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70> 도로시 싱 장(Dorothy Sing Zhang)의 ‘Like Someone Alive(살아있는 누군가처럼)’] 모두가 잠든 밤, 도시 거주자들의 사적이고 편안한 순간
TV 출연자의 집을 배경으로 촬영하는 관찰 프로그램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집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다양한 인물의 일상생활을 엿볼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연출자는 사라지고 집 곳곳에 카메라만 남아 있는 듯한 ‘척’을 하곤 한다. 그렇기에 촬영이라는 조건하에 담긴 내용임에도 시청자로 하여금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을 마음 놓고 과감히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어느 날 개그맨 부부가 출연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됐다. 신혼부부인 이들이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주된 서사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집 구조와 분위기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과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뭐, 한국 아파트가 거기서 거기려니 하며 보고 있는데, 거실에서 창 바깥으로 바라본 외부 풍경이 등장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같은 아파트, 아니 같은 동이잖아? 이들과 나는 같은 동에 층수만 다른, 즉 같은 라인에 살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이들의 거실, 침실, 방 등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내가 거실로 사용하는 공간은 그들에게도 거실이었고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공간은 그들에게도 역시 침실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새삼스레 아파트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상상하게 됐다. 내 발아래에 있을 다른 사람의 공간, 내 머리 위에 있을 다른 사람의 공간을 말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도로시 싱 장(Dorothy Sing Zhang)도 이와 비슷한 상상을 했다. 런던의 새 아파트로 이사한 그녀는 이러한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층마다 동일한 평면구조라는 점에 주목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의 특징은 내가 침실에 서 있을 때 내 바로 위층의 공간도, 바로 아래층의 공간도 침실이라는 것, 즉 층마다 똑같은 평면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내밀한 삶의 모습 가운데 그녀가 주목한 것은 사람들이 각자의 침실에서 잠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어떤 취향으로 집을 꾸몄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든, 모든 사람은 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잠든 순간만큼 인간이 자신을 무방비하게 드러내는 때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 무의식적인 내가 그대로 노출되는 순간이 바로 잠자는 때다.
이 프로젝트에는 총 54명이 참여했다. 촬영은 8개월간 이뤄졌다. 작가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침대와 천장 높이를 균일하게 맞춰 위에서 아래를 조감하며 촬영할 수 있도록 35㎜ 필름 카메라를 미리 설치했다.
촬영은 셔터와 연결된 케이블 릴리즈(cable release)를 통해 이뤄졌다. 베개 아래에 케이블 릴리즈를 두고 버튼이 눌리면 셔터가 작동돼 촬영되는 방식이다. 장비를 세팅하고 인물에게 잠을 청한 후 작가는 촬영 공간에서 말 그대로 빠져나와 사라졌다. 작가는 촬영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케이블 릴리즈는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서 탯줄 같은 역할을 한다. 케이블은 끝에 고무 볼이 부착된 매우 긴 와이어다. 압력이 가해지면 노출이 발생한다. 이 과정은 낚시할 때 그물을 던지고 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작품 제작에는 우연이 개입된다. 내가 설정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이미지가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다.”
잠든 인물, 침대 그리고 카메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잠든 인물이 무의식중에 몸을 뒤척이다 케이블 릴리즈의 버튼을 누른 순간마다 촬영이 이루어졌다. 인물 개인의 수면 방식, 혹은 불안 정도에 따라 필름 롤마다 다양한 수의 사진이 찍혔다. 작가는 다음 날 해가 밝으면 장비를 수거해 갔고, 사진을 현상했다.
‘Like Someone Alive(살아있는 누군가처럼)’에는 다양한 연령, 인종, 성별의 인물이 등장한다. 홀로 자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침대를 공유하기도 하며, 반려동물이나 인형을 끌어안고 잠든 이도 보인다. 열려 있는 노트북, 스마트폰, 책 등은 잠들기 전까지 이들이 의식을 쏟아부은 활동을 짐작하게 한다. 종종 옷을 벗고 자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진이 아니었다면 들여다보기 어려웠을 타인의 내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납작하고 긴 판형의 이 책에서 각 사진은 오른쪽 페이지에만 수록돼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책을 아파트식 거주지처럼 표현했다고 말한다.
“책이라는 물체에 대한 어떤 특징이 있다. 모든 이미지는 오른쪽에 있다. 이것은 책 자체에 대해 일종의 건축적 구조를 제공하며, 각층이 서로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각 페이지가 하나의 아파트 층을 상징하듯이 배치돼 있다. 동일한 평면 구조가 층마다 반복되는 아파트를 떠올리며 각 페이지를 각층으로 상상하며 책을 볼 때, 모두가 잠든 밤 각자의 사적이고 편안한 순간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잠든 인물을 포착한 반복적인 형식의 사진을 통해 작가는 인물 사진 분야에서 거의 탐구되지 않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아 보여준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 궁극적으로 항복한 상태”를 말이다. 이 책은 작가가 부재한 조용한 밤에, 홀로 찰칵 소리를 내었을 카메라를 통해 담아낸 잠든 도시 거주자들의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