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이 '한민족'을 만들었다고?

이대희 기자 입력 2023. 12. 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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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한국인의 탄생>

태어나서부터 선진국 한국을 살아온 젊은 세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려서 약간이라도 군부 독재 시대를 경험한 40대 이상 한국인 중 '이놈의 망할 한국' '이류 국가 한국' '국민이 이류니 정치도 이꼴'이라는 등의 생각을 하지 않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나는 진심으로 지금 한국이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율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른바 '애국심'이니 '반일 정서'니 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에 증오하지 않는 한국인은 많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니 기성세대에게 근래 부각되는 이른바 한류 열풍이니, 'K의 재발견'이니 '눈 떠보니 선진국'이니 하는 수사는 좀처럼 마음에 와닿지 못한다. 살면서 겪은 한국은 '이류 국민 삼류 정치'니 '어글리 코리안'이니 하는 수사가 적당한 나라였지, 결코 일류로 취급될 나라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사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대체로 수긍하고야 마는 어떤 모순이 있다. 한민족의 끈기니 하는, <아리랑>만 들어도 가슴 어딘가가 뭉클해지고 뒤흔들리는, 강대한 외세에 끊임없이 저항해 온 역사를 공유한다는 집단 의식이 있다. '한국을 욕해도 내가 하지' 외국인이 하는 욕은 들어주지 못하겠다는, 비록 선진국의 그늘을 좇아 왔으나 폐허에서 일어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일군 역사를 가슴 한켠에서는 수긍하고야 마는 정서가 산업화 늙은이든, 586구악이든, X세대 꼰대든 가리지 않고 일관한다. 누구보다 한국을 증오하면서도 숨겨둔 애정을 '츤데레'처럼 드러내고야 마는 관념이 한국인 사이에 흐른다고 한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딴지일보>에서 '필독'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홍대선 작가가 신간 <한국인의 탄생>(메디치)으로 돌아왔다. '한국인이란 무엇이냐'는 추상적인 테마가 책의 주제다. 책은 세 상징적 인물을 들어 '한국인이 어떻게 탄생했느냐'는 질문에 답한다. (고)조선의 단군, 고려의 현종, 조선의 정도전이 그들이다. 저자는 단군을 통해 한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이 한국인의 기질이 생겨났고, 현종을 통해 '한민족'이 탄생했고, 정도전을 통해 '한민족 정서'가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를 키워드로 나눠보면 단군은 '생존'에, 현종은 '전쟁'에, 정도전은 '혁명'이라는 단어로 각각 상징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가 방대한 독서와 이를 사유하면서 축적한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설명이 '책에 쏟아진다.'

▲<한국인의 탄생>(홍대선 지음) ⓒ메디치

한반도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결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아니다. 지형의 70퍼센트가 산악지다. 쌀 문명의 북방 한계선에 이른 탓에 곡물 생산량이 이웃한 중국, 일본에 현저히 떨어진다. 명확한 사계절은 옛 인류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다. 즉, "단군은 부동산 투자를 영 잘못했다."이 한반도적 특성이 한국인을 "먹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지옥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만들었다. 세계에서 한국처럼 해초류를 갖가지로 분류해 먹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고사리, 팽이버섯처럼 그냥 먹으면 독성이 있는 식재료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식문화를 한국 외에 다른 곳에서 찾기도 쉽지 않다. 먹을 게 없어서 그랬다. 육지에 먹을 것이 풍부한 나라에서 해초는 '시위드(seaweed)'면 그만이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먹어야 하니 다양한 식재료 요리법과 발효 기법, 염장 문화가 발달했다. 소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성기까지 부위별로 나눠 먹게 된 건 소가 그만큼 귀해서다. 어떤 것이든 먹고 감염은 막아야만 하니 세균을 막는 알리신이 주성분인 마늘을 다른 어느 식문화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한국식문화가 만들어졌다.

