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HMM···2900억 추가 배당허용 논란[김영필의 SIGNAL]
HMM(011200)의 새 주인을 가를 우선 협상대상자 선정 시점이 가까워졌다.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산은과 금융위원회는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로 또 다른 매각 주체인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운업 경쟁력을 고려한 추가 안전판을 찾고 있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발표를 하려던 산은의 계획이 틀어졌다. 늦어도 지난 달 말에는 우협을 선정하려고 했지만 시계는 벌써 12월 10일을 향해 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팬오션·JKL파트너스를 앞세운 하림그룹이 매각 측이 제시한 최저 입찰 가격인 예정가격을 넘은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반면 동원로엑스(동원그룹)는 예가보다 낮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하림 측이 예가를 넘겼기 때문에 우협 선정에 유력한 것이 사실이다(본지 12월 6일 [단독] 가격 더 쓴 하림···HMM ‘조건부 우협’ 검토).
하지만 투자은행(IB) 업계 안팎에서 이번 매각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논리를 중시하는 산은의 입장과 산업논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해진공의 입장, 그리고 현재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 짚어본다.
산은은 기본적으로 빠른 매각을 원한다. 아이러니하지만 해당 기업과 산업을 위해서다. 산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업이 은행 아래에서 관리를 받게 되면 제대로 된 미래 투자와 영업이 어렵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은행 관리에서 졸업하게 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대표적이다. 2000년 산은에 넘어간 대우조선은 20여 년 간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산은 아래 있었다. 기회는 있었다. 한화가 2008년 대우조선을 약 6조3000억 원에 인수하려고 했다. 우협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결국 계약이 깨졌다.
산은은 나쁠 게 없었다. 산은 퇴직자들이 대우조선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를 포함해 낙하산으로 내려갔고 경기가 좋을 때는 짭짤한 배당도 챙겼다. 주인 없는 회사다 보니 2015년에는 분식회계 사건이 터졌다. 2008년 6조3000억 원에 달했던 몸값이 지난해 한화로 다시 넘어갈 때 2조 원가량으로 쪼그라들었다. 헐값 매각 논란이 일 정도였다.
그동안 정부가 대우조선에 투입한 공적자금만 7조 원이 넘는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신규자금이 4조 2000억 원, 크레디트라인이 2조 9000억 원이 제공됐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의 회수는 불투명하다. 제2의 대우조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현시점에서 산은이 HMM 매각을 서두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재계의 시각도 비슷하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산은 밑에 오래 있으면서 제대로 된 기업을 보지 못했다”며 “HMM도 산은 관리 아래 더 오래 있으면 회사가 망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산은이 아시아나 문제를 빨리 매듭지으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에 HMM 매각에 실패하면 최소한 수년 간 더 산은과 해진공 관리 체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경기 둔화에 내년 HMM이 영업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은 가운데 주력인 컨테이너 운임도 하락세다. 컨테이너 운임 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9일 현재 1032.21로 전주보다 21.4포인트 상승했지만 5000을 넘었던 지난해 초와 비교하면 5분의1 수준이다.
예가를 넘긴 기업이 있는데 굳이 안 팔 이유가 없다는 게 산은의 논리기도 하다. 되레 매각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HMM이 산은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산은의 9월 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3.75%로 전분기(14.11%) 대비 0.36%포인트(p) 떨어졌다. 이는 보유하고 있는 HMM 주가 하락 탓이 컸다. 산은에 따르면 HMM 주가가 1000원 떨어질 경우 산업은행 BIS 비율이 0.07%p 내려간다. BIS 비율 하락은 대출 여력 감소와 증자 필요성을 키우는 만큼 산은 입장에서는 HMM 지분을 빨리 털어내야 할 요인이 된다.
그러나 HMM은 국적 선사다. 금융논리를 우선한 구조조정에 국내 1위, 세계 7위 컨테이너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한국 경제는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한진해운이 2016년 8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해운 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됐고 전 세계 항만에서 한진해운 선박을 억류하거나 화물 하역작업을 거부하는 물류대란이 벌어졌다.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LA항 터미널 지분 같은 핵심 자산이 헐값에 팔려나갔다. 준비 없는, 해운 산업에 무지했던 구조조정의 대표적 실패 사례다. 해운업계가 HMM 매각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우협 선정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하림그룹의 경우 매각 측에 △HMM 자사주 매입 허용 △JKL파트너스 보유 지분 5년 내 매각 허용 △산은·한국해양진흥공사 사외이사 지명 불가 △경영 관련 사전 협의 미수용 △잔여 영구채 전환 3년 후로 연기 등을 제시했다.
