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노무현의 길? 이재명의 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민주당이라는 ‘민주야당’에 뿌리를 둔 ‘자유주의정당’의 지도자로, ‘사이다’라는 말을 듣는 달변과 시원시원한 언행, ‘진보적’ 정책노선, 그러면서도 현실성을 잃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점이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보다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둘은 한국 정치, 아니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의 ‘소수자’, ‘비주류’ 출신이다. 둘 다 꿈의 등용문인 사법시험을 통과해 변호사라는 화려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이전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너무나 어려운 청소년기를 지내야 했다. 특히 학벌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둘은 모두 소외된 비주류였다. 이 대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소위 ‘스카이’류의 명문대는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아예 대학 근처도 못 갔다는 점에서 더욱 ‘입지전적’이다.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신림동 고시학원도 못 가고 토굴에서 고시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비주류성’은 이후 경력에도 이어진다. 민주당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김근태, 586 같은 학생운동권 지도자들이기에 둘은 정치입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비주류로 남아야 했다. 그런 만큼 둘은 기존 당 조직이나 정치 메커니즘을 넘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포퓰리스트’적인 정치를 추구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같은 점을 빼놓고는 둘은 너무도 다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에 입문해 청문회 스타로 각광을 받았지만 김영삼이 군사독재세력과 3당 통합을 하자 이에 동참하지 않고 가시밭길을 택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사당정치’에 반대해 꼬마민주당을 만들어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유인태 등과 고깃집을 해야 했다. 199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 측으로 돌아가 어렵게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당선되자마자 지역주의를 깬다며 적지의 심장인 부산으로 달려가 출마했다. 결과는 당연히 낙선이었다. 이 같은 자기희생의 태도는 국민들에게 울림을 줬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대통령 당선이다.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큰 것을 얻는 ‘소실대탐의 길’, 죽음으로써 오히려 살아난 ‘사즉생의 길’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바보 노무현’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바보가 아니라 지혜로운 ‘현자의 길’이었다.
이재명은 노무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2022년 대선 패배 직후 있었던 재·보궐선거다. 당시 자신이 살고 있는 분당 지역에서도 선거가 치러짐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인 송영길 전 의원의 선거구인 인천 계양을을 물려받아 출마해 당선됐다.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연고지를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도주’를 한 것으로, 노무현과 정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노무현이 ‘소실대탐의 큰 정치인’이라면, 이재명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얽매여 큰 것을 잃은 ‘소탐대실의 작은 정치인’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바보 노무현’과는 반대의 의미에서 ‘바보 이재명’이다. 이 대표가 이 같은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진짜 리트머스시험지, 마지막 시험이 눈앞에 있다.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이다. 다시 떠오르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어느 날 갑자기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버리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하며,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할 경우 정권의 반을 내주는 연정을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놀란 여당이 극렬 반대하고 야당이 별 호응을 하지 않아 실패했지만 이는 노무현의 큰 정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나오는 이야기는 이 대표가 계양을 출마같이 소탐대실의 길을 갈 것 같다는 안타까운 내용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승자독식의 낡은 ‘정치교체’를 위해 다당제를 추진하겠다는 지난 대선의 공약을 던져버리고 국민의힘이 원하는 낡은 병렬제로 회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선거법 개정에서 이재명과 민주당은 ‘소실대탐’과 ‘사즉생의 큰 정치’를 통해 국민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고 이를 통해 승리하는 ‘노무현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원칙과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림으로써 국민들에게 짜증과 실망만 주는 ‘계양을’식의 ‘소탐대실’, 살려다 죽는 ‘생즉사의 이재명의 길’을 갈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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