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누구를 위한 '조건부 구속'인가

강청완 기자 입력 2023. 12. 9. 11:27 수정 2023. 12. 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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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시민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가 법조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취임하면 곧바로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다. 법 개정 사안이긴 하나 청문회에서 주로 민주당 의원들이 조건부 구속 제도 도입에 관심을 보인 점, 여소야대라는 국회 의석 상황 등을 감안하면 본격 추진될 경우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더라도 주거지 제한, 전자장치 부착 등의 조건을 달아 피의자를 석방(정확히는 영장 집행을 유예)하고, 조건을 어길 경우 실제로 구속하는 제도다. 만약 구속영장이 나오더라도 법원이 조건부 구속을 결정하면 구치소로 가지 않고 일단 집으로 가게 된다는 뜻이다. 대신 여러 제약이 따르긴 하지만, 피의자 입장에서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과 집으로 가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법원으로선 현재 구속 또는 불구속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만 있는 상황에서 제3의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1999년부터 도입 논의…'신당역 살인사건' 계기로 재논의


조건부 구속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는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 1999년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처음 논의된 걸 시작으로 2006년에는 국회에 법안까지 제출됐다가 입법이 결국 무산되기도 했다. 청문회 이전 가장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사례는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때다. 당시 피의자 전주환에게 불법 촬영 혐의 등으로 청구됐던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됐고 결국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전 씨가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에 대법원은 "구속영장 단계에서 조건부 석방 제도를 도입해 일정한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사례와 다소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선 주로 무죄추정 원칙, 불구속 수사 원칙 실현을 통한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주요 명분으로 내세운다. 현행 제도에선 한 번 구속되면 석방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구속적부심 석방률은 6.7%, 보석 허가율은 30.8%) 또 일단 석방된 피의자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져 오히려 피해자에게 유익할 수 있다는 점 등도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제도 도입이 번번이 무산됐던 이유기도 하다.

"전자발찌 끊고 재범하면 어떻게 막나"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재범의 우려다. 조건부 구속으로 풀려난 피의자가 마음먹고 범행을 저지르면 어떻게 막을 거냐는 얘기다. 주거지 제한 명령, 전자발찌 같은 전자장치 부착 등 조건을 부과하더라도 피의자가 이를 어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실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충남 서산에선 가정폭력 혐의로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남편이 명령을 어기고 대낮 길거리에서 아내를 손도끼로 살해하는 일이 있었고 지난 2월 인천에선 출소 후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받은 이가 강도살인을 저지른 뒤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하기도 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은 스토킹, 불법 촬영 등 혐의로 징역 9년을 구형받은 뒤 선고 전날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했는데, 경찰 조사에서 "재판으로 인해 내 인생이 망가졌구나. 쟤(피해자) 때문"이라고 범행 동기를 진술하기도 했다. 조건부 구속 제도가 도입됐다고 가정하고, 만약 법원이 전 씨를 조건부 구속했더라면 과연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유전(유권) 석방, 무전(무권) 구속'?…재벌‧정치인 혜택 우려도


제도가 도입되면 '유전(유권) 석방, 무전(무권) 구속', 즉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고 반대의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영장 심사 단계에서 고려 요소가 많아지면 이른바 전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고 방어권을 적극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인, 정치인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염려다. 우리 형사소송법 70조에 명시된 구속 사유는 주거 부정, 증거 인멸‧도주 염려 세 가지다. 70조 2항에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보충해두긴 했지만 고려 요소일 뿐 직접적인 구속 사유는 되지 못한다. 돈 있고 힘 있는, 신분이 확실한 피의자들 가운데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조희대 대법원장마저 "결국 부자라든지 힘 있는 사람만 또 어떤 혜택을 받는 쪽으로 운영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힌 건 이 같은 우려와 궤를 같이 한다.
이런 염려는 국민의 '법 감정'과도 직결된다. 한국법제연구원이 펴낸 '2021 국민 법의식 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0.7%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법은 '힘 있는 사람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은 8.5%에 그쳤고 '법이 권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15.2%에 달했다. 실제 조건부 구속 제도가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제도 도입은 이런 국민 법 감정과 사법 불신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전체 범죄 평균 구속률은 1.2%" 반론도


조건부 구속 제도 도입이 무죄추정 원칙에 따른 불구속수사 원칙을 실현하고 과도한 구속영장 발부를 견제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현재 구속영장 발부율이 약 85%에 달하지만 이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건에 대한 발부율일 뿐, 전체 범죄에서 평균 구속률은 매우 낮다는 취지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사건에서 구속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2% 수준이다. 같은 기간 독일은 3.9%, 일본은 9.4%에 이른다. 검찰 관계자는 "조건부 구속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독일은 사실상 수사단계에서 구속기한이 무제한, 프랑스의 경우 최장 4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최장 30일에 불과해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실제 제도가 도입되면 이를 수행할 법원과 검찰 측의 견해차는 사실 오래전부터 평행선을 그려왔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019년 조건부 구속 제도 도입을 골자로 발의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구속이 수사 성공 여부의 가늠자로 인식되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고, 형사사법절차의 중심을 구속재판에서 본안재판으로 이전하여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며 공감 의견을 냈다. 수사기관 견제의 측면이 있다는 취지다. 법원과 검찰의 태생적 차이도 한 배경이다.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법원은 피의자의 인권 보호에 중점을 두고 불구속재판과 피의자의 방어권에 중시하는 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검찰은 범죄의 중대성과 사회방위를 더 중요시'(*주1)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라고 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신중한 논의 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제도가 바뀌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특히 형사소송절차와 관련한 제도는 더욱 그렇다. 국민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피의자 방어권 보장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위 언급한 우려나 국민 법 감정에 대한 부분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피의자 방어권 보장이 피해자 보호 강화라는 요즘 추세와 비교할 때 얼마나 국민적 공감을 얻을지도 의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오랜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제도의 취지도 좋지만 실제 운영됐을 때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제도를 '실험'하게 되는 건 최대한 삼가야 할 일이다.

■참고문헌
<조건부 구속의 도입론> - 김정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3.4.21. 사법정책연구원 '구속 제도의 개선방안' 학술행사 발표문), 같은 학술행사에서 발표된 한대웅 대검찰청 연구관 토론문.
2021년 사법연감
주1) : 신의기, "검찰과 법원의 구속영장신청 및 발부기준 차이와 해결방안", 『형사법의 신동향』 제26호(2010), 112면

(사진=연합뉴스)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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