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인습이 낳은 비극…파키스탄 영화 '조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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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여성 비바(알리나 칸 분)가 전철을 타고 가다가 빈자리에 앉자 여성 승객들이 "여긴 여성 전용 칸이니 남성 칸으로 가라"고 소리친다.
비바의 남자친구 하이더(알리 준조)가 말없이 그 옆에 앉고, 비바는 고맙다는 듯 웃음을 짓는다.
이 영화는 고정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인습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하이더가 비바에게 매혹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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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트랜스젠더 여성 비바(알리나 칸 분)가 전철을 타고 가다가 빈자리에 앉자 여성 승객들이 "여긴 여성 전용 칸이니 남성 칸으로 가라"고 소리친다.
비바의 남자친구 하이더(알리 준조)가 말없이 그 옆에 앉고, 비바는 고맙다는 듯 웃음을 짓는다.
파키스탄의 주목받는 신예 감독 사임 사디크가 연출한 화제작 '조이랜드'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고정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인습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하이더는 파키스탄의 도시 라호르에 사는 젊은 남성이다. 늙은 아버지와 형 부부, 조카 넷, 그리고 아내 뭄타즈(라스티 파루크)와 함께 대가족으로 산다.
직업이 없는 하이더는 조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뭄타즈가 돈을 번다. 그런 하이더를 아버지는 늘 못마땅해한다.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쫓긴 하이더는 트랜스젠더 여성 비바가 춤 공연을 하는 극장에 백댄서로 취업하고, 가족에겐 관리자로 일하게 됐다고 속인다.
메이크업 일을 사랑하는 뭄타즈는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을 떠맡는다. 그리고 하이더가 비바에게 매혹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사회적 관습과 인간적 감정의 충돌을 그린 이 영화는 봉건 제도의 질곡 아래 망가지는 인간군상을 그린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소설처럼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보수적인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습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가진다.
이 영화가 펼쳐내는 영상은 독특한 분위기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한낮의 태양 아래 빛나는 세상도 아름답지만, 어두운 밤에 펼쳐지는 빛의 향연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준다.
하이더의 형수 누치(사르와트 길라니)와 뭄타즈가 밤에 '조이랜드'라는 이름의 놀이공원에서 노는 장면이 그렇다.
네온사인의 빛이 두 파키스탄 여성의 화려한 옷을 비추면서 독특한 색의 조합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도 이색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조이랜드'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사디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단편 '달링'으로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제작사를 운영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말랄라 유사프자이도 '조이랜드'의 제작에 참여했다.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이 영화는 정작 파키스탄에선 당국의 상영 금지 처분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사디크 감독은 연출 의도를 밝힌 글에서 이 영화에 대해 "가부장제에 희생된 모든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마주(존경)"라며 "궁극적으로는 조국에 보내는 가슴 아픈 러브 레터"라고 했다.
13일 개봉. 127분. 15세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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