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어떻게 사는지 알아야 도태 안되지… 이제 친구는 다 거기 있어 [소설, 한국을 말하다]
SNS - 고독의 연대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그는 새벽 네 시 반이면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에 다녀오곤 했다. 그런 다음 이불 속으로 되돌아가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다 다시 얕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침대로 돌아가지 않고 집 안 청소를 할 생각이었다. 딸이 집에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아내가 당부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내가 연년생 손자들을 돌봐주기 위해 LA의 아들 집으로 떠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냉장고를 가득 채운 밑반찬과 냉동실에 소분해둔 찌개며 국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세탁기를 두 번 돌렸고 빈 소주병이 쌓이는 바람에 재활용쓰레기도 세 차례나 갖다 버렸다. 청소는 그다지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외출을 하지 않았고 집 안에서의 동선도 뻔했기 때문에 어지럽힐 일이 없었다. 하지만 딸은 틀림없이 매의 눈으로 집 안을 샅샅이 훑어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딸은 주의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많았다. 뭐든 빨리 배우고 판단도 날카로웠다. 딸을 생각할 때마다 그는 그 애가 왜 더 나은 인생을 살지 못하는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십 년을 일한 회사에서 부당 해고를 당한 뒤 한동안 원룸에 혼자 틀어박혀 있던 딸은 몇 달 전에 1인 출판사를 열었다. 아마 아내가 나 몰래 도와줬을 것이다. 아내는 딸의 출판사 인스타그램 계정에 수시로 접속하는 모양이었는데 그때마다 긴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내려놓곤 했다. 딸처럼 작은 규모의 사업장은 SNS 활동이 필수적인 홍보수단이라는데 좀처럼 팔로어가 늘지 않는다는 거였다.
청소기를 꺼내려고 다용도실로 가던 그는 핸드폰의 문자 알림음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이 시간에 오는 문자라면 뻔했다. 단톡방의 고등학교 동창들 모두가 전립선이든 관절이든 새벽에 눈을 뜰 이유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사실 그에게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그 친구들과 아내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두어 달에 한 번쯤 그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 빼고 그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지냈다. 이따금 아내와 외식을 하고 아주 가끔 함께 극장에 갈 뿐이었다. 그가 오랜 세월 기자생활을 하는 내내 집 밖으로만 돌았던 걸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그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동창들과 주고받는 문자는 다른 날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강원도에서 버섯 농사를 하는 친구가 암 수술을 하게 됐다는 소식과 함께, 자연 송이와 담금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술 잔치를 벌이자고 제안해왔던 것이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단톡방에 이미 비슷한 수술을 겪은 동창이 둘이나 있었으므로 그들의 위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강원도로 내려갈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는 한참 동안 문자를 주고받아야 했다. 그곳에 갈 때마다 으레 부부동반을 했기 때문에 스케줄 맞추기가 더 어려웠다.
단톡방의 대화가 마무리된 뒤에도 그는 계속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내 없이 강원도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백내장이 진행되면서부터 그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장롱 면허였던 아내가 연수를 받고 그의 차를 운전한 지 몇 년 되었다. 장거리는 딸이 운전을 해주기도 했다. 코레일 앱을 다운받아서 기차표를 사야 할까. 하지만 그것도 줄곧 아내가 해왔던 일이었다.
딸이 현관문을 들어선 것은 겨울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였다. “아빠, 어두운데 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 사과가 든 비닐봉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딸이 말했다. 전등 스위치를 올린 뒤 실내를 둘러보던 딸의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술을 너무 드시는 거 아녜요? 환기도 잘 안 했나 봐.”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빠, 밖에 통 안 나가셨죠?” 딸의 목소리에는 책망보다 걱정이 담겨 있었다.
딸이 깎아온 사과 접시를 앞에 놓고 그들은 함께 소파에 앉았다. 단둘이 마주 앉은 게 언제더라. 그는 새삼스럽게 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잔주름이 자리를 잡은 딸의 얼굴에는 생활인의 노동과 피로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뿐 아니었다. 끊임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표정에는 불안과 근심이 엿보였다.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딸의 손가락은 종종 핸드폰 위에서 바삐 움직였다. “내 말 들고 있는 거냐?” “죄송해요. 일 때문에 문자가 와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력이 약해지면서부터 그도 통화보다는 문자가 편했다. 잘 안 들리는 것도 문제지만 목청을 높여서 말해야 하니 피곤했다. 기능이 약해진 노인이란 걸핏하면 고집불통이나 무례한 존재로 보이기 십상이라 타인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부터가 꺼려졌다.
그럼에도 그는 딸이 대화에 더 집중해 주기를 바랐다. 강원도행 기차표 예매를 위해 앱을 까는 데까지는 손쉽게 해결했지만 회원가입이나 인증 단계에서 번번이 가로막혔던 것이다. 그런 일상적인 좌절과 거부당하는 느낌은 그 같은 노인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생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일구어야 했는데 이제 열등하고 무력한 존재로서 노년의 삶을 지탱해야 하는 것도 울화가 치밀었다.
