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키우고 일하는 법 바꿨더니..." 출생률 2~3배 급상승 일본 사례 공통점은? [클로즈업 재팬]
육아 세대 지원금, 마을 전체 응원이 효과 발휘
이토추상사, 업무 환경 바꿔 출생률 급상승
일본 혼슈 서부 오카야마현 나기초에 사는 하타 아야노(25)는 지난 7월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인근 쓰야마시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고(10만 명) 남편의 직장도 있는 도시에서 인구가 5,700명밖에 안 되는 소도시로 이사 온 이유는 태어난 지 1년 9개월 된 아들 고하루 때문이다.
"아이가 생긴 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월세가 다 비쌌어요. 그런데 나기초의 '육아 응원 청년 주택'에 응모해 당첨되면 월세 5만 엔(약 44만 원)에 입주할 수 있더군요."
지난달 28일 나기초 육아 지원센터 '나기 차일드홈'에서 만난 하타는 이 시설에서 많은 육아 동료를 만난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집에서 '독박 육아'를 하던 때와 달리, 이곳에서 다른 엄마들이나 자원봉사자 할머니들과 밥도 지어 먹으며 육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치 대가족의 일원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기 차일드홈엔 '육아 어드바이저'와 자원봉사자가 상주하고 있다. 보호자는 아이와 함께 다양한 실내외 활동에 참여할 수도, 아이를 잠깐 맡기고 볼일을 보고 올 수도 있다. 아기를 낳아 출생신고를 하면 마을 보건사가 직접 동행해 이곳을 소개해 준다. 하타는 "이 마을은 아이 세 명은 기본이고 네 명인 집도 있다"며 "나도 둘째는 낳을 생각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셋째까지 낳을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①나기초: 육아 세대 응원이 곧 고령자 복지
2005년 1.41명이었던 나기초 출생률은 2019년 일본 최고인 2.95명을 기록했다. 애초 2060년 인구가 절반인 2,600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이 마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마을로 변신한 것은 2002년부터다. 마을 주민이 뜻을 모아 꾸준히 육아 지원 정책을 강화해 온 덕분이다. 젊은 사람들이 사라지면 병원, 슈퍼, 편의점 등 고령자의 삶에 필수적인 시설도 없어진다. 따라서 '육아 세대를 응원하는 것이 곧 고령자 복지 정책'이라는 데 마을 주민들은 동의했다.
나기초는 우선 육아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예산은 최대한 줄였다. 출산부터 아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생애 주기에 맞춘 지원금 제도를 마련했다. 이어 2007년 차일드홈을 설립하고 2012년 '육아 응원 선언'을 통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선다'는 이념을 실천했다.
오쿠 마사치카 나기초장은 이날 외신기자회견에서 "아이를 더 낳고 싶은데 못 낳는다고 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들어 보면 두 가지"라며 "하나는 '보육과 교육에 돈이 많이 든다'는 경제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심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지원은 다른 지역도 하지만, 우리는 육아 부담을 줄이고 '내가 응원받고 있다' '육아가 즐겁다'고 느낄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해 왔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수많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적 같은 나기초 출생률 급상승의 비밀을 배우겠다며 찾아오지만 그대로 따라하기 힘든 것은 '마을 전체가 육아 가구를 응원한다'는 이념을 실제로 구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②나가레야마시: 출퇴근 부모 맞춤형 육아 지원
나기초가 지방 소도시 성공 모델이라면 도쿄 인근 지바현 나가레야마시는 수도권 베드타운이 육아 친화 도시로 성공한 사례다. 이곳 역시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육아 가구의 라이프 스타일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애초 이곳은 '단카이 세대(2차세계대전 후 베이비붐 세대)'가 많아 고령화율이 높았다. 도시 소멸 위기에 처하자 이자키 요시하루 시장은 2005년 도쿄 아키하바라까지 30분에 갈 수 있는 '쓰쿠바 익스프레스' 노선이 개통되는 시점에 맞춰 도쿄에 통근하는 맞벌이 가구를 끌어들이기로 하고 다양한 육아 지원 정책을 도입했다.
