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카 탄 독수리 오형제?… 10살 소년의 발칙한 상상이 현실로

유승목 기자 2023. 12. 11. 09: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싱사로 일하는 어머니는 늘 바빴다.

어린 아들은 매일 홀로 집을 지켰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오는 13일부터 열리는 박기일 개인전 '장소 없는 장소'엔 상상과 현실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재구성한 작품 19점이 걸린다.

오랜 세월이 지나 풍화되고 흐릿할 법한 기억의 파편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되는 점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13일부터 박기일 개인展
30여년전 기억의 조각 모아
19개 그림작품으로 재구성
붓칠 흔적 없이 디테일 살려
‘Comic con’

미싱사로 일하는 어머니는 늘 바빴다. 어린 아들은 매일 홀로 집을 지켰다. 방에 놓인 낡은 미싱과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주한미군방송(AFKN)의 이국적인 장면은 심심함을 달래주는 장난감이었다. 가끔은 ‘아무도 모르는 창고 안에 갖고 싶은 만화책이 잔뜩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행복을 느껴볼 때도 있었다.

‘어른 아이’ 박기일(42)의 그림 세계는 여기서 출발한다. 어른이 된 화가는 30여 년 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놀던 아이가 켜켜이 쌓아둔 기억의 조각을 재료 삼아 캔버스를 채운다. 엔진 대신 미싱을 얹은 올드카를 타고 황야를 질주하는 작품 ‘Mishin Rider’가 이렇게 그려졌다. 어울리지 않는 ‘독수리 오형제 헬멧’을 쓴 덥수룩한 수염이 난 아저씨는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Mishin Rider’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오는 13일부터 열리는 박기일 개인전 ‘장소 없는 장소’엔 상상과 현실 어딘가에 있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재구성한 작품 19점이 걸린다. 낡고 녹슨 컨테이너가 열리자 수천 권의 만화책이 쏟아져 나오는 ‘Comic con’이나, 한밤중에 논밭 두렁에서 불붙인 깡통을 빙빙 놀리는 아이가 그려진 ‘불놀이’, 이제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찾을 수 없는 빨간색 오래된 경차가 물 위에 서 있는 ‘빨간 자동차와 그림들’ 등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 제목처럼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변해버린 기억 탓에 실제완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장소들이지만, 작품들은 하나같이 묘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삭막하고 정 붙일 곳 없는 어른의 세상을 벗어나려는 ‘어른 아이’들은 그림 앞에서 서로의 옛 기억을 공유하며 감정적 교류를 만들어낸다.

작품들이 붓칠한 흔적 없이 깔끔하고, 프린트된 인쇄물처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점도 눈길을 끄는 요소다. 작가의 독특한 기법적인 특징 중 하나는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물감의 두께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얇게 칠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풍화되고 흐릿할 법한 기억의 파편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되는 점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