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는 어떻게 7억달러의 사나이가 됐을까
#A는 왼손 타자다. 2023시즌 599타석에 서서 타율 0.304(497타수 151안타) 44홈런 95타점을 기록했다. OPS(출루율+장타율)는 1.066에 이른다. 도루도 20개를 성공시켰다. 홈런왕은 그의 몫이었다.
#B는 오른손 투수다. 2022시즌 성적(15승9패 평균자책점 2.33)에는 못 미쳤으나 10승5패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했다. 132이닝을 던지면서 삼진은 167개를 잡아냈다. 그의 속구 최고 구속은 시속 165㎞에 이른다
눈치챘는가. 왼손으로 ‘잘 치는’ A와 오른손으로 ‘잘 던지는’ B는 동일인물이다. 오타니 쇼헤이. 그는 현대 야구의 ‘게임 체인저’다.
오타니 야구의 시작은 주말 리틀야구부터였다. 미쓰비시 사회인야구팀에서 뛰다가 부상으로 은퇴한 뒤 공장 노동자로 일했던 아버지(오타니 도루)는 일을 쉴 때는 아들들(쇼헤이와 그의 형 류타)과 캐치볼 하는 것을 즐겼다.
오타니는 8살 때부터 리틀야구에서 뛰었고 야구를 하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다. 지역(이와테현 오슈시) 특성상 요미우리 자이언츠 중계만 볼 수 있던 탓에 요미우리 외야수 마쓰이 히데키를 동경했다. 어린 시절만 해도 오타니는 “야구는 그저 취미일 뿐”이라고만 생각했고 “나보다 잘하는 야구선수가 더 많다”라고 느꼈다.
그러나 하나마키히가시고로 진학한 이후 그의 야구 인생은 바뀌었다. 체격(키 193㎝)이 커지면서 공 끝에 힘이 실렸다. 하루에 밥 12공기를 챙겨 먹던 시기였다. 16살에 시속 153㎞의 공을 던졌고 이듬해에는 시속 159㎞가 스피드건에 찍혔다.
햄스트링 부상 등으로 투구 폼이 흐트러지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의 구속은 미국 구단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다저스를 비롯해 텍사스 레인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이 그의 영입에 눈독을 들였다. 오타니 또한 “미국에서 뛰고 싶다”면서 일본 구단들한테 자신을 신인드래프트 때 지명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신인드래프트 대상 고졸 선수가 그를 지명한 일본 구단과 계약하지 않고 미국 야구로 진출할 경우 향후 일본 야구로 돌아올 때 3년간 출장이 제한(대졸은 2년)된다.
그러나 닛폰햄이 신인지명 1라운드 때 12개 팀 중 유일하게 오타니를 선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일본은 12개 구단이 동시에 1순위 선수를 적어내며 복수의 구단이 한 선수를 지명했을 때는 추첨을 한다.) 야마다 마사오 당시 닛폰햄 단장은 “드래프트는 계약할 수 있는 선수를 뽑는 게 아니라 최고의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스카우트 방식”이라고 오타니 지명 이유를 밝혔다.
미국행 의지가 컸던 오타니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 야구계 안팎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닛폰햄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국 진출 일본 선수들의 유형을 분석한 자료와 함께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로드맵까지 보여줬다.
니혼햄이 준비한 자료 중에는 버스를 이용한 긴 원정길, 관중 없는 텅 빈 구장, 형편없는 숙소 등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디오도 포함돼 있었다. 가장 매력적인 제안은 ‘투타 겸업’이었다. 아주 높은 성공 확률로 메이저리그 직행을 원한 오타니의 마음은 움직였다.
분업화·전문화된 현대 야구에서 오타니처럼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프로 선수는 없다. 선발투수가 4~5일의 휴식 없이 불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조차 ‘혹사’라며 입길에 오르는 시대다. 투타 겸업은 부상 확률도 높아 투자적 가치로 봐도 위험하다. 지명타자제도가 없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서지만 투타 겸업은 아니다.
