처음 실시된 구의원 선거에서 민주 진영이 완전히 배제된 채 친중(親中) 후보만 출마하자 홍콩 유권자들이 투표 포기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11일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홍콩 등록 유권자 433만106명 가운데 119만3193명이 투표해 27.5%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 가운데 가장 낮은 투표율”이라고 했다. 이전 최저 투표율은 홍콩 선거법 개정 이후인 2021년 12월 입법회(의회 격) 의원 선거 당시의 30.2%이고, 구의원 선거로 범위를 좁히면 홍콩 반환 직후인 1999년의 35.8%이다. 특히 지난 2019년 구의원 선거 때(71.2%)보다 무려 43.7%포인트 낮아졌다. 당시 선거는 대규모 시위 속에 진행돼 중국 본토에 대한 반감이 투표로 표출됐고, 범민주파가 452석 중 86.7%(392석)를 차지했다.

10일 제7회 구의원 선거가 치러진 홍콩 거리 곳곳에 선거 홍보물이 붙어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지만, 2019년 반중 시위 이후 ‘홍콩의 중국화’는 빠르게 이뤄졌다. 2020년 7월 홍콩 내 반중·반정부 세력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했고, 2021년부터는 선거법을 개정해 홍콩 의회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며 행정장관·입법회·구의회 선거를 치렀다. 이번 구의회 선거에선 의석 470석 가운데 88석만 선출직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정부 임명(179석), 친중 지역 위원회 선출(176석) 등의 방식으로 채우기로 했다. 또 출마 희망자는 관제 조직의 추천을 받도록 제한을 걸어 홍콩 민주 진영이 한 명도 후보를 내지 못하는 친중 일색 선거로 치러졌다.

홍콩 선관위는 답이 정해진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선거 당일인 10일 오후 8시 12분부터 전자 선거인 명부 시스템이 30분간 작동되지 않아 투표가 중단됐다면서 투표 시간을 90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전 8시 30분 시작해 오후 10시 30분까지 진행돼야 했던 투표는 자정까지 계속됐다. 홍콩 선관위는 투표 시간 연장이 투표율을 높이려는 조치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공정성과 투표를 원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존 번스 홍콩대 명예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홍콩 정부는 대대적 캠페인 없이는 투표율이 극도로 낮게 나올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홍콩 친중 진영 최대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이 압승했다. 홍콩 공영방송 RTHK에 따르면 민건련은 유권자 선출과 지역위원회 선출을 합산한 총 264석 중 109석을 차지했다. 이어 공련회 27석, 신민당 15석, 홍콩경제민생연맹 12석, 자유당 5석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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