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중대재해처벌법, 기업 말살 정책 되어서는 안된다

2023. 12. 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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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

중대 산업재해 감축이라는 정책 기조에 발맞춰 사업주 의무가 하나 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경영계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정도경영으로 수십년 국가 경제 발전을 견인해 왔건만, 하루아침에 인명사고를 방치한 범죄자로 전락할 위기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반 기업 정서로 가득 찬 현대판 마녀사냥의 막이 올랐다.

지난해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시행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에게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해 사망자가 발생하면 1년 이상 유기징역을 부과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까지 한 달여를 앞둔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추가 유예하자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이 현재 경영계와 노동계간 뜨거운 감자다. 경영계는 적극 찬성을, 노동계는 절대 반대를 각각 외치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물론 경영계 또한 재해발생률을 낮추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자는 노동계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다만,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은 범법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선적으로 법을 준수하기 위한 기업의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 모든 건설현장을 직접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실태에 대해 대한전문건설협회와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중 96.8%가 어떠한 대응조치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것이 경영계가 법 적용 유예를 필사적으로 외치는 핵심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실태 조사

다음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반드시 보완 및 개정돼야 하는 이유다. 첫째, 형평성이다. 당장은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법 적용 대상인 대기업 및 중견기업은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현실은 다르다. 출산율 저하로 노동인구 감소와 더불어 중소기업 취업기피 등으로 청년층 유입 감소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뛰어난 안전관리 역량을 갖춘 인재들은 대기업으로 눈을 돌린다.

즉, 기업 규모별·산업별 특성 등 현실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했고, 그에 따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도 불공평하다. 현장의 안전과 보건 확보는 어디까지나 예방책이지, 직접적 사고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모호성이다.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규정과, 포괄적 표현들은 마치 사업주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나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 평가의 실시'가 그러하다. 하지만,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마치 자율성을 부여하는 듯 했던 모호한 규정들이 '미흡한 조치'로 지목하기 위한 근거로 탈바꿈하는 모순을 만들어 낸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 이미 건설산업기본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영업정지, 하도급참여 제한, 과징금 등의 처벌을 규정해놨건만, 형법상 고의 범죄 행위에나 주어지는 하한형 징역까지 얹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고의성 여부를 따져 볼만한 어떤 근거조항도 없이 말이다. 물론 세상에 자기 사업체가 운영하는 현장에 고의로 사망사고를 내는 사업주가 있을 지 의문이긴 하다.

혹여나 사업주가 구속될 경우 중소기업은 하루아침에 기업 존폐 위기에, 임직원들은 실직 위기에 놓이게 된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활동의 위축은 물론, 고용시장 위축과 경제 저성장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선장이 사라진 유람선은 부선장이 이끌어 나가겠지만, 사공을 잃은 배는 방치와 침몰만이 기다릴 뿐이다. '침해의 최소성'은 고사하고 최대의 침해 결과를 낳는 그야말로 대참사다.

끝으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가 과연 안전한 일터 조성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9월 말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3분기 건설업 사망사고는 총 23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8건 줄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가 74건에서 95건으로 21건(28.4%) 늘어난 반면, 50억 미만 사업장은 169건에서 140건으로 오히려 29건(17.2%)이 줄었다. 이미 통계상으로도 처벌 수위와 중대재해발생간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건설업 사망사고 발생건수. 자료=대한전문건설협회

처벌을 과중하는 엄벌주의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높은 처벌만으로 법 위반 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면, 우리 세상에는 왜 여전히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면, 벼룩은 잡을 수 있겠지만, 초가에 살던 온 가족의 앞날은 누가 책임지는가?

중대재해처벌법, 우리도 그 앞을 내다봐야할 때다.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

〈필자〉장평건설 대표로, 지난 해 12월 제 12대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에 선출됐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사장과 한국건설산업품질연구원 이사장도 맡고 있다. 단국대 건축학부 겸임교수로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보링·그라우팅공사업 제9대 회장과 한국건설교통신기술협회 제8대~제9대 회장도 역임했다. 건설현장 부당행위 근절과 전문건설업 보호조치 일몰 연장 등 각종 제도 개선을 통해 전문건설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며, 전문건설인들의 역량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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