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벌家 동네에 짓다만 집터…구청은 “허가” 법원은 “무효” [법조인싸]
성북구청, 2017년 건축허가내주며 소송전
대법원, 올해 6월 건축허가 처분 무효 확정
토지 소유주 특혜·감사원 감사 방해 의혹도
사건은 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 모씨 등 3명은 이 지역의 330-308(880㎡), 330-611(650㎡) 필지를 사들인 다음 성북구청으로부터 2017년 말 건축허가 신청을 받아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지하 2~4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 1~2개동을 지을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땅과 접하고 있는 변종하미술관 부지의 소유자인 석은미술문화재단이 위법하게 이뤄진 건축허가를 취소해달라며 성북구청장(당시 구청장 김영배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소송에서 성북구청과 이모 씨 등 3명은 완패했습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성북동 필지 두 곳에 대한 건축허가처분 등 무효 확인 소송에서 성북구청의 건축허가를 무효로 확인한 원심을 지난 6월 확정했습니다.
문제가 된 땅들은 1972년 준공된 주택단지인 ‘대교단지’의 일부입니다. 당시 대교단지는 전체 9만514평(29만9219㎡) 가운데 1만6133평(5만3332㎡)은 대지로 형질 변경이 이뤄졌고 나머지 6만7006평(22만1507㎡)은 임야로 존치됐습니다. 문제의 필지들은 임야 존치지구에 포함됐고 이후에도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로 형질 변경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목(토지의 사용 목적)만 대지로 돼 있었습니다. 국토계획법 제56조에 따르면 토지의 형질 변경을 하려면 개발행위에 대해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서울특별시 도시계획 조례에 따르면 형질 변경은 ‘ha당 평균 입목축적(목재 양)’ ‘평균경사도’ 등에 대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요.
문제는 성북구청이 건축허가를 내준 땅들은 경사가 28도로 매우 가팔랐고 입목본수도(토지 내 나무의 비율) 역시 140%에 이르러 기준에 명백히 어긋났다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토지에 집을 짓기 위한 형질 변경이 불가능한 땅이었다는 의미입니다. 형질 변경이 이뤄지지 않아 건축 허가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문제의 토지들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나무가 밀집해 있어 개발이 불가한 땅’이니 건축 허가를 내줄 수 없었던 셈입니다. 성북구청이 무려 50년 동안 건축허가를 반려해온 이유입니다.
실제로 이 모씨 등이 건축허가를 받아내기 전에는 성북구청이 이 땅에 대한 개발 시도를 저지했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성북구청은 2010년 10월 이미 330-308과 330-611에 대한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한 바 있습니다. 건축허가를 신청한 이들은 이 결정을 두고 지난 2013년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이 사건 토지는 지목은 ‘대’이지만 현황이 ‘임야’인 상태로 국토계획법 제 56조에 따른 개발행위허가(토지 형질 변경) 행위가 필요하나 서울특별시의 조례상 토지 형질 변경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결문에 명시했습니다.
이 사건의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제10행정부(성수제 부장판사)는 “(이 모씨가 제출한 건축허가 신청서는) ‘개발행위허가’ 란은 빈칸으로 돼 있고 따로 토지의 형질 변경 등 개발행위 허가를 위한 신청서나 관련 자료가 제출된 바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이 모씨가) 성북구청에 제출한 ‘건축허가조사 및 검사조서’에 의하면 ‘현장조사’ 항목 중 ‘대지조성의 필요성’, ‘형질변경의 필요성’은 모두 불필요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며 “‘인접대지현황’ 항목에서는 ‘고저차’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고 ‘대지와 도로의 고저차’ 부분도 누락했다”고 밝혔습니다. 건축허가에 불리한 사실은 모두 누락된 셈입니다.
문제는 법이 정한 허가 조건이 빠진 데다 잘못된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된 이 신청서를 성북구청이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성북구청이 건축허가 업무를 과연 적법하게 수행했는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현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모씨 등의) 건축허가 신청은 애당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경우였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성북구청은 사실상 이 사건 토지를 대지로 형질 변경하기 위한 허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고 그에 관한 별도의 허가가 없었던 바, 이는 중대한 법령 위반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허가 신청인의 일부는 관련 행정업무에 내부자로 관여한 바도 있어 제 3자가 볼 때 자칫 특혜라는 의혹을 받을 여지가 상당하다”며 “성북구청의 처분은 자의의 금지, 예측가능성 보장, 법적안정성 확보 등을 핵심 요소로 하는 법치 행정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치로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는 중대한 하자 있는 행위다”고 비판했습니다.
성북구 건축위원을 지냈던 건축사 A씨는 “도시계획위원과 건축위원을 겸하는 것은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것이어서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며 “도시계획위원·건축위원 인사에 구청장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이 사건 건축허가는 위법성이 클 뿐 아니라 과거 행정소송 판결을 뒤집은 것이므로 구청장 허가가 없이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재판 진행 과정에서 정반대 사실이 드러납니다. 성북구청은 이 토지들이 임야 존치지구에 속하기 때문에 개발행위 허가를 반려해왔다는 자료를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성북구청은 2013년 반려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당시 토지 소유주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자신들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걸 법정에서 주장했습니다. 성북구청으로선 갑작스레 ‘태세 전환’을 한 사실이 들통난 셈입니다.
이 사건에서 석은미술문화재단을 대리한 송수한 변호사는 “판결문과 이 사건 계획안 등 해당 자료를 모두 보유하고 있음에도 거짓 보고를 한 것은 의도적인 기망행위”라며 “사건 처분의 효력과 개발 행위를 강행하기 위해 감사원의 감사를 왜곡·기만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성북구청이 해당 건축허가를 냈던 당시 구청장이었던 김영배 민주당 의원 측은 “(건축허가 처분을 무효 확인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해당 건축 허가에 구청장으로 관여한 바 없으며, 법령에 따라 팀장 전결로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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