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부터 산수화까지···일본계 영국인 작가의 혼종적이고 독창적인 세계
크리스천 히다카의 전시 ‘황금기(Scene Doree)’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갤러리바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질적인 시공간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 유럽과 아프리카·이슬람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연극 무대처럼 정교하게 연출된 그림 속에 뒤섞여 있다. 전시장 벽면엔 작가가 직접 오일템페라로 벽화를 그려넣어 공간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독특한 질감과 양감을 불어넣는다. 일본계 영국인으로 런던을 무대로 활동하는 히다카에게 ‘문화적 혼종성’은 주요한 테마이자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저는 절반은 영국인이고, 절반은 일본인입니다. 저는 두 나라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두 나라에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다. 혼혈인으로서의 정체성, 두 개의 다른 문화권 사이에 다리를 놓는 방법으로 예술을 택했습니다. 트랜스 문화적(trans-cultural) 표현이 제게는 휴머니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달 22일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히다카는 이같이 말했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황금기’(2023)가 눈길을 잡아끈다. 피카소의 ‘곡예사 가족’(1905)에서 모티브를 따온 그림으로 광대와 어린 발레리나 등 피카소 그림 속 등장인물을 끌어오면서 다양한 상징을 이용해 다문화주의, 현대미술에 대한 견해를 드러낸다. 고전적 연극 무대처럼 연출된 무대 가운데 빨강·파랑·하양으로 칠해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댄서가 자리 잡는다. 무대 양옆엔 이슬람 문화권에서 착안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아프리카에서 영향을 받은 큐비즘의 출현 배경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다문화주의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히다카는 그림 속에 정교한 상징을 심어놓았다. 무대 위엔 태양 문양이 그려져 있고, 댄서는 원반을 한 손에 든 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히다카는 “댄서가 지식과 철학을 쌓아가며 지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태양을 원반으로 가려 일식 현상을 만드는 것이 제가 그리고 싶은 이미지였다”고 말했다. 어린 발레리나는 바닥의 거북이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회화는 천천히 이뤄지는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거북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다카가 처음 그린 ‘자화상’(2023)도 인상적이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막 이주해 짐을 푸는 사람의 모습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그림 위쪽에는 두루미, 아래엔 거북이를 넣어 동서양의 혼종, 다문화적 특성이 드러난다. 히다카는 “하나의 상징이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를 띨 수 있다. 문화적 상징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 다른 쪽에선 히다카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산수화를 볼 수 있다. 송나라 시대 산수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동양적 느낌이 강하다. ‘산속의 산책로(Mountaun Walkways)’(2023)는 산책로를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작품으로 작가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 동적인 여정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은 히다카가 직접 그린 벽화로 채워져 있는데, 벽화 자체가 공간을 연출하는 또 하나의 전시로 볼 수 있다. 히다카는 “프랑스에서 12년 정도 살면서 라스코 동굴 속 고대인이 그린 벽화를 보며 공간을 직접 표현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벽화를 통해 관람객은 히다카가 만든 혼종적 문화, 뒤섞인 시공간의 독특한 세계로 한발 깊이 들어갈 수 있다. 23일까지. 무료.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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