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도 울고갈 당근의 '분쟁 조정'…"이용자 만족이 최우선" [조재현의 조명]
"부정 경험 빠르게 해소…플랫폼 성장 기반"
[편집자주] 정보통신기술(ICT)의 진보는 우리 삶을 밝게 비추는 '조명'과 같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ICT 기술이 '인간'을 바라보고 있어서겠죠.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기술을 구상하고 만드는 사람들을 '조명'해 보려 합니다.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개인 간 중고 물품을 거래 하다보면 난처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급작스러운 에누리 요청은 애교다. 분명 '쿨거래'(가격 흥정 없는 거래)였는데 며칠이 지나 하자가 생겼다며 환불이나 수리비를 요구하는 일도 있다.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요'란 후기를 회수하고 싶은 심경을 넘어 차오르는 짜증에 얼굴이 일순간 구겨진다. 따져보니 구매자도 소홀한 점이 있었다. 이에 성의 표시를 해보지만, 분위기는 냉랭하다.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다. 뾰족한 해법은 없고 감정은 상할 대로 상했다. 화살은 결국 플랫폼으로 향한다. 넋두리건, 분노건 받아줘야 한다.
국내 대표 지역 생활 커뮤니티 '당근'(옛 당근마켓)은 고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결론은 적극 개입이었다. 국내 개인 간 거래(C2C) 플랫폼 중 최초로 분쟁조정센터를 구축한 배경이다. 탈무드 속 솔로몬왕도 난색을 보일 만한 분쟁이라고 해서 외면할 순 없었다.
"플랫폼의 개입과 노력으로 다툼이 빠르게 해소되면 오히려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영역이지만,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이유죠."
최근 서울 서초구 당근 사옥에서 만난 당근서비스 신지영 대표(39)는 "적극적인 분쟁조정 후 이용자들이 감사 메시지를 전해오면 희열이 생긴다"며 환하게 웃었다. 당근서비스는 분쟁조정센터 업무를 총괄하는 당근의 자회사다.
부정적 경험은 고객 충성도를 떨어트릴 우려가 크다. 중고거래 시 발생한 분쟁이 결국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산하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까지 이어졌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500원, 1000원을 위해 필요 이상의 시간·노력을 쏟고 싶은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용자 마음속엔 '두 번 다시 이용하나 보자'는 울분이 움튼다.
신 대표는 플랫폼의 장기 성장 측면에서도 분쟁 이슈는 반드시 정리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 현대판 솔로몬왕…구매자 vs 판매자 중 잘못은 몇 대 몇
당근이 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이다. 당시엔 워낙 다양한 사례에 쉽사리 대응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전자거래분쟁조정위와 협업하며 도울 방법을 찾았다. 신 대표는 그 과정 속에서 분쟁조정을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근은 사례를 분석하며 분쟁조정 절차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경험이 쌓이자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각종 분쟁 상황에 조정안도 직접 제안했다.
당근에 따르면 한 달 평균 분쟁 신고 접수는 1만건 정도다. 그만큼 분쟁 양상도 다양하다. 미개봉 토스터를 구매했는데 작동이 되지 않자, 구매자가 환불을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미개봉 제품이었기에 판매자는 자신도 작동 여부를 알 수 없었다며 버텼다.
갈등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근이 나섰다. 우선 직거래 여부는 물론 게시글 내 필수 정보 누락 등 전반적인 사안을 살폈다.
그 결과 미개봉 상품일지라도 판매자의 잘못을 '0'으로 보긴 무리였다. 구매자의 하자 확인 시점도 구매일로부터 꽤 지난 상황이었다. 확인 시점이 늦어질수록 판매자보단 구매자의 잘못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당근은 '구매 후 하자 확인 시점', '수리 가능 여부' 등 세부 분쟁 조정 기준에 따라 점수를 산출했다.
'정황'도 판단한다. 판매자가 오랫동안 방치해놓은 상품을 판매한 건 아닌지, 반대로 구매자가 사용 중 발생한 하자는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정황까지 확인하면 최종 점수가 나온다. 객관화된 체크리스트를 거치자 수리비를 5:5로 부담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구매자와 판매자도 당근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당근은 중고 거래가 가장 활발한 6개 품목(전자제품, 의류·패션, 가구·유아동, 도서, 식품·미용, 취미 용품)별 분쟁 조정 기준을 우선 만들었다. 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모든 내용은 분쟁조정센터에서 검토 후 사례에 맞춰 24시간 내 회신을 준다.
전체 분쟁 신고 접수건 중 플랫폼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소된 비중은 2021년 86%에서 2022년 91%로 증가했다. 10명 중 9명은 조정안을 받아들이거나 조정 전 합의에 성공한 것이다.
신 대표는 "개인 간 거래 특성상 작은 오해나 감정이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데 플랫폼 차원에서 쟁점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따른 1차 조정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해소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 건강한 거래 환경에 기업도 성장
"플랫폼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도 분쟁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건 필요합니다."
중고 거래 시 발생하는 분쟁은 소비자보호법의 영역에서 다루기 어렵다. 그렇기에 구매자·판매자와 직접 접촉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만큼 절차도 많고, 시간도 소요되지만 당근은 세밀하고 전문적인 조정안으로 분쟁 해소율을 높이는 게 목표다.
신 대표는 원활한 분쟁 해결이 결국 이용자 충성도를 높인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무수하게 오는 감사 메시지가 그 방증이다. 조정을 통해 해결한 액수는 500원·1000원 등 소액이지만, 당사자에겐 50만원·100만원의 값어치일 수 있다.
선제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고자 힘쓰는 배경이다. 분쟁사례집도 발간할 계획이다. 사례를 기반으로 내부적인 분쟁 조정 기준표를 만들어 이용자나 업계, 정부 기관에 전달할 수 있다면 개인 간 거래 분쟁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다.
◇ 분쟁도 '골든타임'이 중요
"분쟁이 발생하면 조금 더 빨리 개입해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싶어요."
신 대표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기준으로 보다 빨리 개입해 부정적 경험 차단에 주력하려고 한다. 분쟁 해결에 있어 '시간'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500원, 1000원 때문에 과한 에너지를 쏟는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스트레스는 급증한다. 분쟁이 발생하는 초기부터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명백한 기준에 따라 제시한 조정안이 빨리 나온다면 구매자나 판매자가 '오케이'를 외칠 가능성도 커진다.
"물론 분쟁이 없으면 좋겠죠. 그래도 피할 순 없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빠르게 개입해 이용자가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 않도록 돕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당근도 더 아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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