척박한 환경은 공동체 의식도 발달시켰다. 한국처럼 농사에 비우호적인 환경에서 벼를 수확하려면 다른 나라보다 더한 고강도 노동이 필요하다. 가족 단위로만은 불가능했다. 품앗이가 필수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고통스러운 쌀 농사를 지어야 하는 환경에서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이웃과 거리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다. 사색할 여유도 없는 환경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관념이 자리잡았다. '추운 사막'인 겨울이 자리하기에 미래는 항상 불안하다. 낙관적인 정서가 자리할 틈이 없다. 상시 불행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국인은 모르는 이웃에게도 "하이(Hi)"하며 인사를 건네는 낙관적인 문화가 영 낯설다. 이런 불안과 극심한 경쟁은 반대급부로 '죽어라 마시는' '놀 때는 미친 듯 노는' 성정 역시 낳았다. 새벽을 밝히는 향락의 거리 풍경은 한국의 밤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한반도가 수천년 간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중국, 삼국시대 이후 압도적 생산력으로 팽창한 해양 강대국 일본과 이웃했다는 점도 한국인의 기질을 낳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반도는 언제나 중화제국과 북방 유목민족, 왜구의 침입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한반도는 인구를 비롯한 자원 생산력에서 도저히 이들 국가와 자연 경쟁할 수 없다. 외적이 침입하면 한반도는 말 그대로 국가 총력전에 처하게 된다. 홍건적이 출몰해도, 왜구가 침범해도 한반도에 자리한 나라에는 국가 존망의 위기였다. 다 같이 살고 다 같이 죽는다. 그러니 이들과 차별점으로 대항해야만 했다. 자연 지형을 활용한 산성에서 누구나 활을 들고 쏘고 또 쏘아야 한다. 산성 정복을 포기하고 수도로 진군하는 군대는 웅크렸던 산성의 병사들이 게릴라전으로 후방을 교란했다.

이 기질은, 저자에 따르면 평시에는 평범함을 거부하지만 "전시의 한국인은 특별함을 거부"하는 존재로 단련시켰다. 저자는 이를 "천박한 숭고함"으로 설명한다. 평상시에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한반도의 선조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산성에 갇혀 운명공동체가 된다. 비상시에는 갑자기 모두가 협력한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는 오늘날에도 "어떤 사고로 트럭에서 쏟아진 제품이나 과일 따위가 도로에 즐비"한 특별한 상황이 되면 "일제히 차를 멈추고 내려 질서정연하게 트럭에 물건을 주워 담"고 영웅이 되기를 거부한 채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집단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고려 현종은 역사 마니아가 아닌 보통의 사람에게는 최근 화제의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재조명되는 인물이다. 신라가 대당제국과 손잡아 처음으로 한반도를 통일했다. 이어 고려가 등장해 재통일을 완수했다. 고려는 애초부터 고구려의 후예였기에 국호도 그대로 고려(고구려가 고려다)로 썼다. 고려의 후손, 신라의 후손이 여전히 나뉜 채 고려가 출범했다. 이 상황에서 1009년 고려 제8대 군주로 현종이 즉위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인 요나라, 곧 거란이 1010년 고려를 침공했다. 서희의 외교 활약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거란의 1차 침공에 이은 2차 침공이다. 무려 40만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이후 3차 침공에서 거란은 다시 '기병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들어왔다. 보병이 섞인 10만이 아닌, 기병 10만이다. 현대전으로 비유하자면 전차, 장갑차, 헬기가 총동원된 기계화부대 10만 명을 상대로 보병이 절대다수인 고려의 전군 20만이 맞붙었다.

이런 압도적 외적과 싸움에서 고려가 승리했다. 강감찬은 단 한 번의 대회전, 곧 귀주대첩에서 적을 격파했다. 겨우 수천 명만이 살아 돌아갔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고려는 "그 순간 하나가 되었다. 고려가 삼한통일을 이룬 후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발해계 자제들이 집단적인 승리의 경험을 공유한 순간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런 경험은 '나는 신라인이다', '나는 백제인이다' 같은 분리의식을 극적으로 증발시켰을 것이다. (...) 함께 싸워 이기면 공동체가 된다." 한민족이 탄생했다.

이후 현종이 한 일을 보면 '고려인', 곧 한민족 정체성이 확고해졌음은 더 명확해진다. "현종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역대 군주들의 능묘를 정비했다. 그리고 누구라도 삼국의 능묘를 지날 때는 의무적으로 말에서 내리고,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법을 제정했다. 그러므로 고구려인은 신라왕의 무덤에, 신라인은 백제왕의 무덤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러면 원칙적으로 삼국의 역사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역사가 된다. (...) 이제 삼국의 후예는 한 나라의 인민이다."

