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이백원

한끼에 이백원 받던 밥집
한그릇 먹든 두그릇 퍼 가든 똑같이 이백원
세그릇째인 사람은 있어도 한그릇만 퍼 가는 사람은 없던,
공짜 밥은 마음 다치게 한다고 따박따박 밥값 요구하던 곳
백원짜리 동전 두개 손바닥 가운데 올리고
자랑스레 내밀던 손들이 줄을 잇던,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못 써서 그렇지 내가 열권 스무권짜리 책이라고
배부른 김에 장광설이 이어지던 식탁
하루 한끼 때우던 굴풋한 짐지게들이 문밖에 서 있던,
우거지 아니면 시래기 된장국이 끓던 스텐 양은
들통에서 솟아나는 뿌연 김 따라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 홈리스 슬리핑백이 쌓여 있던,
예수라는 사나이보다 일찍 떠난 혜성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번 밥 나르러 가던 스물한살
사장은 없고 젊은 가톨릭 수사들이 드나들던 곳
빌딩 숲 사이 언뜻 얼비치는 용산역 뒤
지금은 흔적도 없는 시장 골목
김해자(1961~)
사십년 전, 용산역 뒤 시장 골목에는 ‘한끼에 이백원’만 받던 밥집이 있었다. 한 사람이 몇 그릇을 퍼가도 ‘똑같이 이백원’만 받던 밥집, ‘공짜 밥은 마음 다치게 한다고 따박따박 밥값’을 받아 비루할지라도 존엄을 지켜주려 마음 쓰던 밥집이었다. 밥은 사람의 숨을 이어가게 하지만, 한숨이 되기도 한다. ‘삐걱대는 나무’처럼 서서 밥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 가게에서 저 가게로 짐을 실어 나르던 ‘굴풋한 짐지게’꾼과 노숙인들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슬리핑백이 쌓여 있던’ 방에서 투명 인간처럼 지워진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구겨진 잠을 잤을 것이다. 오늘도 지구의 거대한 밥상은 계속 기울어져 누군가는 굶고, 누군가는 독식으로 배가 터지도록 부르다. 나는 너가 될 수도 있었고, 너는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시차를 넘어 오늘도 나이면서 너인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동인천역에서 밥차를 기다린다. 개미들의 행렬처럼 이어지던 우리들의 밥줄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겨울.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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