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방위·정전협정 관리 70년째 헌신… 유사시 ‘든든한 방패’ [심층기획-‘남침 억제 보루’ 유엔군사령부]
전투파병국 14개국·의료지원국 3개국
美 주도 다국적군 사령부 형태로 구성
“한반도 전쟁 나면 재참전” 결의 재확인
文정부선 ‘견제대상’으로 봐 물밑 갈등
尹은 “대한민국 방위 강력한 힘” 강조
韓·유엔사 국방장관 회의 정례화 방침
신규 회원국 유치 등 ‘역할 강화’ 모색
북한이 지난달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 병력을 재무장한 것과 관련해 유엔사가 지난 1일 밝힌 입장은 유엔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드러낸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군사조직인 유엔사는 6·25전쟁 발발 한 달 뒤인 1950년 7월24일 창설 이래 한국 방위와 정전협정 체제 관리라는 두 가지 임무를 70년간 수행해왔다. 정부는 미국 등 유엔사 회원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유엔사는 “족보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합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유엔사는 법적 지위를 지닌 ‘뼈대 있는’ 조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든 유엔의 보조기관이자 6·25전쟁을 수행한 조직이다. 1953년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자도 유엔군사령관이다. 오늘날 정전협정의 준수 및 집행을 맡고 있는 근거다.
유엔사는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7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제1511호, 같은 해 7월7일의 안보리 결의 제1588호에 따라 창설됐다. 결의안에 근거해 만들어진 유엔사는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 사령부의 형태로 구성됐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넘겨받은 유엔사는 한국군과 유엔군을 나란히 지휘하며 전쟁을 수행했다. 1953년 7월27일 마크 클라크 당시 사령관이 북한, 중공과 함께 정전협정 당사자로 서명하면서 정전협정의 주체이자 이행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유엔사가 행사하던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로 넘어갔다. 이후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이양됐다.
전력제공국의 병력·장비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통로는 일본에 소재한 7곳의 주일미군 기지다. 이들을 흔히 ‘유엔사 후방기지’라고 부른다. 원래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사가 1957년 서울로 이전한 뒤에도 이 후방기지는 여전히 가동 중이다. 전시에는 유엔사의 작전을 지원하면서 유엔사 회원국의 기지 사용과 병력·장비의 한반도 전개 등을 돕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그 역할이 중요하다.
7개 후방기지는 일본 본토에 있는 요코다 공군기지, 캠프 자마 육군기지, 요코스카 해군기지, 사세보 해군기지, 오키나와의 가데나 공군기지, 후텐마 해병 항공기지, 화이트비치 해군기지다. 1954년 2월 유엔사와 일본이 체결한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 7함대 거점으로 핵추진 항공모함이 머물고 있다. 요코스카에서 출항하는 함정은 48시간이면 한반도에 도착한다. 요코다 공군기지에는 C-130 등 수송기가 배치돼 한반도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보내고 미국 민간인들을 철수시킨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 제재가 한층 강화하면서 영국, 캐나다 등이 함정과 해상초계기를 한반도 일대로 파견해 북한의 불법 선박 환적 활동을 감시하는데, 이들 함정과 항공기가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도 유엔사 후방기지다. 북한이 유엔사에 대해 “미국 주도의 다국적 전쟁 도구”라고 비난하는 것도 유엔사 후방기지가 제공하는 증원전력 전개 능력 등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유엔사를 문재인정부는 ‘견제’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2019년 7월 6·25전쟁 의료지원국인 독일군 연락장교의 유엔사 파견이 추진됐지만 정부 반대로 무산된 것이 대표적이다. 한·미동맹을 감안해 공식적으로는 이견 노출이 없었으나, 전임 정부와 유엔사 및 주한미군사령부 간에는 물밑 갈등이 지속됐다. 미국을 제외하면 참여 의미가 유명무실해진 유엔사를 보완하고자 2014년부터 추진된 ‘유엔사 재활성화’에 대한 전임 정부의 불신 때문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런 국면은 지난해 윤석열정부 출범 후 크게 바뀌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10일 폴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 등 유엔사의 주요 직위자들을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유엔사는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즉각 우리 우방군 전력을 통합해 한미연합사령부에 제공하는 등 대한민국을 방위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강조했다.
유엔사의 역할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지난달 14일 서울에서 열린 제1회 한국·유엔사 국방장관 회의는 유엔사의 변화를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유엔사 회원국들은 회의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유사시 공동대응 원칙을 재확인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1953년 전투병력 파병 16개국이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국에 또다시 전쟁이 발생하면 재참전하겠다’고 결의했다”며 “회원국이 그 약속을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한·유엔사 국방장관 회의를 정례화한다는 방침이다.
군 당국은 향후 유엔사 회원국과의 다양한 연합훈련을 통해 전시 임무 수행 능력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을지 자유의 방패’(UFS)나 연합상륙훈련 등 한·미가 진행하는 대규모 훈련에 다른 회원국들이 참가하는 등의 형태가 거론된다.
한국이 직접 유엔사 회원국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한반도 유사시 한국은 유엔사를 통해 우방국의 지원을 받는 입장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 측은 신규 회원국 가입 시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엔사 참모부에 장성급을 포함한 한국군 장교가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보직을 협의 중”이라며 “법적 지위 보장 등 구체적 부분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이뤄진 후에도 유엔사의 역할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군 관계자는 “유엔사의 정전협정 관리와 한반도 유사시 전력 제공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과 유엔사의 협력이 실효를 거두려면 유엔사 회원국들의 역할과 지원 범위가 실체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클린트 워크 한미경제연구소(KEI) 연구원과 손한별 국방대 교수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1일(현지시간) 기고한 글에서 “실질적 군사협력을 위해 유엔사 회원국들의 군사적 기여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며 “유엔사는 병력 제공을 위한 제도적 틀을 개발할 필요가 있으며, 회원국 역량에 따라 임무가 할당되면 정부 차원에서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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