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이소라, 콘서트는 정확하고 싶다는 신념…"오래하는 게 중요"
7~10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잊히고 싶지 않아요…다음에 아는 척 해주세요"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감히 가수 이소라의 노랫말처럼 써볼까.
10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2023 이소라 콘서트 - 소라에게'의 첫곡 '운다'처럼. "우주 속에 있는 귀 / 어둠 사위 별 가득 / 들은 듯 놓친 듯 / 한장 찢은 뜯긴 듯 / 꽉 막은 귀 쫑긋 / 깨 있는 듯 아닌 듯"
"줄거리를 상정하고 모호성이 있어 듣는 사람이 '내 이야기'로 여겨지게끔 만든다"(작사가 박창학), "발라드 장르에서 각운을 배려하는 거의 유일한 작사가"(문학평론가 신형철) 등의 수식을 인용해 그녀의 시(詩)적인 노랫말을 조금이나 흉내 내봤다.
근데 싱어송라이터 시인의 관록을 나부랭이 기자의 기록이 따라가는 게 가당키나 할까. 부족한 깜냥에도 이런 무모한 시도를 한 이유는 이소라의 콘서트 속성을 톺아보고 싶어서다.
이소라의 콘서트는 정확하고 싶다는 신념이 보인다. 시적인 무대 위에 흐트러짐 없는 명징한 사운드는 어떤 환경에도 타협하지 않은 노래에 대한 일종의 헌사다.
이날도 이소라는 편지와 펜을 형상화한 무대 위에서 '운 듯'을 시작으로 '난 행복해' '너무 다른 널 보면서'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별' '듄' '티어스' '트랙 11'까지 열 곡을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묵묵히 불렀다.
각 노래에 대한 몰입감을 극대화한 서사의 핍진성을 몰아붙이는 이소라의 해석력이 일품이었다. 마치 우주 속에 침전하는 듯했다. 특히 '듄' '티어스' '트랙 11'의 로킹한 밴드 사운드의 고양감은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트랙11' 막바지에 똬리를 튼 기타의 디스톡션은 마치 블랙홀 소리를 연상케 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이소라의 콘서트 무대인 만큼 그녀의 행보를 되짚어본 순간도 있었다. 1996년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1회 마지막곡으로 이소라가 불렀던 듀오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이날 다시 불렀다. 2000년대 초반 이소라가 5년 간 DJ를 맡았던 '이소라의 FM음악도시' 흔적도 영상에서 어른거렸다.
열한 번째 곡 '데이트'부터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이소라는 이 곡을 부르기 전 "조용히 있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까지 숨 막히셨죠. 하하. 가볍고 밝은 노래를 이제 불러드릴게요. '랄라라' 부분은 따라 불러주세요"라고 권하기도 했다.
이어 '랑데뷰' '해피 크리스마스' '첫사랑'까지 경쾌하고 모던한 사운드가 이어졌다. '첫사랑'을 부르고 나서야 이소라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소라입니다"라면서 제대로 인사했다. 요즘 집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이소라는 "집에서 소일하고 살았어요. 평범한 일들을 하면서 살았는데 노래를 하니까 옛날 마음이 나온다"고 웃었다. 객석의 여성 팬이 환호를 하자 "30년이 지나도 (남성 팬이 아닌) 여성 분들이 먼저 소리치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후 가수 이문세가 게스트로 깜짝 등장했다. 지난 7일부터 같은 장소에서 공연한 이번 이소라 콘서트의 첫 게스트였다. 이소라도 모르게 기획사가 초대한 게스트였다.
5년 만에 이소라를 만났다는 이문세는 그녀를 보고 "여전히 아름답다"며 웃었다. 그는 "이소라 씨는 제가 진행하는 이문세쇼에서 데뷔했어요. 제가 DJ를 맡았던 '별이 빛나는 밤에'도 (데뷔 당시 이소라가 속했던) 낯선사람들이 나왔었는데 이소라 씨만 눈에 띄었고 크게 될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한민국에도 엘라 피츠제럴드처럼 울림통이 큰 가수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돌아봤다.
이번 이소라의 공연을 지켜보면서는 "관객 분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거나 맑은 눈물을 흘리시는데 '같이 함께 살아왔구나'를 느껴서 인 거 같다"면서 "위로의 다독거림을 전해주더라고요. 서로 '안녕'하려면 역시 오래 하고 볼 일"이라고 전했다. 이소라 역시 "오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문세는 전날 결혼한 뒤 이소라 콘서트를 위해 신혼여행을 미룬 커플의 사연을 읽은 뒤 이소라와 함께 듀엣곡 '잊지 말기로 해'를 불렀다.
'트랙3'를 부를 때 밴드 멤버들이 이소라와 함께 파트를 나눠 담백하게 불렀다. 피아노 이승환, 어쿠스틱 기타 홍준호, 일렉 기타 임헌일, 드럼 이상민, 베이스 최인성 등 이소라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세션들의 연주력은 콘서트의 완성도를 높여준 일등공신이었다. 이어진 '바람이 분다'와 '봄'은 성스러울 정도로 콘서트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같은 장소에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이면 싸울 일이 없다. 이건 이소라의 말이다. 그녀는 "관객 분들이 노래하는 사람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박수 쳐주면, 노래하는 사람도 관객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래합니다. 그런 순간 순간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전했다. "잊히고 싶지 않아요. 다음에 또 공연하거나 어디 가서 보게 되면 아는 척 해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이소라는 이날 콘서트에서 평소보다 자주 웃었다. 이전 콘서트에서 골몰하며 침잠하는 예술가의 면모가 부각됐었는데 이날 공연은 좀 더 대중과 가깝게 호흡했다. 이소라는 "어제만 해도 쥐 죽은 듯 조용했는데, 오늘은 제가 너무 불을 지폈나 보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내년 데뷔 30주년을 맞은 김동률 역시 최근 콘서트에서 가장 대중적인 세트리스트를 선보였는데 아티스트에게 30주년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변곡점이 생기는 해인 듯하다.
이날 앙코르 곡은 '청혼'이었다. 보사노바 풍의 이 곡은 대중에게 노래로 평생 함께 하자는 경쾌한 프러포즈였다. 노래로 존중심을 표하는 이소라의 세계는 대중성에 방점이 찍혀도 관습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녀의 고집이 매번 독창적인 콘서트 작법을 만들어낸다. 이소라가 어떤 방법을 택하든 이렇게 그녀의 콘서트는 매번 정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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