오랜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도 투타 겸업으로 성공한 선수는 드물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조지 허먼 루스)가 가장 많이 회자되는데 이 또한 191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루스는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1916년 23승12패 평균자책점 2.75, 1917년 24승13패 평균자책점 2.01의 성적을 냈다. 1917년에는 타자로도 100타석 이상 섰으나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뒤에는 홈런 타자로 두각을 나타내며 1921년 59홈런, 1927년 60홈런을 때려냈다. 양키스 때는 투수로 단 5차례만 마운드에 올랐다. 루스의 22시즌 통산 기록은 ‘투수’로는 163경기 등판(선발 147경기), 94승46패 평균자책점 2.28, ‘타자’로는 2503경기 출전, 타율 0.342, 714홈런 2214타점이다.
‘투수 오타니’의 최대 장점은 빠른 공이다. 오타니는 2016년 10월 열린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해 시속 165㎞의 공을 던졌다. 이는 2021년 요미우리 티야고 비에이라가 시속 166㎞를 던질 때까지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구속이었다.
오타니의 빠른 공은 속구처럼 날아오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과 곁들여지며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2015년 열린 프리미어12 때 오타니를 지켜봤던 김인식 당시 대표팀 감독은 “오타니는 공도 빠르고 포크볼도 좋았다. 슬라이더, 커브까지 간간이 던졌는데 90년대 이후 일본 최고의 투수가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타자 오타니’의 매력은 장타력이다. 닛폰햄 스카우터 오후치 다카시는 <블리처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오타니가 3학년 때 봄 고시엔에서 고교 맞수 후지나미 신타로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는데 그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홈런을 여태 본 적이 없다”며 “긴 팔 때문에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점이 있었으나 타격 메커니즘은 그때부터 완벽했다”라고 평했다.
발 또한 느리지 않다. 메이저리그 한 스카우터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I)와 인터뷰에서 “왼쪽 타자 박스에서 1루까지 뛰어가는 데 3.89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구단이나 감독의 배려도 있으나 투타 겸업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오타니의 노력이다. 던지고 치는 훈련을 병행해야 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2배는 더 훈련해야 한다. 그래도 오타니는 지친 기색이 없다. “전혀 힘들지 않다”라고 말한다.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때 오타니는 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식사, 체력 훈련 등을 구단 시설에서 소화했다. 술·담배도 일체 하지 않았다. 취미 생활은 스포츠 관련 영화를 보거나 훈련 방법이나 식이요법에 관련한 책을 읽는 것. 반신욕과 낮잠도 좋아하지만 클럽 출입은 전혀 하지 않는 ‘모범 생활 사나이’이다. 쓰레기는 남이 버린 운이라며 더그아웃 안팎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다.
고교 1학년 때 세운 만다라트 계획표(일본의 한 디자이너가 개발한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대로 오타니는 현재 시속 160㎞의 공을 던지며 포크볼 또한 완성했다. 제구와 구위를 가다듬고 몸 만들기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2017년 12월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오타니는 만다라트 계획표 외에 따로 세운 야구 계획표가 있는데 계획표대로 그는 세계야구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나가 우승을 차지(2023년)하고 최우수선수(MVP)에도 뽑혔다. 리그 MVP는 그의 계획처럼 27살(2021년)에 차지했다. 오타니는 2021년에 이어 MLB 역사상 처음으로 ‘10승-40홈런’을 기록한 2023년에도 아메리칸리그 MVP에 선정됐다. 그는 MLB 역사상 만장일치로 두 번이나 MVP를 받은 최초의 선수다.
그의 계획표에는 월드시리즈 우승도 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6년 동안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반면, 그가 10일(한국시각) 10년 7억달러(9240억원)에 계약한 엘에이(LA) 다저스는 지난 11시즌 동안 10차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6시즌 중 5시즌 동안 100승을 돌파했고, 2020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오타니의 오랜 꿈을 이뤄줄 수 있는 구단이 다저스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오타니는 현대 야구에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고, 그 길에서 성공을 거두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리고 북미 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7억달러’ 몸값을 만들어냈다. 오타니 말로 글을 갈무리한다.
“치고 던지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야구다. 한가지만 하고 다른 하나를 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부자연스럽다.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투타 겸업)을 하는 것이 재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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