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대나무 섬에 쉬러갔다가 밥상 위에서 힐링하다

민미정 입력 2023. 12.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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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 죽도
죽도 제2조망쉼터의 아침. 썰물 때는 모든 것이 멈춘다. 해수면만이 바람을 타고 조용히 넘실대고 있다.

대나무 내부 조직은 표면 조직에 비해 세포 분열 속도가 현저하게 느리다. 따라서 표면 조직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속이 비어 있다. 대나무는 빨리 성장하기 위해 기꺼이 속을 텅 비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속을 비웠기 때문에 오히려 강풍에는 흔들릴지언정 잘 부러지지 않는다. 여러 나무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꺾이지 않는 지조, 대나무가 사군자라 평가 받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얼마 전 직업을 바꾸고 나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겉과 속을 빈틈없이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일과 취미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선을 가장한 욕심이었다. 만족할 수 없는 결과에 스트레스 받고, 결국 좌절하는 일이 많아졌던 것이다. 지금은 욕심을 덜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너그럽고 편안해졌다.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낭만 가득한 야영을 떠나는데 갑자기 인생 타령은 무엇? 충남 홍성 죽도로 야영을 떠나자는 조창호 오빠의 말에 문득 대나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1조망쉼터의 해변가에 우럭이 많이 잡힌다는 정보를 듣고 낚싯대를 던졌다. 생애 첫 바다낚시에서 아기 우럭을 잡았다. 곧 놓아줬다.

죽도는 충남 홍성군의 유일한 유인도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무인도 11개 중 8개의 섬이 죽도 가까이에 있다. 나머지 3개의 섬은 썰물 때 드러난다고 한다. 본섬과 가까운 충태섬은 썰물 때 진입로가 나타난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으니,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멋진 사진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감성돔과 우럭 등 다양한 물고기를 낚을 수 있어 낚시꾼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섬이라고 한다.

오빠는 예전에 묵었던 민박집 인심이 후하다며 가족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감사한 마음에 민박집 간판도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고 했다. 대가도 없이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죽도의 그 민박집이 궁금했다. 텐트에서는 잠만 자고, 민박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전 11시 남당항, 장비를 옮겨 배에 실었다. 선미에 서서 일렁이는 해수면을 바라봤다. 서서히 속력을 높이던 배는 바다를 가르며 질주했다. 하얀 포말 위로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2층에서 쏟아붓는 새우깡을 먹으려고 아수라장이었다. 10분 남짓 항해하던 배는 금세 죽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새우깡 한 개로 갈매기 한 마리를 유혹하는 낭만을 누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제2조망쉼터의 별궤적 사진. 내가 잠든 사이 북쪽 하늘의 별들은 바빴다. 밤새 북극성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평일의 선착장은 바다를 드나드는 어부들로 분주했다. 200m 남짓 거리에 '햇살민박'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간판 아래에는 알쏭달송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어르신이 한 분 서 있었다.

"안녕하셨어요? 아버지!?"

오빠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햇살만큼이나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7년 전 한 달간 묵는 오빠를 큰아들로 삼았다고 한다. 서로를 덥석 껴안는 모습에서 그동안의 그리움이 느껴졌다. 인사를 마친 사장님은 급히 외출했고, 사모님이 나오셨다. 또다시 이어지는 반가운 인사, 고향집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있자니, 바로 점심상이 차려졌다. 급히 나가셨던 사장님이 갓 잡은 생선과 해산물을 챙겨 온 것이었다. 가족 모두 모여 앉았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밥상 위에서 젓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간장게장 하나를 손에 들었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 가득 달콤하고 짭조름한 게의 부드러운 속살이 씹혔다. 순식간에 바닥난 게장 접시는 화수분처럼 채워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 위에 텅 빈 게 딱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 정도면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을 찍어도 될 듯 했다.

죽도의 일몰 풍경. 데크에서는 취사가 금지되어 있다. 식사는 민박집에서 해결했다. 해질녘 텐트를 펴고 밤새 사진을 찍은 뒤 일찍 철수해야 한다.

자꾸 주는 섬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 제2조망쉼터에 올랐다.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 걸렸다. 죽도에도 야영장이 있지만, 텐트에서는 사진 찍고, 잠만 잘 계획이었다. 제2조망쉼터에서 포구가 내려다 보였기 때문에 사진 찍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민박집이 가까워 식사나 화장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최적의 장소였다. 다음, 제3조망쉼터로 향했다. 죽도에는 대나무만큼이나 고양이도 많았다. 걸음마다 길고양이들이 즐비했다. 고양이들은 우리를 경계는 하되,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하루 수십 명씩 오가는 여행객들에 익숙한 듯 금세 뒤에 따라붙었다. 제3조망쉼터 가까이 죽도 야영장이 있었다. SNS에 자주 등장하는 나홀로 소나무가 보였다. 나무 아래 텐트 한 동이 있었더라면 멋진 사진이 나왔을 텐데, 야영장은 텅 비어 있었다. 다음엔 소나무 아래에서 야영을 해보겠다고 다짐하며 발길을 돌렸다. 제1조망쉼터로 이어지는 길은 데크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짙은 대나무 숲이 엷어지더니 오션뷰가 나타났다. 나는 감탄했다.

