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목칼럼] 국가 소멸 위기, 과감한 개혁 필요

2023. 12. 10. 23: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가족형태 받아들이고
가부장적 사고방식 탈피 시급
열린 이민정책으로 인재유입 등
‘저출산’ 발상의 대대적 전환을

1995년 한국을 대표해 카이로 세계인구회의에 참석해 선진국들이 저출산을 걱정하는 모습을 지켜본 필자는 귀국 후 가족계획사업을 중단하는 정책 결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계속 하락해 급기야 금년 3분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0.7명에 이르렀다. 이를 지켜본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이 인구 소멸국가 1호가 될 것이라며 인구 감소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 상황은 흑사병이 강타했던 중세 유럽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빼앗긴 국가는 되찾을 수 있어도, 소멸한 국가는 되찾을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래서 저출산 추세를 겪고 있는 대다수 선진국은 인구정책에 많은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저출산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 역시 수없이 많으나, 이 중 발상 전환 차원의 개혁 의지만 있으면 상대적으로 적은 재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세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서상목 국제사회복지협의회(ICSW) 회장
첫째, 미혼모와 미혼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이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유럽국가들의 최근 상황을 살펴보면, 혼외 출산율 증가가 출산율 증가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18년의 경우 혼외 출산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41.5%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이의 20분의 1 수준인 2.2%였다. 한국의 혼외 출산 비율이 OECD 평균이 되면 출산율이 1.55명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낮은 혼외 출산 비율은 높은 수준의 낙태와 기아(棄兒) 문제 그리고 입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출산율 제고를 위해 프랑스는 1999년 ‘시민사회연대(PACS)’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선택한 동거 커플은 법적으로는 미혼이지만 정식 혼인한 부부와 차별 없이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이제 우리도 ‘한국형 PACS 제도’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가부장적 사고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는 최근 충격적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30대 여성이 결혼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신랑의 정관수술이라는 것이다. 결혼은 해도 애는 절대로 낳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뉴욕타임스는 또 “보수적 한국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반란과 이에 반발해 나타난 남녀 간 극심한 대립”이 혼인율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여성부 폐지’ 공약을 제시해 20대 남성 유권자의 표를 얻는 데 성공했으나, 그보다 더 많은 20대 여성 유권자의 표를 잃었다. 따라서 ‘여성부 폐지’ 대선 공약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가족계획이 성공한 것은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자신과 가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저출산 대책이 성공하려면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아울러 기성세대와 남성들의 가부장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끝으로, 현재의 닫힌 이민정책을 열린 이민정책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미국이 오랜 기간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최고 수준의 대학과 열린 이민정책 때문이다. 좋은 대학은 전 세계로부터 인재를 미국으로 유인하는 동인이 되고, 이들 중 상당수가 학업 후 미국에 머물기 때문에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인구 평균연령을 유지하면서 분야별 최고의 인재를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경험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주로 3D 업종에서 필요한 인력을 외국으로부터 한시적으로 수입하는 소극적 정책을 펴고 있으나, 앞으로는 영어강의를 대폭 확대하는 등 대학의 국제화와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을 통해 아시아 전 지역에서 인재를 유학생으로 유치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단기적으로는 우수인력 확보로 경제활력 증진에 기여함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정치사회적 혼란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발상 전환 차원의 과감한 개혁을 촉구한다.

서상목 국제사회복지협의회(ICSW) 회장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