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무덤에서 시인은 접시를 깬다 [여여한 독서]

김이경 2023. 12. 10.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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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지음 오수연 옮김
강 펴냄
ⓒ한성원 그림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시집이 드디어 번역돼 나왔다. 파블로 네루다의 스승이자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로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정작 그의 시는 알지 못했다. 10여 년 전 무너진 광산에서 69일 만에 구조된 칠레의 광부들이 그 캄캄한 시간 동안 미스트랄의 시를 외우며 버텼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시이기에 절망을 이길 힘이 됐을까? 그의 시선집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이루카 옮김, 아티초크)가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 읽었다. 담백한 일상어로 쓴 시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몇 편은 동시 같기도 하다. 한데 이상하다. 단순해 보이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 소박한 시어들에 깃든 깊은 사랑과 근심이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우리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만/ 최악의 죄는 생명의 씨앗을 방치하고 아이를 버리는 것입니다./ (…) 바로 오늘, 아이들의 뼈가 자라고/ 피가 만들어지고/ 감각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내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

버림받은 아이들, 전쟁고아들을 뜨겁게 보듬었던 시인이 쓴 시에 가슴이 출렁한다. 이 순간에도 팔레스타인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수천 명이 떠오른다. 병원과 학교에까지 공습을 퍼붓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가자지구는 10분에 한 명씩 어린이가 죽는 ‘아이들의 무덤’이 되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가자 침공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유대인 역사학자 노먼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력”에 절망하면서도, 더 이상 세계인이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으리란 사실에서 희망을 보았다(〈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 서해문집).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오늘, 세계 곳곳에서 커지는 규탄과 호소에도 이스라엘과 동맹국 미국은 아랑곳 않으니 더 무슨 희망을 말하랴.

아니, 멀리서 바라보며 희망이니 절망을 운운하는 건 부질없다. 지금은 그 안에서, 벽으로 둘러친 ‘세계 최대의 감옥’에서 총알받이가 된 이들, 그러고도 학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오명을 써야 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한데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분노와 원망, 복수와 피의 맹세 외에 무슨 말이 가능할까.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이 쓸모를 의심당하는 곳에서 시인은 “접시를 깬다”. 하루아침에 이방의 제국에게 제 나라를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다만 당신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접시를 깨는 거다. 접시를 깨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일들이 있다”(‘접시를 깨는 이유’에서)라고 썼다. 그는 바그다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 날짜가 이틀 늦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하고 25년간 난민으로 떠돌아야 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자들은 설명의 책임을 지지 않고 외려 당한 이들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해야 하는 언어도단. 말로는 말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떨리는 손으로 접시를 깨는 것뿐.

연약함이 강점이다

이것은 절망의 몸부림이다. 하나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제 목소리를 내려는 안간힘은 시가 되고, 시는 “절망에 날개를 달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 그래서일까,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집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를 읽다 보면 자꾸 하늘을 보게 된다. 시인은 “말은 소용없”다고, “내 삽질이 모래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적 없다”(‘사제’)라고 회의하면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왜? “대규모의, 구제받지 못한, 벌벌 떠는” 형제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 영혼들의 집이 되어주기 위해. 싸우고 죽이고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죽어서라도 편히 쉬게 하려고 그는 시를 쓴다.

그럼에도 그는 시에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으며 “연약함이 시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노자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혜안이다. 연약함이 어찌 시의 강점이기만 할까? 인간은 연약하게 태어나 연약해져서 스러지는 존재, 연약함이야말로 사람을 사람이게 한다.

시인이 분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당시 경험을 쓴 ‘연꽃 먹는 사람들’에서 젊은 학승과 벌인 치열한 토론을 전한다. 학승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폭력을 쓰면 안 되며 빛과 어둠 모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침략자와 저항자, 어느 편도 들 수 없다는 학승에게 그는 항변한다. “우리는 빛을 위해 싸워야만 하고 빛을 찬양해야만 합니다.”

그의 시는 악을 미워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자의 분노와 좌절, 슬픔의 기록이다. 하지만 분노는 수면 저 아래에 있다. 그는 말한다. “내 시가 바닷속에서 폭발해서 수면에는 단지 거품만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그 거품을 보고 독자들은 저 깊은 데에서 큰 폭발이 있었음을 알아챌 겁니다. 좋은 시는 독자들 앞에서 폭발하지 않습니다.”

무함마드의 아름답고 처절한 시는 수면에 이는 거품을 통해 저 깊은 물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폭발하는 시”다. 희망을 말하지 않음에도 절망을 견디게 하는 시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숱한 죽음을 겪으면서도 증오에 붙들리지 않고 빛과 어둠 사이에서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그의 시를 단순한 저항시를 넘어선 사랑의 언어로 우뚝 서게 한다.

죽음의 땅에서 이 언어를 지키려면 어찌해야 할까.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답했다. “유대인들이 테러를 비롯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1947년에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김이경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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