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의사 가운 벗고 AI 기업으로 옮긴 송혜근 메디픽셀 그룹장 | “성취감 좇으며 현실 문제 속 내 역할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중국에서는 병원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아이가 아플 때 도무지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 2018년 중국 소셜미디어(SNS) 위챗의 한 단체대화방에 이러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지나가는 넋두리 정도에 불과했던 한마디였지만 대화방에 함께 있던 500여 명의 한국 교민은 격한 공감을 쏟아냈다.
중국에서는 본인 호적이 등록된 지역 밖에 있는 병원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사람이 충청도에 있는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병원이 분과별로 세세하게 나뉘어 있어 중국말이 서툰 교민이 병원을 잘못 찾아갔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교민들 하소연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 중 한 명은 송혜근 메디픽셀 그룹장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에서 펠로로 근무하던 중, 미국계 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중국에 발령이 나면서 함께 상하이로 들어갔다. 이후 상하이 델타 헬스 병원 심장내과의로 근무하고 있던 송 그룹장은 한 교민의 ‘위챗 넋두리’를 계기로 상하이에 있는 병원들 이름과 위치, 분과를 자세하게 적은 일종의 ‘교민용 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한국인 의사들과 대한민국 상하이 총영사관 직원들까지 힘을 합쳐 중국 화동 지역(상하이·산둥성·장쑤성·저장성 등) 일대 병원들과 약물, 예방접종 등 다양한 의료 정보를 전부 담아 교민들에게 공식 배포한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중앙대 광명병원 심장내과를 잠시 거쳐 의료 인공지능(AI) 개발 기업인 메디픽셀에 자리를 잡았다. 왜 병원을 떠났냐는 질문에 송 그룹장은 “어떤 일이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한 결과였다”고 답했다. 병원 한곳에 근무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만 치료하는 것보다 전 세계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메디픽셀 AI를 이용하면 환자 심혈관 엑스레이 사진을 분석해 혈관이 좁거나 아예 막힌 곳을 몇 초 만에 찾아낼 수 있어 의사들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심혈관 질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 심혈관 질환은 세계 사망 원인 1위, 한국인 사망 원인 2위를 기록할 만큼 위험한 병이다. 현재 메디픽셀은 아산병원 심장내과 의사들과 교류함과 동시에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투자를 받으며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11월 7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메디픽셀 사무실에서 송 그룹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메디픽셀에 대해 설명해달라.
“의사들이 심혈관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심혈관 질환은 심장에 연결된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등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병이다. 이를 치료하려면 심혈관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심장에 조영제를 계속 넣고 엑스레이를 반복해서 찍어야 했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무리가 가는 방법이다. 메디픽셀 AI를 이용하면 심혈관 엑스레이를 몇 번만 찍어도 AI가 심혈관 형태와 병변 위치를 분석해 의료진에게 제시한다.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병원 의사란 직업을 뒤로하는 게 아깝지는 않았나.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크게 발목을 잡았다. 심장내과는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와 같은 바이털(vital)과다. 의대생들 바이털과 지원이 급락하다 보니 기존 인력들을 짜내지 않으면 병동이 돌아가질 않는다. 그런데 집에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나 있는 상황이라 24시간 돌아가는 병원 일을 육아와 병행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했다. 중국에 다녀온 후 감사하게도 중앙대 광명병원 부름을 받았지만 육아 문제 때문에 금방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현실 문제 이전에 다른 이유는 없었나.
“근본적으로는 내 전공 분야에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병원에서 환자를 계속 돌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내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했다. 메디픽셀에서 일하기로 한 건 그런 이유다. 만약 의료 AI 기업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제의가 왔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 있었을 당시 현지 교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고.
“한국 교민 입장에서 중국은 거대한 의료 사각지대다. 일단 호적이 등록된 지역 밖에 있는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 또 병원들이 분과별로 굉장히 세세하게 나뉘어 있어 응급환자가 병원을 잘못 가면 증상이 악화하거나 아예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 2013년에 남편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가면서 이런 상황을 조금씩 파악해 나갔다. 혼자 병원 수술실에서 환자들 고치는 걸로는 교민들을 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18년에 교민들을 위한 의료 가이드북을 만들기로 했다.”
중국은 땅도 넓은데, 가이드북을 혼자 만든 건가.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점점 사람 수를 늘려갔다. 현지에 나 말고 다른 의사들도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메신저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8년 3월부터 지역별 병원 이름과 위치, 분과를 정리했고 나중에는 약물 종류와 성분도 하나하나 써넣었다. 그러던 중 이 자료를 교민 사회 곳곳에 배포하는 건 우리 역량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하이에 있는 총영사관에 가이드북 작업과 배포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2018년 10월쯤 중국 화동 지역을 대상으로 첫 번째 가이드북이 나갔다. 뜻깊은 순간이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에 총영사 표창을 받은 건가.
“그렇다. 가이드북은 2018년 이후 매년 업데이트돼서 교민 사회에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병실 밖에서도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걸 실감한 계기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내 환자가 내 치료를 받고 병이 나아가는 걸 보는 것만큼이나 큰 성취감을 느낀 것 같다.”
봉사 정신이 투철한 것 같다.
“고고하게 어떤 신념을 좇았다기보다는 그냥 주어진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하며 살아온 결과라고 본다. 일례로 의대 학사, 석사, 박사를 전부 다른 곳에서 땄는데 그 이유는 내가 의대를 다녔던 1990년대 말에는 주요 바이털과에서 여자를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교수는 ̒여자는 한 명만 받을 테니 나머지 학생들은 다 관두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그게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심장내과의가 되려면 자리가 남는 곳을 찾아 움직여야 했다. 중국에서 한 일도, 메디픽셀에 온 것도 결국 비슷한 맥락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한다면.
“본능적으로 끌리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내게 성취감을 주는지 좇으며 산 끝에 지금 여기로 왔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국에서 의료 가이드북을 만든 것도 내가 봉사 정신이 투철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서 한 것들이다. 남편은 비즈니스가 잘될 때 가장 기뻐한다. 그런 건 그냥 본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자기 마음이 이끄는 분야에 가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성과가 나올 거라 확신한다.”
Company Info

회사명 메디픽셀
본사 서울 강남구
사업 의료용 인공지능(AI)
창업자 송교석
설립 연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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