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고 학생들 “R&D 예산 삭감 철회하라”
“미래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저희 영재학교생들 일부는 연구자의 꿈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공계열 진로를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서울과학고와 경기과학고 등 전국 8개 영재학교 학생들이 대폭 삭감된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안을 철회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영재학교 학생회들은 지난 8~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영재학교생 공동행동’(영재학교생 공동행동) 이름으로 작성된 성명문을 일제히 게시했다.
1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전국 영재학교 8곳의 학생회장들은 지난달 초부터 단체 성명문을 기획해왔다. 양승민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회장(18)은 “미래 과학자를 양성하는 대표적인 교육장소인 영재학교 학생으로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 대학교 입학 전형이 일단락된 후인 이달 초 학교마다 설문조사 등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김영민 경기과학고 학생회장(18)은 “전교생 378명 중 352명이 성명문 게시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박정원 대구과학고 학생회장(18)도 “찬성률이 90% 중후반쯤이었다”며 “전교생 투표를 했을 때 이번 사안만큼 찬성이 몰렸던 적이 없다. 그만큼 많은 친구가 우려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날 경향신문과 통화하며 대학·대학원에 진학한 선배들로부터 현장에서 예산 삭감 문제가 크게 체감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고 했다. 연구자가 꿈인 학생들은 예산 삭감 이후 고민이 깊어졌다고 했다. 고교 2학년 유태영군(17)은 “이대로 가면 연구원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굶으면서 연구를 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했다. 그는 컴퓨터 알고리즘 및 데이터 처리 분야 연구를 꿈꿔왔다고 했다. 유군은 성명문에 달린 댓글 중 “의대 가면 되지 않냐”와 같은 비아냥에 속이 상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과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며 “대부분 친구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고 했다.
영재학교 1학년 재학생 안선우양(16)은 항공우주 분야 인공위성 연구자를 지망한다. 그는 “연구자를 기르는 학교에 오고 싶었다. 영재고 학생들은 의약학 진학 포기 각서도 쓰고 오는 만큼 진로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안양은 “R&D 예산을 줄이고 연구자의 길도 불투명해지니 불안하다. 미래에 제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영재학교생 공동행동은 성명에서 “R&D 예산 삭감은 과학기술계의 전반적인 침체를 불러오며 연구자들의 이공계 기피를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전지현·최혜린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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