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공짜는 없습니다. 나눠야죠"…용인 '빵 할아버지' 모질상씨

최해민 입력 2023. 12. 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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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만큼 살게 해 준 분들께 빚 갚는 심정"…남모를 기부도 부지기수
좌판 생선장사 아들서 벽돌공장 사장까지…성실함으로 전통시장서 자수성가

(용인=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나눔이란 쓰고 남을 때 하는 게 아니에요. 있을 때 가진 것을 나누는 것. 그게 참된 나눔이죠."

'빵 할아버지' 모질상씨가 받은 표창들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빵을 사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나눠주는 선행을 실천해 용인 '빵 할아버지'로 불리는 모질상(75) 씨는 나눔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70대 중반. 이젠 도움을 주기보단 받아야 할 고령의 나이임에도 모씨는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을 자랑하며 "아직 남을 도울 힘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생선 장사로 시작해 벽돌공장 사장까지 지내고 50대 초반에 은퇴한 그는 지금은 집 앞 텃밭에서 고구마를 키워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남모르게 기부를 이어가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빵 할아버지' 모질상씨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어릴 적 모씨네 집은 가난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용인중앙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생선을 팔았다.

그 또한 초등학교 4학년쯤 됐을 무렵부터 배달을 하고, 외상 장부를 기록하는 일을 맡아 시장에서 아버지 일을 도왔다.

아버지는 좌판으로 수십 년간 성실하게 일한 끝에 중앙시장 내에 상점 하나를 갖게 됐다.

좌판 운영 때보단 나아졌지만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다 보니 모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해에 바로 입대했다.

1970년 초 제대 직후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 그는 본격적으로 어물 장사를 시작했다.

천성이 성실한 데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그는 중앙시장에서도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꼽힌다.

모씨는 "어물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다가 중앙시장 근처에 명지대학교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당구장을 개업했다"며 "이후엔 정부에서 일산 신도시를 만든다는 뉴스를 접하고 벽돌 수요가 커질 것을 예상해 근처에서 벽돌공장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하면서도 항상 가만있지 못해 부지런히 움직였다"며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형편은 꽤 괜찮아졌다"고 덧붙였다.

2017년 용인시 중앙동에 고구마 기부할 당시 모습 [모질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 다른 건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그가 봉사와 나눔을 시작한 것은 1997년 로터리 클럽에 입회하면서다.

로터리 회원으로 주변의 이웃들을 돌보기 시작한 그는 고향이자, 당시 거주지인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나눔을 실천해왔다.

모씨는 "로터리 활동을 하면서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기 시작했다"며 "남이 몰라줘도 내가 사회에서 얻은 것을 주변에 돌려준다는 봉사의 참 의미를 깨닫고는 남을 돕는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남모르는 기부는 물론이고, 봉사할 일이 있는 현장에는 솔선수범해 나선 모씨는 주민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중앙동 사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나눔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가 회장일 적 회원은 수십명에서 300명으로 늘었고, 모두 월 1만원씩 기부해 마련한 기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중앙동 사랑회는 2010년 이웃사랑 실천 모범단체로 선정돼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모씨는 회장직을 내려놓은 뒤엔 홀로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빵 할아버지'의 선행이 시작됐다.

모씨는 거동이 불편한 지역 어르신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간식거리를 사다 드리기로 했다.

보름에 한 번씩 어르신 한분당 빵 7개씩을 사서 60명에게 나눠줬다.

스쿠터 한대에 빵을 가득 싣고 직접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면서 나눠주다보니 '빵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빵 나눔 선행은 예상지 못한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다.

집집마다 방문해 빵을 전해드려야 하는 데 대면 접촉이 금지되면서 10년간 이어오던 나눔 활동을 못하게 된 것이다.

모씨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생선 장사로 시작해 동네에서 당구장, 벽돌공장을 운영하면서 이렇게까지 살게 된 것은 모두 이웃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나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을 돕는 일인데 주위에서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직접 키운 고구마를 수확 철마다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등 남모르는 기부와 선행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다.

2017년에는 칠순을 맞아 세 아들이 준 2천만원을 용인시에 기부했고, 지난달에는 노인들이 거주하는 이동읍 한 경로당에 75인치 TV를 사서 기부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선행 중 일부는 동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나 도움받은 이웃을 통해 알려졌지만, 대부분은 숨은 선행으로 남았다.

알려진 선행만으로도 모씨는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용인시장, 로터리 클럽, 각종 시민사회단체 등으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표창을 받았다.

모씨는 "지금 내가 남을 돕는 것은 어찌 보면 나를 이만큼 살게 해 준 분들에게 '빚'을 갚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나눔을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운동으로 체력 관리하는 모질상씨 [모질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goal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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