섬을 둘러본 후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평일임에도 여행객들 때문에 떠들썩했는데, 마지막 배가 떠나자 썰렁해졌다. 텐트와 카메라를 들고 제2조망쉼터에 다시 올랐다. 바람은 잔잔했다. 완벽한 원형을 이룬 별 궤적 사진을 담기 위해 정북향을 탐색했다. 텐트를 치고 나자 오빠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 내려갔다 오겠다던 그의 양손에는 과일 주스가 들려 있었다. 사모님이 사준 음료였다. 이 정도면 인심이 후하다며 자랑할 만했다. 금세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서쪽으로 붉은 노을이 짙게 드리워졌다. 오랜만에 보는 멋진 노을이었다.

죽도 곳곳에는 미니 갤러리와 시인들의 시가 마련되어 있다. 죽도 트레킹을 하면서 감상할 수 있다.

저녁식사를 먹으라는 어르신의 부름에 다시 민박집으로 내려갔다. 또 다시 온 가족이 모인 밥상 위에 이방인의 수저가 함께 놓였다. 이번에도 푸짐한 해산물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삼겹살이 구워졌다. 맥주와 소주가 밥상 위에 등장했다. 일과를 마친 가족들이 하루 동안의 일을 공유했다. 요즘 내가 드물게 경험한 식사 풍경이었다. 정감이 좔좔 흐르는 밥상이었다. 그 와중에도 빈 접시들은 다시 채워졌다. 눈과 귀와 입이 즐거웠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텐트로 향했다. 드론으로 보는 죽도의 야경은 고요했다. 좁은 텐트 안에 누웠다.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구름이 시간이 가고 있음을 알렸다. 새벽녘의 별을 기대하며 카메라를 설치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벌써 해가 떠올라 있었다. 별사진은 성공이었다. 자욱했던 구름은 자정을 지나 완전히 사라졌다. 사진 속 별 궤적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드론을 날려 아침풍경까지 담았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내려가 보니, 또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식도락을 즐기는 사이 사모님이 커다란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제3조망쉼터의 항공사진. 제3조망쉼터 해변가에는 죽도야영장이 있어 백패커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아니 누가 감을 말도 없이 문 앞에 두고 갔어!"

옛날 드라마 '전원일기'에나 나올 법한 일 아닌가? 보통은 사람을 불러 "여기 감 먹어!"라고 생색 낼 법도 한데, 그냥 두고 가다니. 여기 사람들 참 순수하다고 느꼈다. 마음이 훈훈했다.

밥을 먹고 사장님이 알려준 낚시 포인트로 향했다. 오빠한테 릴낚시를 쥐는 방법부터 낚시 바늘을 던지는 '캐스팅' 방법까지 단기 속성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실전으로 투입됐다. 얄궂은 바람이 바다를 어지럽혔다. 찌가 넘실거리는 해수면을 따라 움직이는 건지, 물고기가 입질을 하는 건지 헷갈렸다. 우럭을 잡아 활어회를 먹겠다던 나의 허세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쉴 새 없이 캐스팅하며 확률을 높이려 안간힘 썼다. 멀리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감이 왔다.

'먹을 게 있으니 달려들겠지!?'

갈매기보다 먼저 우럭을 잡아보겠다며 재빠르게 낚싯대를 휘둘렀다. 정확히 갈매기 떼가 있는 곳에 꽂혔다. 그리고 바로 입질이 왔다. 배운 대로 낚싯줄에서 "쨍!" 소리가 나도록 힘껏 당겼다. 그러자 멀리서 갈매기 한 마리가 휘청거렸다. 맙소사! 우럭대신 갈매기를 낚았다. 갈 곳을 잃은 낚싯대는 오빠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팽팽했던 낚싯줄은 맥없이 늘어졌다. 갈매기들은 그대로 날아갔다. "미안해 갈매기야." 소리질렀다.

