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사 3대 화두, '칼바람·세대교체·오너등판' 주목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삼성, SK, LG 등 주요 기업들의 2024년 정기 인사가 마무리됐다. 글로벌 불황 속 대다수 기업들은 승진자 폭을 예년 대비 대폭 줄여 위기감을 반영했다. 동시에 젊은 리더들을 앞세운 세대 교체로 기업 내 쇄신을 꾀하고, 오너일가 전면 등장으로 책임 경영 강화에 나섰다.
승진자 대폭 축소…'칼바람' 몰아쳤다
임원 승진자가 줄어들면 인건비가 동반 감소한다. 기업들은 임원 축소를 통해 경상 경비 감소에 따른 '경영효율'을 노릴 수 있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5월(90명) 이후 가장 적은 143명의 임원을 승진시켰다. 지난해보다 23.5% 감소한 수치다.
글로벌 복합 위기와 실적 부진을 반영해 사장 승진자는 2명에 그쳤고, 부사장 승진자도 지난해보다 8명이 줄어든 51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상무 승진자는 전년 대비 30명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등도 대표가 대부분 유임됐고, 임원 승진도 최소화했다.
LG그룹도 소폭 승진 흐름은 마찬가지였다. 전체 승진 규모는 2022년(160명)보다 줄어든 139명에 그쳤다. 신규 임원도 99명으로 지난해(114명)보다 13.1% 줄었다.
LG는 이번 인사에서 실적이 좋지 않은 주요 계열사 CEO를 교체하는 등 성과주의에 기반한 신상필벌을 기조로 승진 규모를 축소했다.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간 LG디스플레이 CEO가 교체됐고, 호실적을 낸 조주완 LG전자 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 등은 자리를 지켰다.
SK그룹도 이번 인사에서 신규 부회장을 단 한명도 선임하지 않았다.
아울러 사장 및 임원 승진 규모도 대폭 축소했다. 올해 사장 승진자는 6명으로, 2023년 8명, 2022년 7명보다 줄었다.
신규 선임 임원 규모는 최근 4년 이래 가장 적다. 총 82명으로 2021년 107명, 2022년 165명, 2023년 145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재계에서는 기업들이 글로벌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해 임원 승진을 최소화하고 경영 효율화를 꾀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부문 등 주력 사업 적자로 부진한 실적이 계속됐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6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3분기 들어 올해 첫 2조원대 이익을 냈으나 연간 기준으로 5조~6조원대의 영업이익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도 LG화학과 LG디스플레이가 기대보다 실적 회복이 더디다. LG CNS도 매출액과 영업이익 성장세가 이전보다 둔화하는 등 주요 자회사들의 매출 하락으로 힘든 모습이다.
SK그룹 역시 핵심 사업 실적이 악화되는 등 대내외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영업이익이 급감했고, 전기차 배터리업체 SK온도 여전히 적자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성격으로 임원 자리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유지했지만 올해는 기술에 강한 실전형 인재들을 제외한 인사는 대폭 축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50대 사장의 시대…"세대교체 본격화"
삼성에서는 오너일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제외하고 첫 1970년대 사장이 탄생했다.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은 1970년생으로 올해 53세다.
삼성전자는 이어 30대 상무 1명과, 40대 부사장 11명 등 과감한 인재 등용으로 세대교체에 힘을 실었다.
삼성의 올해 신규 임원 평균 연령은 47.3세를 기록했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에서는 황인철(46세) MX사업부 AI개발그룹장이 최연소 부사장 승진자로 이름을 올렸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선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2팀장인 강동구 부사장(47세)를 배출했다.
LG는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 시절 임명한 부회장단은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을 끝으로 모두 현직에서 물러나 '구광모 체제' 세대교체를 완료했다.
이번 인사로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당시 6명이던 부회장단은 2명으로 줄었다. 권봉석 LG부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구광모 회장을 보좌한다.
각 계열사별 수장들도 젊은 피로 바뀌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문혁수 LG이노텍 부사장은 모두 50대로 전임 수장들보다 10년이나 어리다.
LG그룹의 신규 임원 99명 중 1970년대 이후 출생이 97%를 차지한다. 신규 임원 평균 연령은 49세다. 그룹 내 최연소 임원은 1982년생인 손남서 LG생활건강 상무다.
SK도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조직의 유연함과 위기대응 능력을 강화한다.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1970년대생 CEO를 전진 배치해 사장단 평균 나이를 대폭 낮췄다. 이번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SK 부회장단 평균 나이는 61.3세인 반면 이번에 새로 선임된 사장단 평균 나이는 55세다.
1975년생인 김양택 SK㈜ 머티리얼즈 CIC 사업 대표, 1970년생 김원기 SK엔무브 사장, 1975년생 류광민 SK넥실리스 사장, 1974년생 장호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사장을 새롭게 임명했다.
SK그룹 내 매출 1조원 이상인 계열사 대표 중 1970년대생은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추형욱 SK E&S 사장 등 6명이었는데, 10명으로 늘었다.
SK그룹의 올해 신규 선임 임원의 평균 연령 역시 만 48.5세로 지난해 보다 0.5세 젊어졌다.
특히 SK그룹 인사에선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이 사업개발본부장을 맡게됐다. 1989년생인 최윤정 본부장은 올해 만 34세로 최연소 임원에 올랐다.
"책임경영으로 위기 돌파"…오너가 전면 등장
SK, 현대, 롯데, 코오롱, 한화, GS 등 주요 기업들은 올 하반기 인사에서 내년도 경영진에 오너 일가를 전면 배치했다.
SK그룹은 최태원(63)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59)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그룹 2인자'로 불리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최 부회장은 임기 2년의 수펙스 의장을 맡아 최 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끈다.
최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34) SK바이오팜 팀장은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내 최연소 임원에 올랐다. 최 본부장은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신규 투자와 사업 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신동빈(68)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37) 롯데케미칼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신 전무는 롯데지주 내 신설되는 미래성장실장을 맡아 그룹 내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박차를 가한다.
정몽준(72)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41) HD현대 사장은 지난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부회장은 조선업계가 불황일 때 위기극복에 앞장 섰고, 선박영업 및 기술개발을 지휘하며 경영 역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내년 초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기조연설도 맡는다.
이웅렬(67)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규호(39) 코오롱모빌리티 사장은 그룹 지주사인 ㈜코오롱 전략부문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한지 1년 만에 다시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 부회장은 '재계 최연소 부회장' 타이틀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다.
김승연(71)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34)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올라갔다. 업계에서는 김 본부장이 국내 출시한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의 성공을 승진 배경으로 꼽는다. 김 본부장은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로봇사업도 맡고 있다.
GS그룹도 일제히 오너일가 4세들을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 허창수(75) 명예회장의 장남 허윤홍(44) 사장은 GS건설, 허정수(73) GS네오텍 회장 장남인 허철홍(44) 부사장은 GS엠비즈 대표로, 허광수(77)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 허서홍(46) ㈜GS 미래사업팀장 부사장은 GS리테일 경영전략SU장으로 이동했다.
허명수(68) GS건설 상임고문의 장남 허주홍(40) GS칼텍스 상무와 허진수(70)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치홍(40) GS리테일 상무는 각각 전무로 승진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이 할 수 없는 장기 투자를 오너일가는 할 수 있다"며 "불확실한 경영 여건 속에 오너일가가 직접 나서 미래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ovelypsych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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