먼저 어린이집을 대거 늘렸다. 2011년 17곳에 불과했던 어린이집은 올해 기준 103곳에 달한다. 보육교사 월급도 정부가 정한 금액보다 월 4만5,000엔(약 40만 원)을 더 주며 보육의 질도 높였다.
도쿄로 출퇴근하는 맞벌이 부부가 아침저녁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번거로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2007년 주요 역 두 곳에 설치한 '역 앞 송영 보육 스테이션'은 큰 환영을 받았다. 부모가 아침에 기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이곳에 아이를 맡기면 보육사가 아이들을 돌보다가 전용 버스에 태워 각자 다니는 어린이집에 차례로 데려다 준다. 오후엔 역시 버스로 어린이집을 순회하며 아이들을 데려온 뒤 부모가 퇴근길에 데리러 올 때까지 돌봐 주는 방식이다. 부모가 야근 등으로 늦을 경우 오후 9시까지 연장 보육도 제공한다.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녹지를 조성하도록 하고 층고 제한과 간판 색상 규제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쾌적한 주거 환경을 조성한 것도 30·40대 육아 세대의 기호에 부합했다. 꾸준한 노력으로 인근 도시에서 전입자가 늘고 출생률도 상승(2004년 1.14명→2018년 1.67명)하면서 도시는 인구 증가라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2005년 15만여 명이었던 인구는 올해 20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자키 시장은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다른 곳에서 이사를 오면 목돈을 주는 방식으로 전입을 늘리려고 하는 지역이 있지만, 그런 곳이 실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며 "단순한 현금 인센티브 대신 우리는 양질의 보육과 교육 지원, 쾌적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데 예산을 썼다"고 말했다.
③이토추상사: 일하는 방법 바꾸자 출생률 급상승
출생률 상승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육아할 수 있는 삶' 뒷받침이라는 점은 일본 대기업 이토추상사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거주하는 곳의 지자체가 아무리 다양한 육아 지원 정책을 제시한다 해도 정작 맞벌이 부부가 매일 야근을 한다면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토추상사는 업무 환경을 바꿔 2012년 0.6명이었던 출생률이 2021년 1.97명까지 상승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전 세계 기업과 무역을 하는 종합상사의 특성상 이토추상사 역시 다른 동종 업체처럼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것이 직원의 일상이었다. 여성 직원은 출산 후 커리어를 이어가기 쉽지 않았고, 남성 직원은 배우자에게 육아를 모두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14년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 도입된 '아침형 근무제도'가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반드시 초과근무를 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다면 차라리 밤이 아니라 새벽에 하라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다.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면 늦어도 오후 8시엔 퇴근한다. 사무실 전기도 이때 꺼진다. 대신 아침 8시 이전에 일찍 출근해 근무하면 야근과 마찬가지로 수당을 할증해 준다. 무료 아침 식사도 제공한다.
효과는 놀라웠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불필요하게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경우가 없어지고 꼭 필요한 초과근무는 아침에 일찍 출근해 진행하면서 업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초과근무 수당이나 전기료, 택시비 등 비용 절감 효과도 나타났다. 오전 9시~오후 3시를 핵심 근무시간으로 정해 나머지 근무시간은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주 2회 재택근무도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육아 환경은 더 개선됐다. 결국 2021년 1.97명이라는 놀라운 출생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같은 해 일본 전국 출생률은 1.3명, 도쿄도의 출생률은 1.08명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이토추상사의 성공은 놀라운 결과였다.
가키미 도시유키 이토추상사 인사·총무부장은 "인사부에서 제도만 도입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전 사원의 의식 개혁과 일하는 방식 변화가 필요하므로 최고경영자가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바야시 후미히코 최고운영책임자(CAO)는 "육아뿐 아니라 부모 간병이나 개인 사정 등으로 인해 유연한 근무를 원하는 사유가 다양해지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상호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나가레야마·나기=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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