▲고려 현종 시기 제2차, 제3차 거란의 침공과 고려의 대응을 다룬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KBS

정도전은 신분이 사라진, 공부하는 학자들로 만들어진 나라를 세웠다. 군신은 계약 관계로 묶였다. 군주는 심지어 선비 중 으뜸 선비가 되어, 죽도록 공부해야 했다. 조선이 '신의 땅이 아니라 현실을 직관한, 총 대신 붓을 든 탈레반(본래는 '꾸란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의미다.)'의 나라였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조선은 여전히 임금이 다스리는 군주국이었다. 그러나 조선 임금의 처지는 중국 황제의 권위, 일본 쇼군의 권위와는 크게 달랐다. 조선은 사대부, 곧 공부하는 학자들이 '민본'을 받드는 나라였다. 저자는 이를 두고 에이브러햄 링컨의 그 유명한 민주주의 연설인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에 비유해 조선을 "임금의, 사대부에 의한, 백성을 위한" 나라로 설명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조선의 관(官)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될 수 없었다. 백성을 위한 도구다. 임금 역시 백성을 위한 도구일뿐이다. 실례가 있다. 조선 때 신문고는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인의 중요한 기질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가장 수긍이 쉬운 부분 중 하나다. 좀 길지만 본문을 그대로 인용한다.

"신문고 앞에는 줄이 길게 서있었기에 조선인들은 격쟁(擊錚)을 더 선호했다. 격쟁이란 문자 그대로는 두들겨 쇳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일반 백성이 궁궐에 침입하거나 왕의 행차 길에 난입해 북과 꽹과리를 두들기며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행위였다. 격쟁은 음악이 아니고, 좋은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임금이 듣기 싫어서라도 '민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신경을 긁는 소리였다. 신문고가 왕이 내 소리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면, 격쟁은 내 소리를 강제로 들려주는 삿대질이다. 주민센터, 세무서, 경찰서 등 한국의 공공시설에는 삿대질하는 시민이 끝없이 출몰한다. "책임자 나와!" 조선이라는 국가의 책임자는 임금이었다. 임금은 끊임없이 소환당했다. 물론 임금의 업무와 기분을 방해하는 격쟁은 당연히 불법이었다. 큰 죄를 지었으므로 곤장을 맞아야 했는데, 몇 대 가볍게 맞는 척만 하면 끝나는 요식행위에 그쳤다. (...) 별다른 사유가 없으면 3일 이내에 격쟁 민원을 처리해야 했던 임금에겐 좋을 게 없었다. (...) 국가적 차원에서 민의 수렴과 민원 해결에 노력했던 정조 때에 상언과 격쟁이 가잘 활발했다. 정조 재위 25년 동안 <일성록(日省錄)>에 수록된 상언·격쟁만 무려 4304건이었다. (...) 조선 민중은 치도곤을 맞을 각오를 할지언정 억울함을 참지 않았다. (...) 세종대왕은 사냥을 관람한 뒤 돌아오는 길에 시위대에 어가(御駕)가 막히는 사고를 당했다. 시각장애인 무리였다. 당장 굶고 있으니 해결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들은 쌀 40석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후 물러났다. (...) 태종 역시 하루는 시각장애인 20명에게 둘러싸여 1인당 쌀 한 섬씩을 뜯긴 후 풀려나야 했다. (...) 백성들은 조선 초창기부터 '이번 나라는 인민의 나라'라는 관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전근대에 '국가는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퍼진 셈이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이어 평양에서도 도망가던 선조를 향해 한 노인은 "한양을 버리신 것처럼 평양성도 버리실 것이옵니까?"라고 물었다. 절대왕정이 등장했던 유럽은 물론, 조선과 동시대의 에도시대 일본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새로 얻은 칼날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길을 가는 아무나 베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츠지기리, 辻斬り).

조선 500년간 이어진 이런 기질이 "내가 중심" "내가 '낸데' 너는 뭐냐"는 식의 한국인 특유의 기질로 이어졌다. 적잖은 일본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질서를 해친다'며 한국을 비난했지만, 한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던 사람이 아닌 한, 촛불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건 문제 없는, 아니 당연한 인민의 권리로 인식됐다.

이런 기질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공무원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이제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된다. '내가 무조건 옳다'는 식의 태도는 '내 억울함이 풀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한국 사회 특유의 갑질로 이어진다. 저자는 책이 '국뽕화'되어 해석되는 것을 염려한 듯, 틈날 때마다 이런 점을 강조한다.

