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2월 10일… 한국인 첫 한반도 상공 비행한 안창남[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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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12월 10일, 경성(서울) 인구가 30만이던 시절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만여 명의 인파가 여의도 비행장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날 조선 지도가 그려진 1인승 단발 쌍엽기 금강호를 타고 비행한 사람은 21세의 청년 안창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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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12월 10일, 경성(서울) 인구가 30만이던 시절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만여 명의 인파가 여의도 비행장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남대문역에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한 임시 열차까지 편성됐다. “와∼ 떴다” 비행기 한 대가 경성 하늘에 날아오르자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인이 한반도 상공을 처음으로 비행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조선 지도가 그려진 1인승 단발 쌍엽기 금강호를 타고 비행한 사람은 21세의 청년 안창남이었다.
그는 열여섯 살이던 1917년 용산에서 열린 미국인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면서 비행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쿠리(小栗) 비행학교에서 공부한 후 비행 면허를 땄다. 1922년 11월 도쿄∼오사카 왕복 우편비행대회에서 일본인들을 누르고 우승하며 천재 비행사로 이름을 날렸다.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한 달 뒤 고국 방문 비행을 하게 됐다.
안창남은 이듬해인 1923년 ‘개벽’ 1월호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이라는 글에서 그날의 심정을 이렇게 써 내려갔다. “경성의 한울(하늘)! 내가 어떻게 몹시 그리워했는지 모르는 경성의 한울! 그냥 가기가 섭섭하여 비행기를 틀어 독립문 위까지 떠가서 한 바퀴 휘휘 돌았습니다. 서대문 감옥에서도 머리 위에 뜬 것이 보였을 것이지만, 갇혀 있는 형제의 몇 사람이나 내 뜻과 내 몸을 보아 주었을는지….”
식민지 조선 암울한 시대에 안창남의 비행은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과 희망을 주었고,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민요 ‘청춘가’를 개사한 노래가 유행가처럼 퍼졌다.
비행사로서의 부와 명예가 보장됐지만,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그는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26년 산시성에서 항공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며 독립군 비행사 양성을 위한 비행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항일독립단체인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다.
자유로운 조국의 창공을 날고 싶었던 안창남은 1930년 비행 훈련 중 추락해 29세의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다. 유해를 찾지 못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으나 받을 후손이 없었다. 올해 2월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보관하고 있었던 훈장을 공군사관학교에 영구 전시해 그의 뜻을 기리기로 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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