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위대한 뮤지션들이 모인 위대한 밴드의 마지막 유산이 왔다
1994년 1월 뉴욕에서 열린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 엘튼 존, 밥 말리, 애니멀스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 이는 존 레넌이었다. 비틀스는 1988년 진작 헌액됐지만, 개인 자격으로는 멤버 중 첫 등재였다. 존 레넌은 198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폴 매카트니가 대신 트로피를 받았다.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행사장에 함께 했다. 존 레넌의 미망인인 오노 요코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요코는 폴에게 카세트테이프를 건넸다. 존이 음악을 잠시 떠나 전업주부 생활을 하던 1977년, 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흥얼거렸던 미발표곡들이 담겨 있던 데모 테이프였다. 3명의 비틀스는 이 중 세 곡에 각자의 연주 및 미완성된 파트를 만들어 붙였다.
이듬해부터 발매된 '컴필레이션 앤솔로지' 시리즈를 통해 두 곡이 발표됐다. 'Free As A Bird'와 'Real Love'. 1970년 마지막 앨범 〈Let It Be〉 이후 처음으로 나온 비틀스의 신곡이라는 사실만으로도 1990년대 중반 음악계에는 다시 한번 비틀스 붐이 불었다. 〈터미네이터 2〉와 〈쥐라기 공원〉이 영화계에 CG의 시대를 열었듯, 비틀스의 두 신곡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있던 리코딩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1995년의 비틀스가 완성하지 못했던 한 곡이 있다. 약 일주일간 기타 파트를 작업하던 조지 해리슨이 욕을 하며 때려치웠다. 다른 두 곡에 비해 음질이 형편없었거나, 노래가 완성도 미달이었거나 아무튼. 그리고 2001년 조지 해리슨도 세상을 떠났으니 이 미완성곡은 존 레넌뿐만 아니라 조지 해리슨의 유작이기도 하다. 폴 매카트니에게도 이 노래는 오래된 숙제와 같았다. 2010년대 초반부터 그는 비틀스의 마지막 노래를 발표하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난제가 있었으니, 조지 해리슨이 불만을 가졌던 음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뒤섞여 있는 존 레넌의 목소리와 연주, 잡음을 정교하게 분리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이다. 또 하나는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폴 매카트니에게 돈이란 공기와 같은 것. 따라서 기술 발전을 기다리면 됐다. 그리고 AI와 딥 러닝의 세상이 왔다. 풀지 못했던 묵은 과제를 기술은 해결했다. 비틀스 팬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영화 〈겟 백〉이 영상 및 음향 보전 기술의 힘으로 2021년 장편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공개됐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피터 잭슨 팀이 존 레넌의 테이프 속 음향들을 분리해 내는 데 성공했다. 2022년, 폴 매카트니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드디어 이 노래가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공개된 비틀스의 마지막 신곡, 'Now And Then'이 나오기까지의 긴 스토리다.
'Now And Then'을 들으면 우선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회가 밀려온다. 비틀스보다는 존 레넌 솔로 시절의 스타일에 가까운 곡이다. 비틀스 해체 직후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서로를 비난하고 법정 싸움까지 했지만 머지않아 화해했다.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그러니 "가끔은 네가 그리울 거야, 가끔은 네가 내 곁에 있었으면 해"라는 절정부의 가사를 존이 누구를 생각하며 썼을지 짐작하게 된다. 늘 함께 했던 오노 요코? 전처였던 신시아? 글쎄. 오노 요코가 폴 매카트니에게 건네준 테이프 표지에 "폴에게"라는 문구가 쓰여있다는 사실이 모든 걸 말해준다. 그러니, 이 부분을 존과 폴이 함께 부를 때 감회가 밀려오지 않는다면 비틀스 팬이 아니다. 삶을 살면서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을 만나본 사람이 아니다.
감회를 잠시 누르고 찬찬히 노래에 담긴 세월의 무게를 떠올려본다. 비틀스가 해체한 지는 50년이, 존 레넌이 피살된 지는 40년이 넘었다. 앤솔로지 프로젝트도 25년이 지났으며 조지 해리슨의 타계일도 20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그사이 팔순을 넘겼다. 이 노래는 그 기나긴 시간들 사이에 꽂혀 있는 책갈피 같은 순간들의 모음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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