이중 재계에서 문제 삼는 것은 잔여 영구채 전환 연기 부분이다. 당초 매각 측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잔여 영구채 1조 6800억 원어치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전제 아래 총 지분의 38.9%를 판다고 공고를 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영구채 전환을 미루면 HMM 인수자의 지분은 3년 간 57.9%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둘 사이의 차이는 매우 크다. 매년 배당 한도를 5000억 원이라고 보면 지분 38.9%는 배당액이 1945억 원이지만 57.9%는 2895억 원으로 올라간다. 매년 950억 원씩, 3년이면 2850억 원을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당 조건 변경은 거꾸로 산은이 하림 측에 2850억 원의 인수 대금을 깎아주겠다는 의미와 다름없다”고 했다.
영구채 전환이 늦어지면 하림 측은 3년 간 정부 쪽 지분 없이 HMM의 경영을 좌우할 수 있다. 추가 전환이 없으면 이 기간 동안 산은과 해진공 지분이 ‘0’가 되기 때문이다. 지분이 제로이니 정부 측 사외이사를 받지 않겠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 허용 요청도 큰 틀에서 노림수는 비슷하다.
하림도 억울한 것이 적지 않다. 매각 측이 자신들이 제시한 조건을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닌데 과도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하림 측은 “산은과 해진공이 우리가 얘기한 것들을 다 받아줄 것이냐. 아니지 않느냐”며 “주식 매매계약 날인 전까지 양측이 계속 협상을 하는 것은 모든 인수합병 과정에서 밟게 되는 정상적인 절차”라고 설명했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서도 이미 승패가 난 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렇다고 예가보다 낮게 쓴 것으로 보이는 동원 쪽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인수조건에 대한 협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제 와서 뒤집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HMM 매각에 있어서는 해운업의 중장기적인 발전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도 물러설 수 없는 핵심 요인이라는 얘기가 힘을 얻고 있다. 적절한 후보자가 없다면 유찰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IB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HMM 매각을 계기로 산은 주도의 ‘밀실 구조조정’ 방식을 바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부는 매각에 따른 책임을 질까 뒷짐을 진 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고 산은이 앞장 서 칼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기업 구조조정은 비공식 거시경제 회의인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결정됐다. 그러나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이 “2015년의 대우조선해양 지원 결정은 서별관 회의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졌다”고 폭로(?)하면서 서별관 회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에는 산엽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2017년 12월 첫 열린 산경장에서는 금융논리뿐만 아니라 산업논리도 중시하겠다는 방향성이 제시됐다.
정부는 지난해 대우조선의 한화그룹 매각을 전후로 두 차례 산경장을 개최한 바 있다. 하지만 HMM과 관련한 산경장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STX와 성동조선 처리 건도 산경장에서 논의됐다. 산은 일각에서도 HMM 매각과 관련해 산경장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묻혔다. 산경장은 우협 과정은 건너 뛰고 잘해야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시점에 열릴까 말까 한 분위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 이후 실무 공무원들에게도 책임을 묻는 일이 많아지면서 담당 부처에서는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지 않으려는 분위기”라며 “산은에만 맡기다 보니 과거보다 매각이 더 밀실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HMM만 해도 산은은 비밀 유지가 필요한 사안 외에 기초적인 매각 절차나 방식, 주요 내용 등에 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기업을 매각하면서 제대로 된 검증과 견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과거 구조조정과 차이가 크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산은이 7월 내놓은 HMM 매각 공고는 입찰에 들어올 수 있는 대상자에 대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 기타 관계 법령 등에 따른 입찰 참가자격을 갖춘 자로만 돼 있다. 추가적인 설명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매각 과정에서 어떤 법과 조항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기 어렵다.
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규정돼 있는 게 없어 구멍이 뚫려 있는 부분이 많다”며 “법무법인 의견을 듣겠지만 매각 측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HMM 본입찰 마감날 예가와 입찰 가격 추정치가 외부로 흘러나가 논란이 됐는데 이는 산은과 매각주관사인 삼성증권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 수 있는 항목”이라며 “전반적으로 정부가 뒤로 빠져 있고 금융기관만 앞세우는 지금의 구조조정이 맞는지 되짚어 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영필의 SIGNAL’은 서울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 시그널(SIGNAL)을 통해 제공됩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이슈와 뒷이야기, 금융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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