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밥그릇 싸움에 법안 헛바퀴…그사이 요소 中 의존 92%로 [공급망 기본법 늑장 통과]

정재영 2023. 12. 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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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입법에 공급망 위기 심화
법안발의 1년2개월 만에 본회의 통과
제안 이유도 때아닌 ‘팬데믹’ 언급
中 의존도 증가 배경 등도 고려 안돼
현실 반영 없이 뒤늦게 처리 ‘급급’
전문가 “기본 가이드라인정도 제시
관계부처 긴밀 협조체계 구축 시급”

‘공급망 기본법이 제때 통과됐다면….’

‘공급망 기본법’(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이 지난 8일 법안 발의 1년2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업계에선 해당 법안이 제때 처리됐다면 최근 불거진 ‘제2의 요소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일 서울 한 주유소에 요소수를 1통씩만 제한해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21년 말 중국발 요소 수급 부족 사태를 계기로 논의가 시작된 법안 통과가 지금까지 지체된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공동 책임 탓이다. 공급망 컨트롤타워를 누가 관장할 것인지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밥그릇 싸움을 벌인 데다 여야 정쟁 와중에 경제 관련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렸다.
10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발의돼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급망 기본법의 제안 이유엔 ‘코로나 팬데믹’이 맨 앞에 언급됐고, 마지막 공청회는 2월에 열렸다. 2021년 말 1차 요소수 부족 사태 이후 공급망 다변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 의존도가 오히려 증가한 배경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법안이 통과된 셈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차량용 요소 중국 수입량 비중은 2021년 83.4%에서 2022년 71.7%로 줄었지만 올해 1~10월 91.8%로 다시 증가했다. 수입처 다변화 노력에도 가격이 싸고 수입 동선이 짧은 중국 의존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최근엔 화학 비료와 소화기 분말의 주원료인 인산암모늄에 대한 중국의 수출통제 문제가 불거졌다. 인산암모늄은 중국산 수입 비중이 95%가 넘는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갈륨과 게르마늄의 중국 의존도는 상반기 기준 87.6%이고, 이차전지 제조용 인조흑연(93.3%), 산화리튬·수산화리튬(82.3%), 니켈코발트망간 산화물의 리튬염(96.7%), 니켈코발트망간수산화물(96.6%) 등의 중국 의존도 역시 절대적이다.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로 제2의 요소수 대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0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 직영주유소에서 직원이 창고에 보관 중인 요소수 재고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산업부에 따르면 수입규모 1000만달러 이상 품목 중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90% 이상인 ‘절대의존품목’ 393개 가운데 중국이 216개(55%)에 달한다.
이런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공급망 기본법에는 중국 의존 품목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에 보조금 등 지원책을 제공하도록 했지만 이 법은 국회 문턱을 넘는 데에만 1년 넘게 걸렸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공급망분석센터 팀장은 “공급망 기본법에는 기본 가이드라인 정도만 제시돼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가 나올 때마다 기준을 하나씩 세분화하고 다듬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기재부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관계부처가 긴밀히 연계해 대응하는 협조체제를 시급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 연구위원은 특히 “현재 산업부 공급망센터에서 조사한 중국 등 특정국 의존 비중이 높은 1000여개의 중요 물자에 대해서 단순한 모니터링에 그치지 말고 범정부 차원에서 단기적, 중장기적인 시점을 병행해 근본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0일 서울 양천구의 한 주유소에서 한 특수차량 운전자가 요소수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국가별 산업용 요소 및 요소수 수입 단가는 중국산이 ㎏당 0.71달러로, 베트남(0.98달러)과 말레이시아(0.94달러)보다 낮았다. 요소의 가격이 많이 내려간 올해 산업용 요소 수입 단가도 중국산이 ㎏당 0.43달러로 베트남(0.47달러), 말레이시아(0.47달러)에 비해 저렴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선 기업에 요소 생산시설 구축을 주문하는데, 수익은커녕 손익분기점도 까마득하다”고 하소연했다.

기재부는 “공급망 기본법이 시행되면 각 품목을 수입하는 업체들에게 수출입은행 대출 금융 비용 등 각종 지원을 해줄 수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도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의 자립화와 다변화, 비축 등을 적극 추진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산업 공급망의 안정화를 구축하고 복원력을 강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급망 기본법 ‘공포 6개월 후 시행’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김 팀장은 “최근 인산암모늄 통제 사례처럼 중국이 수출통제를 장기화할 경우에 문제가 커진다”며 “(공급망 기본법 제정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바로 대응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법안 시행에 있어서 절차적 지연은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사 연구위원도 “공포 후 시행까지 6개월 기한을 더 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재영·김범수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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