죽도 둘레길은 대나무숲 사이로 잘 정비되어 있다.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죽도 진수성찬

물고기든 갈매기든 한 번 손맛을 느낀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낚싯줄 끝에는 새로운 바늘이 달렸고, 신중하게 캐스팅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묵직한 떨림이 손끝에 느껴졌다. "쨍!" 소리를 내며 낚아 챈 후 릴을 감았다. 딸려오는 낚싯줄 끝으로 은색 물고기가 끌려오고 있었다. '학꽁치'였다. 나의 두 번째 바다낚시 포획물이었다. 손바닥만 한 길이에 가늘었지만, 힘차게 날뛰고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다시 낚싯대를 휘둘렀다. 그리고 잠시 후, 또다시 손에서 묵직함이 느껴졌다.

"이번엔 진짜 큰 우럭 같아요!!"라고 소리쳤다. 릴을 감는 내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침내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세 번째 포획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새겨진 문구가 떠올랐다.

'사물이 느껴지는 것보다 상당히 작습니다.'

코끝부터 꼬리지느러미 끝까지 10cm쯤 됐을까? 우럭을 잡아 회를 떠먹겠다던 나의 '뚱뚱한' 꿈은 무참히 깨졌다. 바늘에 걸려 몸부림치는 아기 우럭한테 미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갈매기가 더 가여울까? 아기 우럭이 더 가여울까?'

낚시바늘에서 분리한 아기 우럭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작고 소중한 아기 우럭을 바다에 놓아주었다. 아기 우럭은 짧은 꼬리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사라졌다. 처음 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위로를 받으며 철수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갖기 위해 민박집 옆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사장님이 동네 아주머니에게 음료를 건네고 있었다. 햇살민박 사모님이 게장을 나눠주어 감사의 뜻으로 음료 배달을 부탁한 것이다. 잠시 후 뒤늦게 들어온 오빠가 음료를 주문했다. 오빠는 주문한 음료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며 카페 사장님에게 말했다.

해산물이 풍부한 죽도는 낚시꾼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나도 여기서 난생 처음 낚싯줄을 던졌다.

"나중에 햇살민박 아버지, 어머니 오시면 음료수 그냥 내주세요."

때마침 민박집 사장님이 오전 일을 마치고 들어와 맥주 한 캔을 주문했다. 그러자 카페 사장님은 오빠가 계산했다며 맥주 한 캔을 내주었다. 사장님은 오빠를 보며 말 없이 활짝 웃으셨다.

이 작은 죽도 곳곳에서 훈훈한 온기가 피어 올랐다. 죽도에서 최후의 만찬이 차려졌다. 접시와 밥그릇을 싹 비웠다. 1박2일 동안 꽃게 100마리는 먹은 듯했다. 오빠는 숙박비와 식사값을 지불했다. 사모님은 오랜만에 반가운 큰아들 와서 숟가락만 얹은 거라며 손사레를 쳤다. 오빠는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그리자 사장님과 사모님은 다시 바빠졌다. 간장게장과 갓 잡은 꽃게, 소라를 들기도 힘들 만큼 어마어마하게 담아주었다. 이 작은 섬 안에서 '아낌없이 베풀기 릴레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에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풍부한 자원 넘치는 인심! 치열하게 경쟁하는 삭막한 삶에 지쳐 있던 나에게 죽도에서의 1박2일은 힐링, 치유! 그 자체였다. 양손만큼 마음도 묵직하게 채우고 배에 올랐다. 배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두 분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민미정 깨알 팁

(아무도 묻지 않아도 알려주고 싶은 정보)

죽도 들어가는 방법

출항지

남당항 ·

배편

왕복 1만 원

운항 시간표

(화요일 휴항) ·

소요시간

편도 10~15분

홍성 죽도 야영장

선착장에서 약 700m 거리의 남쪽 해변에 위치해 있다.

이용요금

1인 1박기준 1만 원

매점이용 가능(이소가스 등 캠핑에 필요한 물품 및 햇반, 라면, 주류 등 간단한 음식 구입 가능)

죽도 관광

코스

남당항(배로 이동) → 죽도 본섬 → 제1조망대 → 제2조망대 → 제3조망대 → 대나무숲 탐방로(약 1km) → 담장벽화 → 선착장 쉼터 → 남당항(배로 이동) 약 3.5km

소요시간

약 2시간

제1조망대

한용운 선생 조망대(옹팡섬)로 물때에 따라 무인도와 연결되는 바닷길을 볼 수 있다.

제2조망대

최영 장군 조망대(동바지)로 하얀 등대가 있는 포구와 대나무 숲 속의 갤러리도 감상할 수 있다.

제3조망대

김좌진 장군 조망대(담깨미)로 근처에 야영장이 있으며, 큰달섬, 작은달섬 등 무인도를 조망하기에 좋다.

죽도에 가면 봄에는 바지락, 여름에는 꽃게, 가을에는 대하, 겨울에는 새조개 등 사시사철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9월 초~10월 중순 대하축제가 열린다.

인심 후한 [햇살민박]

숙박+식사+낚시 체험까지 가능

예약

010-4482-8481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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