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등 배출 ‘배움의 밭’… 봄 오면 잔디 피듯 ‘學田’도 살아나리라[주철환의 음악동네]

입력 2023. 12. 11. 09:15 수정 2023. 12. 11. 11: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민기, 황정민 그리고 학전
‘아침이슬’ 김민기가 일군 밭
설립 33년되는 내년 문닫아
버티던 ‘농부’ 몸은 지쳤지만
땅은 거짓을 말하지 않아…
거치른 들판 솔잎은 영원하다
김민기

영화 ‘서울의 봄’은 감춰진 9시간의 이야기다. 한두 글자 바꿔도 알 만한 사람은 누가 누군지 다 안다. 놀라운 건 감독(김성수)이 현장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세 청년 김성수는 서울 한남동에서 20분 넘게 총성을 직접 들었다. 그날의 두려움과 궁금증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44년이 걸린 셈이다. 관계자들은 ‘서울의 봄’이 극장의 봄까지 가져왔다고 반긴다. 때마침 내일이 그날(12월 12일)이니 상영 시기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영화에는 전두광(황정민 분)이 노래 부르는 장면도 나온다. 제목은 ‘방랑시인 김삿갓’(원곡 명국환).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 리’ 실제 인물(전두환)이 열창하는 자료화면도 남아있으니 영화와 비교해보면 근접성에 감탄할 것이다. 연기자가 아니라 ‘인간’ 황정민도 지인들과 어울려 직접 노래하는 장면이 인터넷에 떠돈다. 그 노래(‘아침이슬’)의 탄생(1971년)과 그의 출생(1970년)이 시기적으로 엇비슷하다. 50여 년 숙성된 노래를 부르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김민기가 33년간 이끌어 온 소극장 학전의 대표 콘텐츠다.

지금은 대극장의 영웅이 됐으나 황정민에게도 소극장의 훈련병 시절이 있었다. 훈련소의 이름은 학전(學田)인데 그 밭의 농부가 바로 ‘아침이슬’의 작사·작곡가인 김민기(1951년생)다. 이제부턴 나의 일기장으로 들어간다. 소풍 가면 교사들도 노래자랑을 한다. 초임인 나(중2 국어 담당)는 김민기의 ‘친구’를 불렀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돌아오는 길에 한 학생(박일규)이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김민기 좋아하세요?” 싫다면 그 노래를 불렀을 리 없지. “제 외삼촌이에요.” 부반장이던 일규는 나중에 레코드 한 장을 선물로 주었다. 맨 위에 적힌 노래 제목은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상록수’ 원곡 양희은)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음반에 실린 노래를 가사 한 줄 안 틀리고 죄다 부를 자신이 있다. 심지어 거기 실린 ‘늙은 군인의 노래’는 뒤늦은 입대 신고식에서 4절까지 완창했다.

청소년기의 우상을 실제로 만나고 더구나 그를 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건 소풍에서 매년 연속 보물찾기에 성공하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방송사에 PD로 입사 후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땐 두근두근했고 호형호제를 허락받을 땐 조마조마했다(정식으로 승낙한 건 아니고 수줍게 불렀는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대중문화연구가인 김창남 교수가 엮은 ‘김민기’라는 책(2004 한울)에 무려 34페이지(524∼557)에 걸친 대화가 담겼는데 그 인터뷰어가 다름 아닌 ‘일규 국어 선생님’이었으니 이만하면 팬으로서 누릴 것은 다 누렸다고 자부한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퇴물이라고 형이 겸손의 언어를 구사할 때 아우는 그 퇴물이 퇴비가 되었노라고 우겼다. 그때의 응답을 옮긴다. “세상엔 쌀을 생산하는 사람도 있고 쌀을 파는 사람도 있고 그걸 사서 먹는 사람도 있어. 유통업자한테는 그런 식으로 쌀을 만나는 행위를 충분히 인정한다 그거지. 다만 스스로는 그걸 못한다는 거야. 역할이 다르니까.” 인터뷰 제목(‘결벽증과 완벽주의 사이’)대로 그는 끝까지 신념을 지켰고 태도를 유지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는 ‘서울의 봄’이 없다. ‘서울의 밤’이 있을 뿐이다. 그날 밤은 유난히 길었다. 그 유명한 ‘아침이슬’의 첫 구절도 ‘긴 밤 지새우고’다. 누구는 밤에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지만 누구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는다(윤동주 ‘참회록’).

세상은 세월을 못 이긴다. 살아서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서도 산 사람이 있다.

김민기의 밭(학전)이 내년 3월 사라진다는 소식이다. 33년 동안 잘 버텨주었다. 하지만 농부의 몸은 지쳐도 땅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노래 ‘금관의 예수’를 다시 듣는다. 예수는 33년을 살고 죽고 부활했다. 윤동주의 시(‘별 헤는 밤’)는 예언서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학전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Copyright©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