“아빠도 인스타를 해보는 거 어떠세요? 아니다. 성격이 까칠하니까 트위터, 아니 엑스가 더 맞겠네.” 갑작스러운 말에 그는 딸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너무 혼자 지내잖아. 엄마도 그걸 젤 걱정한다고요.” 사실 그는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문화센터나 노인복지회관 같은 데에 등록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이내 그만두곤 했다. 어디를 가나 그의 연배 가운데에는 서열을 만들고 옹졸한 욕심을 부리고 아는 척 가진 척 유세를 떠는 인간들이 주도권을 쥐게 마련이라서 넌더리가 났다. 그렇다고 노인을 환영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거나 마음에 없는 배려를 받는 것도 마땅찮았다.
“아빠, 뉴스도 이걸로 봐야 팩트를 더 잘 알 수 있어. 저속노화 밥 짓는 방법이랑 손흥민 골 소식도 그렇고. 스티븐 킹이 트럼프 욕하는 것도 실시간으로 보게 돼요.” 그 말을 하는 도중에도 딸은 쉬지 않고 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밀어올려 뭔가를 체크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불안하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인스타도 쉬워. 연출이 좀 많지만, 그거야 뭐 나도 그러니까. 그리고 나사, 모마, 내셔널지오그래픽, 아빠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그런 계정들 다 있어.”
“그래 알았다.” 그는 일단 딸의 말을 끊었다. “그보다 먼저 네가 해줄 일이 있어.” 강원도에 가는 기차표가 필요하다고 말하자마자 딸은 곧바로 자신의 핸드폰에서 앱을 찾아 클릭했다. “주말이라 다 매진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찡그렸다. 기차표를 못 구했다고 하면 친구들이 “전교회장도 노인이 되니 별수 없네”라고 놀릴 게 틀림없었는데 그로서는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딸이 말했다. “어? 여기 취소표 하나 떴다.” 그는 얼른 몸을 앞으로 내밀고 딸의 핸드폰 뒷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아, 벌써 누가 샀어. 빠르네”하는 말에 다시 등을 소파에 기대고 말았다. 초조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나 언제 취소표가 올라올지 모르니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으면서도 딸은 그사이 SNS에 들락거리고 이런저런 검색을 하며 자기 볼일에 바빴다.
“취소표 기다린다면서 왜 다른 걸 계속 보고 있냐” “아, 이거 지도 보는 거예요. 내가 차 운전해서 가면 몇 시간 걸릴지 알아보려고. 그리고 아빠 식사 챙기려면 가는 길에 맛집도 검색해 놓는 게 좋잖아.” 여전히 핸드폰에 시선을 둔 채로 딸의 말이 이어졌다. “달력 체크해보니 그날 내가 일이 있네. 미팅 약속은 바꾸면 되고. 근데… 아, 잠깐만요… 이년이 정말!” 갑자기 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는 깜짝 놀라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었다. 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죄송해요, 아빠. 실은 지금 내가 누구랑 연락이 안 돼서….” 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려 나왔다.
딸은 그제야 힘겹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한 달쯤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옛 직장동료와 재회했는데 그쪽도 유아용품 공구 사업을 하고 있어서 영세 사업자끼리 급속도로 친해졌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 속 동료는 늘 명품으로 치장하고 대기업 팀장인 남편과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들과 호텔 뷔페에 가고 주기적으로 해외여행을 했다, 며칠 전에 동료가 은행업무가 잠깐 꼬였다며 다음 날 갚겠다고 급히 3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라는 데까지 들었을 때 그는 그만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료가 잠적해버렸고 그렇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리란 건 들으나 마나였다. 여유가 있을 리 없는 딸은 카카오뱅크에 들어 있던 친구들과의 여행계 계좌에서 하루만 빌릴 셈치고 그 돈을 빌려줬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떼인 돈보다 딸의 미혹이었다. 주의력이 뛰어나고 판단도 날카로워 그 정도 사기도 눈치 못 챌 딸이 아니었다. 대체 SNS라는 자기 전시의 세계에는 어떤 섬망이 작동하길래 딸이 그 안의 내밀한 질서와 분위기에 장악당한 걸까. 딸의 얼굴에 기운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아빠, 나 종일 힘들게 일하고 나서 원룸 돌아오면 씻고 배달 음식 시킬 기운밖에 안 남거든. 그래도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좀 알아야 도태되지 않지. 동물들 사진도 위로가 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거 아빠가 나한테 책만 보지 말고 밖에 나가 친구 사귀라면서 하던 말이잖아. 이제 친구는 다 거기에 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연금 통장 안에 있는 잔고가 딸의 빚을 갚아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비밀로 할 작정이었다.
“디지털 소통으로 더 고독해진 삶 시대의 아이러니”
■ 작가의 말
디지털화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 모든 일상을 디지털로 해결하는 딸. 두 사람은 똑같이 ‘고독’하다. 소설 ‘고독의 연대’를 통해 은희경 작가는 소통채널이 늘어날수록, 소통이 부재한 시대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은 작가는 스스로 ‘X(옛 트위터) 중독’이라며, 소설 속 딸에 가깝다고 했다. 15년째 SNS를 하고, 검색, 쇼핑, 메일, 게임, 건강 체크에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그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과 장단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며 “그건 내 문제기도 하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은 작가는 디지털에 의존하다 보면 점점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거짓 정보나 배타적 집단의 주장에 휘둘린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SNS의 속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무단횡단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인간’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복잡한 존재인 인간을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 은 작가는…
1959년생. 1995년 등단 후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을 썼다. 이상문학상, 동서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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