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차곡차곡 쌓아 ‘남 주는’ 법
필요성 인정 실천은 멈칫, 시기 놓치면 죄다 사라져
지난달 30일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2023년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는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과 2차 콘텐츠화’. 아카이빙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이를 어떻게 또 다른 콘텐츠로 창출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이날 세미나의 결론은 (가칭)‘부산문화예술아카이브센터’ 또는 ‘부산예술기록원’ 건립이었다.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한 기자 역시 같은 주장이다. 아카이브센터나 기록관이나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도대체 아카이브(archive)는, 그리고 아카이빙 (archiving)은 무엇인가. 아카이브는 기록물 그 자체다. 아카이브는 기록물의 보존 공간이기도, 자료 기록과 보존을 책임지는 기관 및 부서를 뜻하기도 한다. 자료를 이용하도록 처리하는 행위 및 과정 역시 아카이브다. 그래서 아카이브는 콘텐츠의 원천이 된다. 문화예술인의 경우 흔히 구술(口述) 아카이브가 적용된다. 구술 아카이브는 보존·정리해 공공적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역사적 내러티브가 되는 구술자료를 집합적으로 축적한 것 또는 그것을 관리하는 시스템·기관이다. 이런 아카이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카이빙이다. 아카이브는 아카이빙의 결과물이다. 예술인 아카이빙은 아카이브의 대상인 예술인의 일기 사진 편지 등 사적 기록물이다. 예술가가 생산한 작품이나 문헌자료, 수집·보존한 자료와 기록물들이 예술인 아카이빙이다.
그렇다면 지역 예술인 아카이브는 왜 중요할까. 이는 지역 정체성의 발견과 지역 문화예술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콘텐츠 개발의 원천인 까닭이다. 또 지역 문화예술사와 지역사 서술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지역 예술인 아카이브의 가치가 있다. 지역에 뿌리를 둔 지역 아카이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앙이나 국가기관이 아닌, 지역의 문화 전반을 기록화해 보존 공유하는 측면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지역 아카이빙은 ‘시급성’과 직결된다. 지금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다시는 찾을 수 없다. 시기를 놓치면 지역의 시각으로 지역사를 조명할 원천 자료는 사라지고 만다.
결국, 기록물을 수집, 보관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게 관건이다. 차곡차곡 자료를 쌓아서 ‘남 주는’ 방식이다. 2차 콘텐츠화와 같은 ‘쓰임새’가 빠진다면 아카이브는 단순하게 ‘전시’와 ‘보관’에 그칠 뿐이다. 도서관의 서고에 책이 아무리 많은들 그것을 읽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산문화예술아카이브센터 또는 부산예술기록원 설립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번 아카이빙 세미나 때 남영희 부산대 강사가 제시한 부산예술기록원 설립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예술사료의 유실과 망실 가속화 ▷부산예술인 아카이빙 제도화 ▷국내외 예술아카이브 기관 간 협력체제 구축 등이다.
그동안 부산 문화예술인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해 온 부산문화재단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부산문화재단이 그동안 생산한 내부 자료도 아카이빙 할 여력이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단지 자료를 쌓아놓을 뿐이다. 그래서 부산문화예술기록관 운영과 부산문화예술기록관리위원회 및 전담TF 구성 등을 구상 중이다. 부산문화예술기록관은 지금의 한성1918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곳에서 상시 자료 수집에 나서고 전담 인력이 상주하며 아카이빙 결과물 전시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것이 ‘구상’ 단계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기초연구’ 중이다. 이런 ‘구상’이 진일보한 것이지만, 한계점도 분명하다. 부산문화재단은 참고 사례로 대구예술발전소 내 예술정보실을 들고 있다. 그런데 그곳은 전시공간 외에 자료수장고와 아카이브 변환실도 갖추고 있다. ‘전시’에 그치지만은 않는다는 얘기다. 임시조직 성격의 전담TF도 그렇다. 팀 체제로는 제대로 된 기록관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부산문화재단의 ‘구상’이 ‘실천’으로 이어질지도 불투명하다. 열쇠를 쥔 부산시가 ‘필요성’만 인정하고 있다. 실천을 주저한다는 것이다. ‘부산광역시 문화예술진흥조례’ 개정을 포함해 많은 넘어야 할 산에 오르길 꺼리는 것으로 읽힌다.

백영호 작곡가가 있다. ‘동백 아가씨’, ‘해운대 엘레지’ 등 히트곡만 100여 곡이다. 발표한 대중가요는 4000곡이 넘는다. 백영호 작곡가의 유족이 선생의 자필 악보, 구술 자료 등 7000여 점을 부산근현대역사관에 기증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지역사 아카이브의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까닭이다. 현재 부산근현대역사관은 ‘백영호기록화사업’을 진행 중이다. 더불어 디지털아카이빙과 디지털플랫폼 구축 사업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부산문화재단이 ‘구상’ 중인 부산예술기록원이 설립된다면 이러한 자료 기증이 잇따르지 않겠는가. 다만, 플랫폼 역할에 충실했을 경우에 한해서다.
오광수 편집국 경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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