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이 0.5가 된다고 한들 [김영희 칼럼]

김영희 입력 2023. 12. 11. 15:15 수정 2023. 12. 1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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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저출생]

출산율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생산가능인구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카트가 비어있다.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성북구 분만병원 숫자가 3년전 32개에서 12개로 줄어들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어쩌면 저출생은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를 요구하는 과제인지 모른다. 그럴 각오가 없다면, 차라리 ‘인구 소멸’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국가적 논의 십여년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패러다임으로 겨우 채택됐던 성평등을 아예 지워버린 지금 정부는, 정말 절박하긴 한 건가.

김영희 | 편집인

몇년 전 분기별 합계출산율이 0.8대로 처음 내려갔다는 뉴스에 또래 여성 단톡방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는 말을 30대 지인에게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설령 0.5까지 떨어져도 정부가 성차별 구조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을 거라고들 말했다”고도 했다. 오죽하면 그럴까, 이해하려 하면서도 여성들이 사회에 일종의 복수심마저 갖게 된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출산율 통계가 나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한민국 소멸’이나 한국 상황을 다룬 뉴욕타임스 칼럼의 ‘중세 흑사병’ 같은 표현과 함께 다시 경고음이 요란해진 요즘이다.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이었으니 이대로라면 0.5인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저출생 극복에 17년간 332조를 투입하고도 백약이 무효인 것이 어느 특정 요인 탓일 순 없다. 사실 50대 여성인 나 또한 출산과 육아의 당사자들을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육아휴직이나 아동수당은커녕 출산휴가 두달이 전부일 때 두 아이를 낳았다. 한국의 성차별적 구조를 비판하며 농담조로 ‘여성들에게 납작 엎드려도 아이를 낳을까 말까인데’라 하면서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환경인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50대 이상 남성들이 대부분인 정부나 기업의 윗사람들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공립유치원 모집 기간이 끝난 지난주, 티오 경쟁에 밀린 이들은 사립유치원이나 학원 뺑뺑이를 알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 후배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사교육 비용이 어쩌고 하는 모든 호들갑이 우습다. 당사자만 지옥인 세상.”

헌것은 갔는데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대에 과거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이들이 정치권과 정부에 앉아 대응책을 만들고 있다. 성평등 관점이 빠진 저출생 정책은 그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달 나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문체부의 ‘저출산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젠더나 세대별 인식 차이는 변수로 상정되지 않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처음 앞선 게 2009년이고, 맞벌이가 당연하다는 인식이 어느 조사에서나 압도적으로 나타난 지 10년 가까이 된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흐름은 더 강화됐다. 그런데 돌봄과 양육이 여성에게 쏠리는 구조와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나. 독박육아 현실을 충격적으로 전한 ‘82년생 김지영’도 ‘예민한 일부 여성의 과도한 반응’으로 치부되거나 ‘페미 낙인’을 얻는 게 우리 현실이다.

‘안전’에 대한 여성의 달라진 감각도 그들은 모른다. 남자친구를 사귀기 전 혹시 일베는 아닐까 에스엔에스 활동을 확인해보는 여성들이 늘었다. 쇼트커트(숏컷)를 했다고 폭행당하고 디지털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세상에서, 여성은 연애와 결혼을 생각할 때 ‘경제적 이유’ ‘가사 부담’에 더해 ‘생존의 문제’를 본능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러니 성평등이 저출생의 유일한 해법이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성평등 관점이 빠진 저출생 정책은 대부분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젠 직시해야 한다. 악명 높던 엠(M)자 형태의 한국 여성 경제활동참여율 그래프가 달라진 것은 시사적이다. 육아 등에 따른 퇴사로 30대에서 최저점을 찍고 40살 이후 비정규직 등으로 취업해 곡선이 올라가던 패턴이 요 몇년 새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을 보면, 육아 확대보다 출산 자체가 줄거나 출산 시기가 미뤄진 게 더 결정적 원인이다. 한때 서구 사례를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면 출산율이 오를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한국에선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사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꼽는 남성 비율이 여성보다 훨씬 높은 것도 성차별적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생계 책임은 남성이 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인식의 희생자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달 전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주최한 ‘한일여성기자포럼’에서 안네 카리 한센 오빈 주한 노르웨이 대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노르웨이도 1970년대 심각한 저출생을 겪다가 양성평등지수 세계 2위로 올라서며 출산율이 올랐다. 그 원동력에 대해 그는 “사회의 총력을 써야 한다는 공감대”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총력’을 쓰고 있는가. 일·가정 양립은 여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접근으론 한계가 뚜렷함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0~2살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이 엄마의 취업률보다 유일하게 높고, 육아휴직 기간이 가장 길고, 20년간 가족복지 공공지출이 10배가 뛰었는데도 후퇴만 거듭하는 건, 돌봄의 편의성만 논할 뿐 ‘누가 돌보나’라는 관점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남녀 모두를 돌봄과 노동의 동시 주체로 보는 대전환과 함께 일터의 유연한 환경은 차원이 달라져야 한다. ‘모든 부처의 산업부처화’처럼 경쟁과 성장만 강조하면서 주거와 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 높이는 난센스도 멈춰야 한다.

어쩌면 저출생은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를 요구하는 과제인지 모른다. 그럴 각오가 없다면, 차라리 ‘인구 소멸’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국가적 논의 십여년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패러다임으로 2018년 겨우 채택됐던 성평등을 아예 지워버린 지금 정부는, 정말 저출생에 절박하긴 한 건가.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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