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세계화 시대, K배터리 부담도 커진다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3. 12. 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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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발표한 FEOC(관심 대상 해외기업) 가이던스 주목
中 리스크 해소 위해선 자체 공급망 구축·검증해야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2년 8월 제정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세계 첨단제조업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기차 1대당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이 법률은 단순히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미국의 거대한 자동차 시장과 전기차의 핵심인 이차전지 분야 투자를 교환하도록 함으로써 첨단 제조업 분야의 대규모 투자를 미국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IRA가 제정되기 이전인 2021년까지 미국 내 이차전지 생산능력은 55GWh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3년이 되자 미국 내 이차전지 생산능력은 2030년까지 계획된 투자를 합할 경우 1000GWh에 이르렀다. 1000GWh는 연간 1000만 대 이상 전기차에 공급하고도 남을 수준의 생산능력이다. 미국의 연간 신차 판매량이 2200만 대 내외임을 감안하면 전체 차량의 절반이 전기차로 공급되더라도 문제가 없게 됐다.

미국 재무부 등이 최근 FEOC(관심 대상 해외기업)에 대한 세부지침을 발표해 주목된다. 사진은 배터리 산업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2020' 모습 ⓒ연합뉴스

거대 車시장과 이차전지 투자 교환한 IRA

IRA에 따른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핵심광물과 부품으로 나눠진 양쪽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핵심광물의 경우 이차전지에 포함된 핵심광물 가운데 가격 기준으로 40% 이상이 미국 또는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에서 추출되거나 처리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격 기준 40%는 2024년부터 매년 10%씩 상향돼 2027년에는 80%까지 상승한다. 배터리 부품의 경우 50% 이상이 미국 또는 북미에서 제조·조립돼야 하는데, 이 역시 2025년부터 10%씩 상승해 2029년에는 100%가 된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는 미국 아니면 최소한 북미대륙에서는 생산하도록 보조금을 통해 강제하는 것이 IRA의 핵심인 것이다.

하지만 이차전지 생태계의 상당 부분을 현재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IRA 규정은 중국 업체들의 좋은 돈벌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의회는 관심 대상 해외기업(FEOC) 규정을 포함시켰다. 미국이 지정한 관심 대상 해외기업이 추출·가공한 광물 및 제조·조립한 부품이 포함될 경우 보조금 지금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어떤 기업이 관심 대상 해외기업인지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복잡한 미국 법령을 찾아 들어가보면 관심 대상 해외기업은 크게 4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미국 재무부가 발표하는 제재 대상 목록(SDN)에 포함된 기업과 개인들이다. 둘째는 외국 정부에 의해 소유·통제되거나 관할 및 지시를 받는 기업이다. 셋째는 간첩법, 무기수출통제법, 수출통제개혁법 등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은 활동에 관여했다고 법무부 장관이 인정하는 경우이며, 넷째는 국방부 및 CIA의 장이 협의해 미국의 국가안보 또는 외교정책에 위해가 되는 행위에 가담했다고 결정하는 경우다. 이 가운데 첫째, 셋째는 비교적 명확한 데 비해 둘째, 넷째는 대상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4개 국가가 관심 대상 국가인데 이들 국가가 관할하는 기업이라는 것이 어떤 조건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코발트 광산의 지분 15%를 중국 지방정부 소유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곳에서 나온 코발트를 사용해 만들어진 이차전지는 과연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것일까.

IRA 제정 이후 1년 만에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관심 대상 해외기업에 대한 세부지침을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중국 등 4개국에 소재하거나 이들 국가에 주요 사업장을 두고 있는 경우는 모두 관심 대상 해외기업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들 정부에 의해 소유·통제·지시를 받는 경우 관심 대상 해외기업으로 간주되는데 그 기준은 지분 25%로 설정했다. 중앙·지방정부, 산하기관 및 기구, 집권정당 그리고 전·현직 정치인들이 모두 정부의 범주에 포함된다. 만약 콩고의 코발트 광산에 중국 기업이 20% 지분을 보유한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30%는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다수의 중국 기업이 5%씩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도 이들 지분을 모두 합산해 25%를 넘는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자회사를 통해 광산 지분을 보유한 경우에는 모회사 지분율을 합산해 계산한다. 가령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고 자회사가 광산의 지분 25%를 보유할 경우 이를 곱한 10%로 계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차전지 기업들로서는 자신들이 공급받는 원자재 및 부품과 관련해 중국 등 4개 국가의 관련성을 일일이 따져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부지침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는 핵심광물을 대상으로 하는 추적 시스템을 2026년 말까지 구축하도록 하고 있다.

세부지침이 발표되면서 그동안 추진되던 우리 기업과 중국 기업의 합작도 영향을 받게 됐다. 우리 기업이 51%, 중국 기업이 49%를 각각 소유한 공장의 경우 세부지침의 25% 규정을 피해 가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의 지분율을 75%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몇 차례의 과정을 거쳐 납품받는 경우에 어디까지 이를 확인해야 하는지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광물자원의 경우 다수의 광산에서 채굴돼 정련·제련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 관여하는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관심 대상 해외기업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련 기업들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많은 비용을 들여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될 리스크를 항상 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16일(현지시간) IRA 성과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역설하고 있다. ⓒEPA 연합

IRA 규제, 시간 갈수록 강화 전망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차전지 생산과 관련된 모든 과정에서 중국 업체를 배제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원료 채굴부터 부품에 이르는 대부분의 과정은 중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해법이 될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호주 또는 캐나다에서 원료를 수급하고, 중국의 참여를 배제한 기업을 설립·인수해 가공 및 부품 제조 등을 진행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이 역시 막대한 비용과 낮은 효율로 인해 선뜻 선택하기는 어렵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로 고전하고 있던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IRA 제정으로 인해 안정적인 성장과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대가는 중국을 이차전지 공급망에서 제외하도록 기업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제시된 세부지침의 25% 기준은 이러한 흐름의 시작이며, 이후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대규모 시장에 대한 접근을 보장받는 대신에 치러야 할 비용과 리스크 역시 커지고 있다. 비용만 지불하면 원료와 부품을 공급받던 세계화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자체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검증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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