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엔 선수로, 2023년엔 단장으로 LG 우승 이끈 차명석 “3년간 2군 육성, 4년째부터 FA 잡아서 5년 안에 우승하겠다는 약속 지켰죠” [차 한잔 나누며]
시계를 2018년 10월로 돌려보자. 해설위원을 맡고 있던 차명석(54) LG 단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LG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직을 제의하는 전화였다. 차 단장은 고사했다. 당시 아내가 늦둥이 셋째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 그러자 “LG에서 야구했던 사람들은 모두 구본무 선대 회장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냐. LG트윈스를 제대로 좀 만들어 달라”는 말이 돌아왔다. 차 단장에게 야구 사랑이 너무나 지극했던 ‘구본무’라는 세 글자는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렇게 2018년 10월부터 LG 프런트를 이끄는 수장인 차 단장을 최근 서울 잠실야구장에 만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달려온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이에 구 회장은 “3년 안에 우승할 수 있나요?”라고 되물었고, 차 단장은 “전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팀은 3년 안에 자유계약선수(FA)를 영입해서 우승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팀 선수 구성으론 FA를 사와도 3년 안엔 힘듭니다”라 답했다. 구 회장은 “몇 년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고, 차 단장은 “5년 주십시오. 대신 첫 3년간은 FA 안 잡겠습니다. 4년째부터 우승이 가능할 전력이 되면 그때 FA를 사주십시오. 다만 올해부터 매년 가을야구는 할 수 있는 팀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차 단장은 구 회장에게 한 공언대로 취임 직후 LG의 선수층을 두텁게 만드는 데 힘썼다. 이를 위해 공부하는 젊은 코치들로 코치진을 대폭 물갈이했다. 차 단장의 이런 움직임을 전임 사령탑들인 류중일 감독과 류지현 감독도 힘을 실어줬다. 차 단장은 “구단이 추구하는 철학이나 운영 방향에 대해 강제로 공부하도록 시켰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이런 방향으로 가자고 의견도 공유하고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차 단장의 지휘 아래, 팀의 장기적인 성장이라는 철학을 공유한 코치진들은 2군 유망주들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LG의 뎁스는 깊어졌고, 매해 투타에 걸쳐 새 얼굴들을 발굴했다.
차 단장은 선수층이 두터워지자 FA 시장에도 손을 뻗었다. 2022년엔 리그 최고의 중견수비를 자랑하는 박해민을 데려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롯데로 FA이적한 포수 유강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박동원을 KIA에서 데려왔다.
차 단장도 우승의 순간에 눈물을 흘렸다. 당시 감정에 대해 묻자 차 단장은 “드디어 끝냈구나. 어떤 한 맺힘이 풀리는 것 같아 울컥했다”라면서 “시간이 좀 지나니 우승의 감격은 옅어졌다. 이제 내년 우승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즌이 끝나고 맞이하는 스토브리그의 별칭은 ‘단장의 시간’이다. 프런트의 수장으로서 내년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이 시기는 차 단장이 가장 바쁘게 보내는 시간이다. 차 단장은 “2018년 10월에 단장으로 온 이후 휴가를 한 번도 못 갔어요. 선수와 감독들은 시즌이 끝나면 쉴 시간이 있지만, 저는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이거든요. ‘이제 우승했으니 좀 편하지 않냐?’라고도 하는데, 전혀요. 늘 의심하고, 늘 불안한 게 야구단 단장이에요. 그렇게 해도 실수가 나오니까요. 단장을 맡는 한 여유롭게 지내긴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해설위원 시절 메이저리그 중계도 많이 맡았던 것도 단장직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차 단장의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메이저리그 단장이 둘 있다. 첫 번째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해 월드시리즈 2회 우승(2017년, 2022년)을 일궈낸 오늘의 휴스턴을 있게 한 제프 르나우 단장, 두 번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데이브 돔브로스키다. 차 단장은 “르나우는 ‘탱킹’을 통해 신인 드래프트 상위픽을 얻어 팀의 핵심이 될 선수들을 키워냈다. 반면 돔브로스키는 유망주를 다 팔아치워 슈퍼스타급 선수들을 데려와서 단숨에 우승권 전력을 일궈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두 단장의 기조를 적절히 배합해내 만들어낸 게 이번 LG의 우승”이라고 설명했다.
29년 만의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제 야구계의 관심은 ‘과연 LG가 왕조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쏠린다. 염경엽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이제 LG는 시작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차 단장은 “첫 번째 우승은 구단이 만들어준 전력으로 하는 겁니다. 구단의 역할이 큰 셈이죠. 두 번째 우승부터는 구단과 감독의 철학에 달려있다”라면서 “한 번 우승을 하게 되면 여기저기 균열도 생기고, 나태함도 생기거든요. 그런 것들을 최대한 나오지 않게 하는 힘이 바로 철학이다. 그 철학을 집대성할 감독님을 보좌하기 위해 저는 오늘도 열심히 일하려고 합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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