아무리 저자가 염려했더라도 '국뽕'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주장이 있다. 친일주의자들의 식민지근대화론에 반발해 후대 역사학자들이 정작 성리학의 실용주의를 간과하고 '실학'이라는 신개념에 매달렸다는 지적, 남녀차별이 존재했지만 조선 민중의 삶은 우리 생각과 달리 매우 자유분방했다는 설명 등은 깊이 새겨볼 만하다. 하지만 한국인의 지능이 높다, 한국인은 이웃을 싫어한다는 등 일부 주장에는 반발심이 생기기도 한다. 원시 공산 사회가 끝나고 농경혁명이 일어나면서 사유재산의 축적이 시작된 이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건 전 인류 공통의 성정이 아닐까. 도시화와 아파트 선분양이 낳은 대규모 부실공사로 인한 층간소음이 일상화된 현재, 이웃간 사이가 좋은 게 이상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으며 불쑥불쑥 반발심이 튀어나온다. 이런 역사·지리·문화적 해석만으로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을 온전히 설명하는 게 온당할까. 지금 한국은 분명히 회광반조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세계적 경제강국이 되었다 싶더니 파멸은 이미 확정된 미래처럼 보인다. 극단적으로 낮은 출산율은 인류사에 유레없이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를 낳고, 이는 급격한 경제활동인구 감소를 비롯해 온갖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것이 예고돼 있다. 물론 설명은 가능하다. 한국인 특유의 그 미래를 향한 강한 불안이 극단화한 신자유주의 사회와 만나 혼인 급감, 출산 급감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해법으로 한때 제시된 대안이 당당히 최저임금 미만을 주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자는, 천박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국제적 망신 거리 수준의 이야기였다(고용노동부는 이후 최저임금 준수 입장을 밝혔다.). 이런 저급한 이야기가 거리낌 없이 주류 언론에 논의됐고, 유력 정치인이 당당히 해법으로 이야기했다. 그들을 동등한 민주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분명한 입장이었다. 사람 이하 존재로 본 것과 다름 없다. 이런 천한 정서가 공론화해 언론에서 "'월 100만 원' 가사도우미, 저출산 해법"이라는 주제로 보도됐다. 이를 단순히 '한국인의 즉물성'만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를 급격히 해체한 급격한 고도성장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의 후유증, 더딘 민주화의 결과로도 봐야 하지 않을까. 이는 '한국인의 성정'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경제·사회학적 시각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 여겨진다.

'한국이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책의 평가도 수긍하기는 어렵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극단적인 남녀 임금 차별이 여전하다. 자유인인 개인의 권리 위에 국가의 모든 권리가 나온다는 한국 헌법이 과연 사회의 소수자들에게도 온당히 이어지는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혼을 제도화한 대만이 한국보다 한발 앞선 민주주의 국가임이 명백하지 않을까. 대만은 장기간 국민당 독재 치하 계엄령에 시달리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1987년에야 민주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은 중국의 위협에 직면했다. 불량국가 북한이 아닌, 세계 2강 중국과 대치한다는 특수한 상황에도 대만은 한국에 한발 앞서 실질적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독자로 하여금 이런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자문하게 만든다는 점 역시 이 책이 주는 장점이다. 저자의 탁월한 해석과 다방면에 통달한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을 꿰는 사유가 낳은 해석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탄생>은 읽는 재미를 주고 생각의 여지를 낳는 책이다.

이런 '딴지'를 넘어, 이 책에서 한국인을 설명하는데 부족했던 한 가지 개념을 꼭 짚을 필요가 있다. 바로 유신(維新)이다. 메이지 천황 즉위 후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에서 1871년 폐번치현(廢藩置縣)까지를 메이지 유신의 시기로 든다면, 이후 유신은 본격적으로 자가발전했다. 오직 결과(세계적 열강)를 위해 절차의 문제는 무시해도 된다는 성과지상주의는 이후 대일본제국의 파시즘으로 이어져 인류 유사 이래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인 악마적 군사문화를 낳았다. 그 군홧발은 한반도도 짓밟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통해 한반도에 유신이 상륙했다. 그 유신은 일제 패망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계 일본인으로 태어난 박정희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되살아났다. 유신은 1979년 "유신의 심장"이 부서질 때까지 긴 시간 한반도에 이어졌다. 박정희가 키운 전두환의 독재 역시도 유신의 적자로 보아야 한다. 1910년부터 따지더라도 일제가 낳은 유신의 그늘이 근 80년 가까이 한반도에 드리워졌다. 폭압적 남녀 차별과 폭력적 군사 문화, 이른바 '하면 된다'는 식의 질주와 정경유착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전 한국의 고도 성장 과정은 유신이 남긴 뚜렷한 흔적이다.

유신이 한국인의 탄생에 연관된 역사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홍대선 작가의 전작인 <유신 그리고 유신>(메디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본래 작가는 한국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유신 그리고 유신>을 먼저 내놓았고 이번 <한국인의 탄생>을 2부 격이자 본편으로 냈다. 작가는 차기작도 구상 중이다.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시작하는 한국 현대사 이야기다. 책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유신 그리고 유신>(홍대선 지음) ⓒ메디치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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